[요한묵시록 성경주해] 1장 -4장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묵시록의 저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예언의 형식으로 기록하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이것은 독자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니엘과 그밖에 묵시록 문학에 곧잘 쓰이는 기법이었다.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가운데는 자질구레한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발표의 시기는 대개 도미치아누스 황제때로 보고 집필의 때를 베스파시아 황제 때로 둔다.이들 저자들이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를 집필의 때라 생각하는 것은 7인의 황제(17,10이하)를 아우구스투스,티베리우스,칼리굴라,글라우디우스,네로,베스파시아누스(69-79년)-집필당시의 황제-"잠시동안밖에는 살지 못하는"(17,10) 7째의 티투스(79-81년)로 하고 도미치아누스(81-96년)는 일종의 네로의 재생으로 "8째 왕...그 왕도 그 일곱 왕들과 동류"(17,11)라고 하는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1장9,10절의 '밧모섬'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표현에 너무 집착해서 네로와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를 받기 전에 미리 예언자를 통해 알려 주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계시록을 절대 풀 수 없다.]1장5절-"일곱 영신"...아우구스티노에 따라 예전의 많은 해석자는 여러가지 은혜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의 위격을 가리킨다고 하였다.그렇게 되면 아쯔로가 주의한 것처럼 4-5절의 말은 삼위일체를 가리킨다.이 해석은 일곱 영신이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사이에 있으면서 독자에게 은총과 평화를 흘려 보내는 샘의 하나라는 점에 주안점을 두었다.단순한 천사라면 은총과 평화의 샘이라고 말 할 수 없다. 7절-이 절은 다니엘서 7장 13절과 즈가리야서 12장 10절을 합친 것이다.다니엘서의 이 대목의 말은 예수님께서도 가야파 앞에서 심판 때 자신이 오실 것을 알리기 위해 사용하셨다(마르코 14,62).9절-파트모스는 현재의 파티노이며 미레토의 서쪽해상 14시간 만큼의 거리에 있다.프리니우스에 따르면 로마인은 여기를 유배지로 사용했었다.스포라디스 군도에 속한 바위 투성이의 작은 섬이다.이 섬 남쪽에 전승이<묵시록의 동굴>이라 부르는 곳과 요한이라는 이름의 수도원이 있다. 13절-늘어진 이 옷은 대사제의 특유의 복장으로(지혜18,24) 황금으로 짠 띠도 왕뿐만 아니라 대사제의 복식의 하나이다.그러나 사제의 제의이기 때문에 허리가 아니라 가슴에 붙인다.그렇다고 보면 옷과 띠는 대사제인 그리스도의 존엄성을 상징한다. 14절-그 모습은 지극히 높은 성덕을 나타낸다.흰 색은 그리스도의 영원성의 상징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존재로 지니신 광채를 뜻한다."불꽃같이" 빛나는(19,12) 눈은 사람의 아들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숨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18절-지금은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으로 지옥문을 열고 죽은 자들을 부활로 초대하는 분이시다.여기에는 또 죽은 뒤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암시도 있을지 모른다(1벧 3,19).2장2절-"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를 사칭하는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허위를 가려 낸 일도 알고 있었다."에페소교회가 이른바 순회선교사를 시험하여 보았다는 것은 그 추천장을 조사하고 또 그들의 가르침과 생활의 순수함을 면밀히 알아보고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여 거짓 사도를 피했다느 것으로 이를 칭찬한다. 6절-이 파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어느 만큼은 이완주의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것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첫째로 생각되는 것은 아시아주에서도 고린토의"개방주의자"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느님의 백성과 이교도의 구별의 표시이기도 했던 우상에게 바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과 유다교가 금하는 혼인을 피하는 것 따위 이러한 것을 모두 배척했다.결국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 종교회의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어서(2,20-22)"음행"이라는 말이 나오므로 이 더 타락한 이단파들이 가르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성 이레네오에 근거하여 히폴리토는 이 이단이 "안티오키아의 개종자 니골라오"(행6,5)에서 시작하여 품행과 식량에 대하여 바른 가르침과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보조자 니골라오를 변호하고 있다.그래서 니골라오는 2세기의 그노시스의 선구라고도 할 수 있는 유다 그노시스적 운동을 한 아시아의 무명교사였다고 생각된다. 8절-아시아의 장식이라고 불리우던 스미르나는 해안 도시로서 에페소로부터 북으로 약 50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에페소,베르가모와 나란히 아시아주 제일의 도시라는 칭호를 서로 다투고 있었다.이 도시는 로마에 대한 전통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고 세레우고가家,카르타고,미도리다데스에 대하여 로마 공화국의 정치를 지지하였다.역사가 티토스 리비우스는 이 도시의 "특별한 충성"을 칭찬하였다.그리스도 기원 전 195년 로마 여신에게 신전을 바치고 기우너 후 26년에는 티베리우스와 원로원을 숭앙하기 위한 신전을 세울 권리를 받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도시였다.이 도시에는 많은 유다 이민단이 주교 성 폴리카르포의 순교 때(155년) 폴리카르포와 그리스도 신자에 대하여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12절-스미르나 북쪽에 있는 베르가모는 고대 세계의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의 하나이다.300미터의 고지에 있는 이 성곽은 훌륭한 신전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이미 기원 전 29년 이 주의 주의회는 그 정상에 아우구스투스와 로마 여신의 신전을 세우게 하여 이 때부터 소아시아의 황제숭배가 시작되었다.기원 전 180-160년 에우메네스 2세는 순백의 대리석으로 제우스의 거대한 제단을 만들게 하고 이것을 지금 베를린 박물관에 있는 "거대한 패배"라고 하는 유명한 조각으로 꾸몄다.건강과 기적의 신 에스크라피오스도 여기에 신전을 가지고 있고 전 아시아주의 병자들이 모여드는 순례지가 되었다. 13절-많은 해석자들은 이 왕좌를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로마 여신의 신전이라고 생각하였다.이것을 사탄의 왕좌라고 부르는 것은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생긴 박해의 주된 이유의 하나가 황제숭배를 따르지 않았다는데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어떤 학자들은 황제숭배의 중심을 베르가모가 아니라 에페소였다고 하며 그리고 사탄의 왕좌는 에스구라피오스의 신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그 이유로서는 이 신의 하나의 심볼은 뱀과 지팡이로서 이것은 성서에서 사탄을 뜻하기 때문이며 더욱이 이신이 행하는 기름부음은 그리스도가 행하신 진짜 기적에 대한 악마의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그러나 이 사탄의 왕좌는 제우스의 거대한 제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14절-퓔론과 요세푸스의 성서에 대한 이 에피소드의 주해에 따르면 발람은 이스라엘인들이 모압의 우상숭배로 개종하여 우상의 연회에 참여한다는 조건 하에 그 여인들과 사귀도록 조언을 했다고 한다.마찬가지로 베르가모의 이단자들은 교회의 신자들을 유혹하여 우상의 연회에 참여하여 음란에 빠지도록 권한다(행 15,20;고전 8,7-13.10,20-30).그러나 주의하고 싶은 것은 구약의 예언자들이"음행"이라는 말을 때때로 비유적인 뜻으로 취하고 뽑힌 백성이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옮긴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다.그렇다고 한다면 이 경우도 같은 뜻으로 취할 수가 있다.17절-"흰돌"이라는 것은 고대 극장의 입장권이나 부적에서 따온 형상인지 모른다.거기 써있는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19,13) 혹은 구원받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본성(이사야 62,2.65,15)을 가리키며 그 탁월성은 이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평가할 수 없다. 18절-베르가모의 남동쪽 약 65키로미터 지점에 있는 티아디라는 리디아의 도시였는데 일곱도시가운데 가장 중요성이 희박한 도시이다.세레우고가가 창립한 본시 군대의 주둔지로 기원 전 190년 로마에게 점령당하였다.그래도 직물염직과 옷감과 주물에 대한 강력한 조합이 있었다.20절은 이 동업자의 연회를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상업이나 서민생활은 기성종교와 깊은 연락을 가지고 있었고 그 연회는 반드시 보호의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들과 관계가 있었다.22절-위협을 주는 고통의 침상은 무거운 벌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특히 무겁고 긴 병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그 여자와 간음하고 있는 자"들은 그 여자의 애인이 아니고 그녀로 하여금 미로에서 방황하고 있는데 아직 그의 제자는 되지 않은 사람이다.그리스도께서는 아직 이 사람들이 회개하여 당신에게 되돌아오기를 기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28절-22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빛나는 샛별"이라고 칭호를 붙이고 계시다.베드로 후서 1장 19절에서도 그리스도를 "샛별"이라 부르고 있다.그래서 여기서 하신 말씀은 승리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혹은 그리스도와 밀접한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할는지도 모른다. 3장1절-리디아의 옛 수도 사르디스는 티아디라의 남동쪽 5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기원 전 6세기 경인 크로에스 시대에는 그 전성기를 이루었다.모직물과 염색과 신전 때문에 아직 어느 만큼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황제숭배로 말하자면 티베리우스와 리비아에 바친 도시의 신전 밖에 없었다.그 주민은 방종한 생활로 평판이 나 있었다(헤로도토스 1,55) 7절-필라델피아는 사르디스의 남쪽 45키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미개한 푸리기아에 대한 문화의 중심지로서 아따로스 2세가 창설하였다.기원 후 17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티베리우스 황제의 원조로 재건되어 네오 가이사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14절-라오디게아 도시는 필라델피아와 같이 푸리기아 국경에 있으며 기원 전 3세기에 안티오거스 2세로 말미암아 헬레니즘의 한 중심지로 조성되었다.리고스강의 계곡에 위치하고 필라델피아 남동쪽 65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제법 활발한 산업도시로서 모직물을 그 전업의 하나로 삼았다.그밖에 의학교가 있었으며 그 중에도 안과로 유명했고 유명한 안약을 그리스 로마의 세계로 보냈다.무역과 은행의 도시였기 때문에 이 땅에 유다인의 집단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은 잘 납득이 된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성 바울로가 에페소에서 전도할 때 골로사이인의 에바프라가 창립한 교회로(골1,7.4,12-13) 골로사이 교회와는 이웃사촌격 이었다.(골 2,1.4,16) 4장4절-24명의 원로.....요즈음의 해석자 거의는 이 원로들을 천사라고 하며 하늘에 있는 원로원과 같이 보고 그 해석의 근거로서 시편 89편 8절,이사야서 24장23절에 있는"당신의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와 다니엘 10장 9절을 인용하고 있다.그러나 요한의 묵시록은 하느님께서 이 24명의 원로를 고문으로 일을 시킨다는 그러한 암시를 하지 않았고 또 하느님의 법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이 원로들의 사명은 재판권을 행사하는 일이 아니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데에만 있기 때문이다.24이란 수에 대하여 어느 해석자는 유다교의 사제들로 조직되는 24개의 반과 관계가 있는 수라고 말한다....이런 주장에 따르면 24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재판권을 행사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하늘 나라에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신다는 사실에 대한 상징이라고 한다. 5절-이 영이 하느님의 7가지 면을 가리킨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하느님의 눈에 벗어날 수가 없다는 뜻이다. 7절-에녹의 책에 따르면 세 계급의 천사들(세라핌과 케르핌과 오판님 17,7)은 잠들지 않고 하느님의 옥좌 앞에 서서 예배한다.그래서 요한은 여기서 말하는 생물은 이 세 계급 특징을 합치고 있는 것이다.곧 세라핌은 6개의 날개(이사야 6,2)와 오판님의 많은 눈(에제키엘 1,18)을 가지고 있다.
뉴인터내셔널
1장 18절-유대 문헌에 의하면 이 열쇠를 소유하는 능력은 하나님에게만 있다.이제 이 열쇠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은 계시록의 숭고한 기독론에 대한 증거이다.
[요한묵시록 성경주해] 5장-12장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5장1절-일반적으로 파피루스의 경우는 반반한 면에만 쓴다.옛날의 두루마리를 봉인하는 데에는 봉인에 달려 있는 끈으로 매는 것이 관례였다.그리스인은 서류에 7개의 봉인을 한다.하나는 그것을 넘기는 사람의 것,다른 6은 증인의 것이다.이것은 규정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으나 관습이 되어 있는 것이다....두루마리는 일부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8장 11절에서 22장 5절까지 기술되어 있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일부의 에피소드를 제외한다는 것은 10장 2절과 9절 이하에 나오는"작은 두루마리"에 포함되어 있는 11장과 12장을 말한다. 6절-요한복음 1장 29절에 있는 어린 양이 깨끗함과 거룩하심에 대한 이미지를 일으키는 것과 달리 묵시록에 있는 어린양은 능력과 노여움을 나타낸다(6,16-17)일곱 뿔과 일곱 눈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세력과 충만된 지식에 대한 상징이다. 6장. 파르티아인들은 기병대로 유명하고 활도 잘 쏘았다.이 기병대는 기원 후 62년에 로마의 군대를 깨뜨리고 그 이후 로마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적이 되고 제국은 소아시아의 이러한 세력으로 쓰러지게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을 일으킬 만큼 강력하였다. 1절-맨 처음의 기사는 승리의 싸움을 계속한다.그는 파르티아 기병대의 무기였던 활을 가지고 그리고 월계관을 쓰고 있었다.이것은 승리에 대한 약속이다.타고 있는 말은 파르티아 왕들이 타던 말처럼 흰말이다. 6절-밀 1케니쿠스(1.09리터)는 노동자의 하루분의 빵 무게이며 1케니쿠스가 1데나리온인데 하루이 대한 노동에 대한 임금에 해당하는 값이다(마태오 20,2).그리고 2등급품인 보리 3케니쿠스도 역시 1데나리온이며 곧 하루의 급료로 빵밖에 살 수가 없었던 셈이다.치체로에 따르면 평시에 12케니쿠스의 밀을 1데나리온으로 샀고 보리의 경우에는 0.5데니리온으로 살 수가 있다고 말했다.기근과 그것에 따른 곡식값의 상승은 고대에 있어 흔한 일이었다.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1924년에 발견된 도미치아누스[도미티안]의 사절 루치우스,안티스티우스,루스티쿠스의 법령은 92년과 93년사이에 소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기근이 일어났고 그 기근때문에 곡물의 강제징용이 이루어지고 최고 가격을 지정한 사실을 입증하였다. 이런 기근의 이유를 여러가지 들 수가 있지만 당시 밀의 경작은 더욱 더 소홀히 하였고 이러한 경제상태의 책임은 밀을 사서 그것을 나누어주고 있던 로마의 정부에 있었던 것 같다.정부는 싼 값으로 사들이기 위해 대량수매를 하였고 대상들만이 정부와 손을 잡고 아프리카와 에집트의 밀을 반입하였다.그러한 정책에 따라 이탈리아 본토의 지주는 밀밭을 포도밭으로 바꾸었고 포도주는 생산과잉 상태에 빠져 있었다. 9절-영상을 본 요한이 어떻게 (네로의 박해로 인한)순교자의 영혼을 번제를 위한 제단 밑에서 보고 있었던가를 이해하려면 이 세상의 성전에서는 재물의 피를 제단아래 흘리고 그리고 구약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피가 영혼의 집이라고 여겨졌던(창 9,4;레 17,11.14.;신12,23)것을 떠 올려야 할 것이다(행 11,28-30). 7장 1절-이 장면은 지구를 정방형의 평원처럼 생각하고 있는 구약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유다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해로운 바람은 네 모퉁이에서 불어오며[대각선으로 분 바람이다,에녹 1서 76 참조;34.3참조] 좋은 바람은 정방형의 각 변에 있는 데에서 불어 온다(렘 49,36). 5-8절-유다 부족을 맨 먼저 들고 있는데 메시아가 유다족으로부터 태어나셨기 때문일 것이다(5,5).단 대신에 므나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유다인의 어떤 전설에 그리스도의 적이 이 부족에서 나온다고 전해 오는 말에 따른 것인지 모른다....표를 받은 사람들은 옛날 뽑혔던 백성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의미한다.[뒤에 나오는 큰환난(네로의 박해)에서 나오는 큰무리와 같다.20장 4절과 비교하라.] 8장2절-이 일곱천사는 옥좌의 천사들이어서 성서에서는 대천사라고 부른다.토비트 12장 15절과 에녹의 외전서 20장 2-8절에서는 이 대천사들을 우리엘, 라파엘,라구엘,미가엘,사라키엘,가브리엘 및 레미엘이라 부르고 있다.12절-"타격을 받아"라고 한 말은 별들이 깜깜해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라삐들이 쓰는 말이다. 9장5절-5달이라는 것은 대략적인 수치인데 상당히 기한을 가리키고 또 메뚜기 자신의 수명도 나타내고 있다. 7-8절-금관같은 것을 쓰고 있다.이것은 승리의 표로 또 얼굴은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이는 사람과 같이 지혜의 소유자임을 나타내고 이 긴머리는 당시의 미개인처럼 잔인성의 소유자라는 표시이다. 15절-여기서 유프라데강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상징적인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따라서 여기서는 로마제국사람들이 파르티아인의 군대에 대하여 느끼고 있던 깊은 공포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11장1-2절-"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이방인에게 박해받는 교회를 상징한다."측량한다"란 보호받는 것을 상징한다."성전의 바깥뜰"은 "이방인의 뜰"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전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다(행21,28).하느님의 예정으로 말미암아 그 뜰은 더럽힘을 당하기 위하여 이방인에게 넘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이방인은 이스라엘 도성을 점령하고 42달 동안 그것을 황폐하게 만들고 더럽힐 것이다.예루살렘에 대한 이 예고는 루가(21,24)가 기록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질 것이고 포로가 되어 여러나라에 잡혀 갈 것이다.이방인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예루살렘은 그들의 발 아래 짓밟힐 것이다."3절-베드로와 바울로이다.7-8절-짐승은 네로황제이다.큰 도성은 로마이다. 14절-세째재난은 바벨론(로마)의 파멸이다.12장1절-이 별은....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영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7,4이하.21,12) 이스라엘 12부족을 상징한다. 2절-성 아우구스티노처럼 이 여자는 메시야를 줄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아 듣는 편이 좋을 것 같다.그러나 이 상징은 복잡하여 신약시대의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오히려 여자는 교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고(13절이하) 그리고 그 성원이 용의 박해를 받고 있다는 점을 보면 이 여자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6절-메시야이신 아기가 하느님과 그 옥좌로 올라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7절-여기의 "하늘"이라는 말은 하늘 나라라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의 옥좌와 이 세상사이에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12절-싸움의 장소가 이제 하늘로부터 땅과 바다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다(18,17) 13절-이것은 크나큰 큰환난의 기간이다.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가지고"라고 한 것은 하느님의 보호가 신속하고도 확실함을 보여주고 이것은 또 성서의 어느 곳을 본 떠 말하는 말투이다(출 19,4;에제키엘 17,3). 15-18절-예수님의 권고를 따라서(루가 21,20-21) 신자들은 예루살렘 밖으로 나아가 에우제비오도 기록하였듯이 요르단 강 왼쪽 기슭의 바로 사막 변두리에 위치한 펠라라는 도시로 피난하였다
카톨릭 새번역
5장1절-에제2.9-10에서 빌려온 이 두루마기 표상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우선 하느님의 계획을 담은 책일 수 있다.이 책이 봉인된 유언의 형태로 제시된다는 것이다.그리고 이 봉인을 뜯으실 수 있는 분은 유일한 '유언'집행자이신 그리스도 한분이시다.이미 3세기에 볼 수 있는 또 다른 해석에 의하면, 이 두루마기는 구약성서로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계시하고 실현시키는 분이시라는 것이다.이 두 가지 설명에서,두루마기 양쪽에 글이 적혀 있다는 것은 ,이제 실현되려고 하는 하느님의 계획의 완전하고 결정적 성격을 뜻하거나,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새롭고 영적인 구약성서의 이해로서 순전히 물질적인 이해와 반대되는 것을 뜻할 수 있다[2고린 3.14~16 참조]. 3절-천상과 지상과 지하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우주 전체를 가리킨다.{200주년 신약성서주해,창조계를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비록 표현이 조금 다르지만 이미 출애 20.4(시편 146.6참조):"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위에 있는 것이나,땅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이것은 하늘과 땅과 땅속의 물이라는 바빌론의 구분법과 통한다.나중에 땅 밑의 물 자리는 지하 왕국으로 대치되었다[필립2.10 참조]. 5절-죽고 부활함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신 그 힘으로 봉인을 떼실 수 있다는 것이다[요한12.31-32,16.3 :1고린15.45: 에페1.10 참조]. 6절-이사53.7을 연상시키는 "살육당한 것 같았다"라는 표현에 나타나듯이 묵시록의 어린양은 능력과 노여움을 가지고 적대세력에 대항하는 모습이다.한편 요한복음에서는 깨끗하고 거룩한 면이 더 강조된다.그래서 보통 용어가 다르다.묵시록에서는 아르니온을 요한복음에서는 암노스를 쓴다.둘다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묵시록에서는 어린 양과 짐승의 싸움이 계속 나오므로 강한 인상을 주는 용어를 사용했다.일곱뿔은 구약성서와 후기 유다문학 전승에 따라 충만한 힘[민수 23.22 참조]과 왕의 위엄[시편 112.9 참조]을 상징한다.즉 메시야적인 힘을 말한다[신명 33.17: 1사무 2.10 참조].일곱 눈은 세상에 보내진 하느님의 일곱 영으로 성령의 활동을 총칭한다.즉 "일곱 눈"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과 충만한 지식[全知전지]을 상징한다[모든 것을 샅샅이 보고 계신 "야훼의 눈"에 대해 말하는 즈가 4.10 참조]. 9절-구약성서 특히 시편에서 "새로운 노래"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베푸신 "새로운 호의에 대한 감사가다."새로운"시대에는 이 찬가가 더욱 넘쳐 흐를 것이다.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인 새로운 창조는 마음으로부터 기쁨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6장8절-땅의 4분의 1만 파괴한다는 것은 마지막 시기에 있을 큰 환난에 대한 서곡으로 부분적 환난을 말한다.12절-지진은 인간의 역사에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심에 대한 피조물의 반응을 말한다. 15절-왕에서 종까지의 다양한 사회계층[13.16,19.18참조] 을 애용하는 상징적 숫자 7을 통해 인류 전체를 지칭하면서 어떠한 계층도 하느님의 개입을 면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16절-이 구절은 호세 10.8절에서 유래한다: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산더러 묻어 달라.언덕더러 무너져 덮어 달라고 애원하리라."}. 7장4절-"144,000명"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나온 수이다.이제 5절에서 8절까지 나열된 이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유다인들로서
이민족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무수한 무리[9-10절]와 구분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그러나 그보다는,이 둘이 함께 하느님의 백성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14절-이 문장은 순교나 세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더욱이 일반적으로 승리,깨끗함,거룩함,또는 축제에 참여하는 것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렵혀진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용서받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즉,어린양이 겪은 시련과 고통의 결과로서 의인들이 나타나게 된다.구약에서 죄로 자기 옷을 더럽힌 사람과 하느님의 능력과 자비와 은혜로 깨끗해지고 정결하게 된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같이[이사 1.18,64.5 즈가 3.3-5참조],묵시록에서도 흰옷 입은 사람들이란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이 사람들이 자기 예복을 어린양의 피로 희게 빨았다는 것이란 인간 구원 사업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글스도께서 하신 것임을 말한다.그러나 또한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써 얻은 선과 그효과가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뜻도 포함한다.} 8장1절-"침묵"의 까닭은 다양하게 해석된다.첫째,성도들의 기도가[3-5절] 하느님의 어전에 들리게 하려는 것이다....셋째,하느님의 현현의 전조이다[욥4.16,스바1.7,즈가2.17 참조].넷째,하느님의 면전에서 특히 전례중의 어떤 단계에 가서 지켜야하는 침묵을 가리킨다.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분양 예물을 올리는 동안에 침묵을 지켰던 것 같은데,이제 3-5절에서는 천상에서 분향하는 이야기가 나온다.{8.1-11.14[일곱 나팔]:처음 네 나팔 단락은 길이나 구조가 거의 같다.마지막 세 나팔은 세 재난과 겹쳐서 나타난다.다섯째와 여섯째는 길고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여섯째와 일곱째 사이에는 "천사와 작은 두루마리"[10장] 그리고 "두 증인"[11.1-13] 이야기가 삽입되어 여섯째[9.20-21]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답한다.마지막 일곱째는 마지막 재난과 일치하면서 다음에 따라오는 모든 주제를 포함한다.} 9장1절-그냥 별이 아니라 어떤 초자연적 존재를 가리킨다.이러한 존재가 땅에 떨어진다는 표상은,유다교 묵시문학에서 천사들의 타락과 추락을 상기시키는 데에 자주 이용된다. "지하"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아뷔소스'이다.이 낱말은 본디 '바닥이 없는','깊이를 알 수 없는'을 뜻하는데,정관사와 함께 쓰이면 '심연' 또는 '지하[세계]'를 가리키게 된다.고대인들은 우주가 찬상과 지상과 지하로 되어 있는데,지하에는 또 저승과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바로 이 "지하"에 마귀들이 최종 심판을 받을 때까지 갇혀 있다고 생각하였다[11.7,17.8,20.1,3 루가8.31 참조].신약성서에 9번 묵시록에만 7번 나오는 이 낱말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다...."구렁"에 해당하는 말은 '우물'이나[루가14.5,요한 4.11-12] '구렁' 또는 '갱도'를 뜻하는데 여기에서는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의 의미로 쓰인다. 11절-이들은 명백히 "지하"의 세력으로 지칭한다.그 우두머리의 히브리 말 이름인 "아바돈"은 "멸망","파괴"를 뜻한다.[이미 욥26.6에서도 볼 수 있지만] 성서 이후 유다교에서는 이 명칭이 가끔 '저승'이나'지옥'의 동의어로 쓰인다.그런데 히브리 말의 추상 명사가 그리스 말로는 "아폴리욘" 곧 '파괴하는 자'로 옮겨진다.이는 정확한 번역이 아니지만 의도적인 것이다{히브리어 아바돈이라는 이름은 지혜문학에 자주 나타난다[욥기 26.6 잠언 15.11 시편 88.12 등].그러나 묵시록에서처럼 인격화하는 일은 없다.70인역의 그리스 어로도 아폴레이아[파괴]라고 번역되지 아폴리온[파괴자]이라고 번역되지는 않는다.}곧"아폴리욘"은 그리스인들의 큰 신 가운데 하나인 '아폴론'을 생각하게 한다. 14절-"유프라테스"는 구약 성서 시대에 이스라엘인들을 못살게 굴던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제국의 "큰 강"이었다.그리고 묵시록이 저술될 당시에는 로마 제국의 동쪽 경계로,그 너머에는 무서운 파르티아인들의 제국이 펼쳐져 있었다. 20절-'단념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다음 절에서처럼 보통 '회개하다'로 번역되는 동사이다. 21절-"마술"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특히 마술에서 쓰이는 약이나 주문을 가리킨다. 10장9절-'말씀을 받는 것은 달지만 예언직을 수행하는 일은 쓰다.',구원을 예고하는 것은 수월하지만 심판을 예고하는 것은 힘들다.','선택을 예고하는 것은 달콤한 일이지만 박해를 예고하는 것은 쓰라린 일이다.'등으로 해석되는데,어느 것이 딱 맞다고 단정짓기가 쉽지 않다.{-비록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특히 유다계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그리스도를 "천사"라고 일컬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와 이 "힘센 천사"를 동일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묵시록에서 그리스도를 천사로 묘사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11장1절-예루살렘 곧 "거룩한 도성"은[2절] 그 안에 있는 성전때문에 교회의 상징이 된다.그러나 이 지상 예루살렘은 예언자들과 그리스도를 죽인 곳이기도 하다.이 예루살렘이 이렇게 하느님을 거부한다고 의미에서 현세를 상징하는 표상이 되기도 한다. 2절-"42달"곧 3년 반은 다니7.25와 12.7에서 빌려 온 전형적인 기간을 말한다.다니엘서에서 3년 반이 시리아 셀류코스 왕국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임금이 일으키는 밧해 시기를 뜻한다.묵시록에서는 이제 3년 반 또는 1260일이 전형적인 것으로,종말이 닥쳐오는 시련의 기간과 교회가 지상에 머무르는 기간을 가리키게 된다[11.3,12.6,14,13.5 참조]. 3절-이 두 증인이 모세의 증언[6절]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언을[7-12절] 종합하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 같다. 19절-이 서술을 잘 이해하려면 그 배경을 이루는 유다교와 랍비들의 특정 주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탈출 25장에 의하면 시나이 산 계약의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의 두 판을 담은 계약 궤는 천상에 있는 궤의 모양에 따라 만들어진다.여기에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천상에 있는 바로 그 원형이다.다른 한편 유다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계약 궤는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종말의 때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2마카 2.8 참조].여기에서 이 두 주제가 합쳐진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맺어 주신 계약이 그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시사한다.{1절-"측량"이라는 상징적인 행위는 유다문학에서 여러 의미가 있다.:(1)"보수"나"재건"[에제40.3,41.13 참조],(2)"파괴"[아모 7.7-9 참조](3)"보호"나"보존"[에녹1서 66.1-5 참조] 이곳에서 측량하다는 의미는 명백하다:하느님의 백성을 거슬려 일어나는 이방 민족의 두목인 적그리스도의 공격에서부터 신자들로 이루어진 영적 성전인"하느님의 성전"을 보호하라는 의미이다. 2절-"성전의 바깥뜰"은 성전 담안에 있지만 성소의 성격이 없고 따라서 이방인의 접근이 허락되었던 곳이다.성전과 제단 그리고 그 안에 예배하는 자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거룩한 "남은자들"로 표현되는 묵시록의 고유한 상징안에서 성전의 바깥뜰은 성도의 나머지 부분과 함께 불충실한 유다민족을 가리킨다.그들은 이미 예언자들의 시대부터 이방인들의 세력에 맡겨진 자들이다. 13절-도성의 10분의 1이 무너지고 주민 7000명이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니 죽임을 당한 이 7000명 역시 주민의 10분의 1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숫자는 실제 숫자라기보다 상징적 숫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곧 사회의 모든 계층을 나타내는 상징 수 7과 셀 수 없이 많은 수를 나타내는 상징수 1000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믿음이 없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 했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12장1절-"발밑에 달"이 있다는 것은 달을 딛고 선 것이 아니라 달을 발판으로 하고 왕좌에 앉은 모습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12개의 별"은 유다교 전통에서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신약성서에서는 교회를 구성하는 12사도를 가리킨다[21.14]. 2절-이 "연인"은 시온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이사54장 60장 호세2.21-25 참조].시온은 곧 그곳에 모인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메시야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이 백성에게서 태어난다.....또 다른 학자들은 묵시록의 저자가 이 구절에서 교회의 상징으로서의 마리아를 생각하였으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4절-용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기고만장하여 하느님을 거스르는 교만한 짓을 자행하는 것이다[다니8.10참조]. 5절-하느님께 들어올려짐 곧 그리스도의 부활로 사탄의 패배가 시작된 것이다. 6절-사실 이집트 탈출 이후 성서에서는 "광야"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보호를 상징한다[예컨대 1열왕 17장,19.1-8 참조].그러면서도 광야는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 가하시는 시련을 상징하기도 한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5장1절-섬유조직이 횡적으로 되어있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옆으로 쓰는 것이 종적으로 되어 있는 두루마리에 반대쪽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6절-챨스가 일곱 뿔을 가진 어린 양의 개념을 묵시적 전통에서 직접 도입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틀림없이 옳은 말이다[ICC].에녹1서 90.9에서는 마카비 가족들이 "뿔 달린 양들"로 묘사된다."요셉의 유언"에서 이스라엘의 적들을 처부수는 것이 바로그 어린 양이다[19.8 이하].에녹1서 90.37에서 이 군대 지휘자는"큰 뿔들이 있는 흰 소"로 묘사된다.깨끗한 굴복을 상징하는 대신에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과 함께 존귀를 누리시며 인간이건 마귀건 우주에서 그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에 대하여 승리를 얻게 될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비롭고 묵시적인 칭호"이다. 9절-구약의 제사의식에서 송아지의 피는 번제단 밑에 부어졌다[레4.7;출29.12].이 피에는 육체의 생명 또는 영혼이 들어 있다[레17.11].순교자들의 영혼이 제단 밑에 있다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일찍 죽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하늘의 제단에 드려진 제물이라는 것이다.바울은 그의 임박한 죽음을 관제로 부어질 제물로 보았다[딤후 4.6;빌 2.17]."의인들의 영혼은 영광의 보좌 밑에 간직된다"고 한 한 랍비의 기록에 있는 다소 유사한 개념은 순교자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한다.7장5~8절-새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교회에 대한 개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느 날"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하리라"는 약속을 주신 데서 생긴 것 같다[마19.28;눈22.30].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참 유대인이며[롬2.29] 교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갈6.16]이라고 기록한다.야고보는 로마 제국 각 처에 "흩어져 있는 12지파"에게 문안한다[1.1].베드로는 신자들을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벧전2.9]라고 부르는 데 그 표현을 구약에서 직접 인용하여[사43.20;출19.6] 신약의 교회에 다시 적용하였다.....단 지파가 생략한 것은 일찍부터 우상숭배와 관련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단 지파가 북쪽으로 이주하여 라이스에 정착하였을 때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었다[삿18.30].후에 단은 북쪽의 큰 산당 중 하나가 되었다[왕상12.29]."단의 유언"[5.6]에서는 사탄이 그 지파의 왕이라고 불린다.2세기 후반기에 저술한 이레니우스는 단의 생략이 그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승때문일 것이다고 기록하였다.틀림없이 창세기 49.17과 예레미야 8.16과 같은 귀절의 랍비식의 해석에 기초를 둔 것이다.9장5절-메뚜기가 사는 5개월의 기간에 의하여 결정되있을 수도 있다.그 기간은 메뚜기 침략의 위험이 상존하는 건조기[봄에서부터 늦은 여름까지]에도 일치한다.8절-삼손과 압살롬이 다 긴 머리털을 가졌다는 것은 긴 머리털이 여성의 상징이 아니라 활력의 상징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15절-캐어드는 "파르티아에 대한 로마의 노이로제"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것은 기원 전 53년에 크랏수스의 패배로 시작하여 기원 62년에 볼로게세스의 수치스러운 항복으로 깊어졌다.11장1-2절-요한에게 척량으로 상징된 보존이란 육체적 고난과 죽음에 대한 안전이 아니라 영적 위험에 대한 안전이다.그것은 7장1-8절의 인침과 상응하는데 그 인은 육체적 죽음에서의 보호가 아니라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보증이었다[7.4-8] 이 해석은 그 성전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전3.16-17;고후6.16;엡2.19-22 등 참조]...제사장들만이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으며 따라서 예배드리는들이 신실한 자들을 가리킬 수가 없다고 하는 반론은 모든 신자가 실제로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신약의 가르침으로 해결된다[벧전2.5,9;계1.6,5.10].척량을 위한 도구는"지팡이같은 갈대"였다.요단 계곡에 대나무처럼 생긴 나무가 자라는데 척량하기에 족할 만큼 길고 단단하였다[눅7.24참조]....솔로몬의 성전은 2개의 뜰을 가지고 있었으나[왕상6.36] 헤롯 성전의 안 뜰은 3뜰[여자의 뜰,이스라엘인의 뜰,제사장의 뜰]로 나뉘어 있었다.이 3뜰은 벽에 의하여 이방인의 뜰로부터 분리되었는데 그 벽에는 어떤 이방인도 이 지점을 지나가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비문들이 있었다. 8절-이사야1장9-10절과 에스겔 16장 46-49절에는 예루살렘이 소돔이라고 불린 곳으로 종종 인용된다.그러나 알포드가 지적한 것처럼 이사야의 글에서 그렇게 불린 것은 유대 사람이며[성이 아님] 에스겔서에서 예루살렘은 소돔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구약에서는 결코 예루살렘이 애굽으로 불리지 않는다.
국제성서주석
5장1절-이 귀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적어도 일곱 증인들이 봉인에 의해 계약이 유효하게 된디고 하는 하나의 계약 양식이 로마법에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계약은 어떤 두루마기가 아니라 판에 쓰여져 있으며,봉인들이 그 판들을 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다이스만,쉬타릿츠,롤러,보른캄에 의하면,이 두루마리는 봉인된 텍스트와 개봉된 필사본으로 이루어진 이중문서라고 한다.그러나 하느님의 비밀 계획이 들어 있는 텍스트가 봉인을 열기전에 알려져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개연성이 없다.
[요한묵시록 성경주해] 13장-22장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13장의 두 마리 짐승과 17장에 나오는 바빌론의 도시에 대한 해석은 묵시록의 역사적 이해에 있어서 참으로 결정적인 것이다. 첫째 짐승의 모습은 다니엘서 7장에서 온 것이다.예언자는 거기서 하느님의 적인 네 이교국의 권화라고 할 수 있는 네마리의 무서운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본다.독수리의 깃을 가진 사자는 바빌론 제국,곰은 메드인제국을 상징한다.깃이 있는 표범은 페르시아 제국,열개의 뿔을 가진 기묘한 네 번째 짐승은 알렉산더 대왕과 그 상속자의 나라에 대한 상징이다....네번째 나라의 가장 횡폭한 군주는"작은 뿔"(다니엘 7:8)로 상징되었다. 이 임금은 유다백성과 이스라엘 백성과 그 하느님에 대한 잔인한 적인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기원 전 175~164년)를 가리키고 있다.묵시록 13장 1절 이하에 묘사되어 있는 첫째 짐승은 다니엘서의 네마리의 짐승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러나 네째 짐승은 특히 그 "작은 뿔"을 원형으로 삼고 있다.다니엘서와 유사성만으로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이 세상의 역사적 사실을 나타낸다고 추리하기에 충분하다.그리고 13장 9절 이하에서 독자에게 주는 훈계는 영상을 보는 요한이 쓰고 있을 당시의 교회에 절박하게 다가오고 있는 정치 세력의 위협이어서 결국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마제국에 대한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이것이 묵시록의 첫째 짐승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라고도 생각된다....묵시록에 묘사되어 있는 광경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말년의 역사적인 상황과 빈틈없이 들어맞는다.이교도 및 그리스도교 문헌은 잔인성에 있어 네로와 앞 자리를 다툴 이 황제가 95년과 96년에 걸쳐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박해를 시작하고그 당시의 많은 순교자들 가운데는 프라비아가家 곧 황제의 한 집안인 집정관 플라비우스 클레멘스와 그 아내 도미틸라도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그들에게 추궁된 죄목은 무신론 곧 그 나라의 신들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치정 말년에 이르자 도미티아누스는 더욱 더 포악한 정치를 강화하여 갔다.역사가 즈베토니우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도미티아누스는 측근의 비서에게 무엇을 쓰게 할 때"우리의 주 또는 하느님께서 위와 같이 명령한다...."라는 양식을 사용하였다....황제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칭호를 자신에게 붙이고 신하들에게는 절대적인 주님으로서 자처하였고 동방에서 신정정치를 한 왕처럼 살아있을 때부터 하느님으로서 예배를 받고자 하는 의사를 자주 나타내었다.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시아의 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주"라는 칭호를 거절하였을 때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였다.도미티아누스에 대해서는 제국 여러 곳에 대리석이나 금은으로 만든 상像을 세웠다.그리고 소아시아의 에페소에서는 그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무렵 신전을 세우고 거기에 거창한 황제상을 만들어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헌상문에서는 황제의 모든 칭호를"하느님"이라는 명칭에 사용되고 있다.황제의 입상에 대한 예배나 봉헌물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으뜸인 카이사르에게 존경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여겼다.그리고 소아시아에서는 처음부터 황제에 대한 예배가 굉장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곳에 있는 여러 도시에서는 앞을 다투어 자신들이 지녔던 황제숭배에 대한 열성을 나타내려고 하였다.이러한 실정을 아울러 생각할 때 그리스도 신자는 믿음을 위하여 이러한 예배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만간 당국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어쨋거나 요한은 신격화되아 가고 있는 로마 제국과 그리스도교 사이에 피를 뿌린는 참극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고 그것을 예언한다.자기가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베스파시아누스)황제는 6번째 이지만 7번째(티투스,79-81)의 짧은 지배가 끝나고 8번째(도미티아누스)가 되면 교회에 있어서(17:10 이하) 크나 큰 환난(17:14)의 시대가 전개되리라고 알려준다....둘째 짐승은 "전체주의 국가의 사상면의 선전력"을 일반적으로 나타낸 것이다.용으로 부터 싫든 좋든 제국의 모든 주민에게 첫째 짐승을 예배하게 하는 (13:11) 사명을 받은 자여서 그렇기 때문에"거짓 예언자"라고 부른다(16:13.19:20,20:10)....많은 성서학자가 이 둘째 짐승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이교의 사제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황제에 대한 예배를 관리하는 사제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성서주석 50-김철손
여기에"네로 부활 전설"이 등장한다.폭군 네로는 68년에 분노한 군중들에 몰려서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의 죽음을 의심하는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네로는 죽지 않고 동쪽 파르티아로 도피하여 재기의 때를 노리다가 다시 도미티아누스 황제로 둔갑해서 나타났던 것이다.그런데 이 전설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그러나 이 짐승의 외모가 암시하듯이 매우 강력한 정치적 세력을 가지고 행정을 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순교자들을 무시하고 자신을 신으로 자처하고 나서서 로마 전 식민지 시민에게서 "주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받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지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그런데 이 짐승을 신으로 숭배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리스도의 구속에서 제외된 비그리스도인이나 반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종말의 때의 하나의 가장 뚜렸한 현상은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출현하며 그들의 사기 행위에 현혹되어 타락하는 사람들이 많아 진다는 것이다.그래서 일찍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막 13:22)고 예언하였다.이 예언의 말씀이 여기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여기에는 새로운 말이 더 첨가되어 있는데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겠다는 것이다....그런데 그리스도교 박해자는 네로만이 아니다."네로 부활 신화"에 해당되는 제2박해자 도미티아누스 황제도 666으로 계산 할 수 있다."666"을 로마 글자로 표기하면 DCLXVI이다.이것을 다시 분석하여 설명하면 DC는 Domitian Caesar(도미티안 황제)의 첫 글자이며 XVI(16)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기간이다.그러므로 DCLXVI는 도미티아누스황제가 16년간 통치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라는 것이다.그런데 그 후도 그리스도교 박해자는 무수히 많이 나타났다.신기한 것은 이름난 박해자의 이름들이 대체로 "666"으로 계산된다는 것이다.그밖에"적그리스도"에 해당하는 인물이나 또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교황의 이름들이 들어 있다.
페데리꼬 바르바로
14장4절-주의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 144,000명이 7장 2절 이하에서 표를 받은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그것을 위하여 3년반에 걸친 크나 큰 환난을 뚫고 나가야 할 일반 그리스도인 신자를 가리킨다는 것이다.따라서 이것이 결혼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 없다."여자들과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투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개념을 나타내기에는 부적절한 것임을 생각할 때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이에 대하여 이런 표현은 호세아,예레미야,에제키엘 등 구약의 예언자들의 말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교를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20절-이 강은 1,600스타디온(1스타디움은 185미터이다.약 296킬로미터)이다.어느 성서학자는 이 숫자를 지리적인 것으로 알아듣고 팔레스티나의 길이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사실 팔레스티나의 길이는 티로에서 에집트 국경인 엘 아라슈[아리쉬]까지 정확하게 말하면 1664스타디온이다.그러나 이 숫자는 상징적인 뜻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16장 10절-짐승이 앉은 자리에 즉 하느님의 원수인 로마와 로마제국을 말한다.12절-파르티아인의 왕들은 로마제국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파르티아의 왕들은 로마제국의 왕들을 공격하고 지상의 왕들은 선의 군대에 도전한다.종말론적인 싸움이다.21절-약 40킬로그램에 해당한다. 17장2절-황제숭배를 하고 있던 나라들 4절-짐승을 탄 여자는 그 도시가 정부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주홍과 진홍색 그리고 금은 보석의 장식은 매음부의 특징이다.그의 손에는 "흉측하고 더러운 것들이 가득히 담긴 금잔"이 있다.이것은 로마라는 도시가 우상숭배와 음행을 온 세계에 만연시켰다는 사실을 상징한다(14,8;18,3) 5절-로마의 부인은 정식으로 머리에 리본을 매고 있었는데 매음부는 그 리본에 자기 이름을 썼다.6절-네로박해 때의 순교자들 10절-6번째는 베스파시아누스[베스파시안] 황제.치정이 짧은 것은 티토[티투스]황제(79-81년) 11절-이 짐승(도미치아누스 황제)은 로마 제국의 다른 왕들보다 오래 살았으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항상 네로와 같았다.12절-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족.로마제국은 일시 이 야만족과 동맹하여 함께 교회를 박해하지만 후에 로마는 이에 망했다.16절-야만족은 로마를 전멸시킬 것이다. 18장 13절-계피보다 정확한 표현은 육계이다.향료는 머리에 바르는 기름이다.23-24절-벌의 천사는 로마 멸망의 3가지 이유를 말한다.공화국 시대에 지방을 괴롭힌 세리,로마에서 성행한 마술,그리고 그리스도교 박해 이 3가지이다. 19장16절-넓적다리에는 ,아마 가죽혁대의 일종일 것이다. 20장2절-막연히 긴기간을 가리킨다.6절-영원한 죽음 7절-여기서는 최후의 시대에 교회에 맞서는 이방국을 말한다. 21장 16절-12,000스타디온(1스타디온은 185미터이다)은 2,300킬로미터이다.17절-144규빗은 약 75미터이다. 22장 15절-개는 21장8절의 "흉측스러운 자"이다.마태오 8,12.15,22 이하는 유다인과 같이 이방인을 뜻한다.필립비3,2절에서는 유다교에서의 개종자를 가리킨다.
카톨릭 새번역
14장8절-"불륜"은 모든 종류의 불법적 성관계를 뜻한다.그리고 "포도주"는 여기에서 특별히 포도 열매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술"을 가리킨다.위의 표현은 폭음 난무하며 성적 방탕으로 흐르는 당시 여러 종류의 의식을 시사한다.이로써 저자는 더욱 폭넓게,우상 숭배의 영적 도덕적 무질서를 지적한다.여기에서 "바빌론"이라고 불리는 제국[로마]이 다른 모든 민족들까지 이러한 타락으로 끌여 들였다는 것이다.{15절-"추수"와 "포도수확"[20절]의 표상은 여호사밧 골짜기에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선언하는 요엘 4.13에서 유래한다.마르 4.29에도 같은 표상이 나온다.:"열매가 익으면 사람이 곧 낫을 듭니다.추수 때가 가까왔기 때문입니다."[마태25.24,26 갈라6.7,8 1고린 9.11 등도 참조].여기서 "추수"는 의인들을 거두는 것보다 불신자에 대한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고 본다. 20절-"도성"은 예루살렘.포도주 확이 도성 밖에 있음은 본래 속죄제물을 "진지 밖에서" 태우게 되어 있는 것과 관계가 있다[레위 16.27 참조].유다인 전승에 의하면 이방 민족을 멸하는 하느님의 심판은 도성 근처에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도 한다.이러한 묘사는 20장에 다시 나온다. 16장2절-4.6에서 이미 하느님의 옥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음을 보았으나 여기서는 따라나오는 모세의 노래"로 보아 선택된 백성이 건넜던 홍해를 암시함을 알 수 있다.모든 장면이 새로운 모세인 어린양이 선택된 당신 백성을 "수정 바다"를 거쳐 약속된 땅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극 곳에서 둘째 부활때까지 지내게 될 것이다. 3절-"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는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칭송하는 노래로서 동의어 반복이라고 하겠다.출애 15장에서 모세는 홍해를 건넌 다음 당신 백성을 구해주신 주님께 감사이 노래를 불렀다.이처럼 짐승에 대한 승리를 거둔 이들은 유리바다위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이 노래는 동시에 "어린 양의 노래"다.그들의 승리는 바로 어린양의 승리에 참여하기 때문이다.여기 나오는 표현들은 대부분 구약성서에 유래한다. 5절-천상 성전에서 묵시록에서는 "증거의 장막"이라 한다.원래 "증거의 장막"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다음 그 "증거의 궤"를 모셔 두기 위해 하느님 친히 분부하신 규격.설계.재료대로 세운 천막으로서 먼 훗날 건립된 성전의 효시다[출애 26장,40장 참조].그 증거의 장막이 완성되자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 찿다고 전한다[출애40.34 참조].이 "증거의 장막"을 "만남의 장막"이라고도 한다.그 안에서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 백성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이 "증거의 장막"도 "계약의 궤"[11.19]와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며 그 우너형은 하늘에 있다.따라서 지상 "증거의 천막" 원형인 천상 "증거의 장막성전"이 열렸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약속하신 구원이 가까워졌음을 말해준다. 16장2절-짐승의 추종자 즉 "거짓 예언자"가 선포한 제국적인 힘에 대한 숭배에 참여한 자들에게 내린다. 10절-짐승의 권좌는 교회를 박해하는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 시를 가리킨다. 13절-개구리는 구약에서 재앙과 관련되며[출애 8.5-11 시편 78.45,105.30 참조].더러운 짐승으로 여겨진다[레위 11.10 참조].또한 개구리의 소리는 무익하고 무의미함을 상징한다. 16절-가르멜 산 동쪽 에스델론 평원의 서부 지역인 므기또는 수많은 왕들이 죽어간 전쟁터로 유명했다.시스라도[판관 4장],아하지야도[2열왕 9.27],요시야도[2열왕 23.29] 거기서 전사했다.특히 요시야 왕의 전사는 온 이스라엘의 백성의 애도를 자아냈다[즈가 12.11 참조].히브리어로 하르마게돈은 "므기또의 산"이라는 뜻이다. "산"이라고 한 것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또 다른 무리가 모인 어린양의 산[14.1-5] 과 한 쌍을 이루는 것 같다.이런 상징적인 의미로 "하르마게돈"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산,복음을 박해하는 로마에서 생긴 우상과 죄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18장1절-"창녀"는 구야성서에서 가끔 우상 숭배를 하는 민족이나 고을을 상징한다[이사 1.21,23.16-18 에제 16.15-63 호세 2장,5.3 나훔3.4 참조].여기에서 말하는 "대창녀" 곧 "비빌론"은[5절]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우상 숭배와 교회를 박해하는 세력의 중심지인[6절] 로마 시를 가리킬 것이다."큰 물 결"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본디 역사적 도시 바빌론의 특징인데[예레 51.13],여기에서는 "백성들과 군중들과 나라들과 언어들" 곧 많은 민족과 국가로 구성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15절].구약성서에서도 사람의 무리나 군대를 곧잘 "(큰)물"로 표현한다[시편 144.7 이사 8.6-7,17.12-14,28.17 예레 47.2].이 창녀는 또 머리가 7개나 되는 짐승을 타고 있는데[3절],이는 로마 시가 자리잡은 7 동산을 의미한다.2절-많은 임금과 백성들이 황제 숭배에 동참하였음을 가리킨다. 9절-"일곱 임금"은 통상 연이어 왕좌에 오른 로마의 황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11절-말 그대로는 전에 이미 통치한 적이 있는 황제들 가운데서 다시 한 사람이 왕좌에 오른다는 말이다.이는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그 역시 네로 황제처럼 교회를 박해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네로라는 것이다. 16절-"열 뿔" 곧 로마 제국의 열 속국의 임금들과 "짐승" 곧 로마 황제 자신이 로마 시를 파멸로 몰고 가리라는 것이다. 로마 제국에서는 네로 황제가 죽은 뒤 한때,그가 동쪽에서 파르티아 동맹군들과 함께 진격하여 로마를 정복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는데, 위의 예언은 이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18장13절-노예,포로중에서 포로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본디 "사람들의 목숨들[또는 혼들]"을 뜻하는데,여기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앞의 낱말[노예]와 함께 "노예 곧 사람"으로 옮기기도 한다.{사람의 몸[소마톤:때때로 ㅣXX에서 "노예"로 표현된다:창세 34.29 참조]과 "목숨"[프쉬카스:LXX 에제27.13에 따르면 "영혼"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이 맨 마지막에 나온다.아마도 당시 가장 값싼 거래물이었던 모양이다.} 22장1절-고대의 우주관에 따르면 "바다"는 태초의 혼돈의 잔재이며 지하 세계 세력들의 거처이기 때문에,새로운 창조에서는 더 이상 바다가 나오지 않는다. 2절-교회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교회가 사람들의 손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우시고 움직이시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이와 관련하여 갈라 4.26도 참조]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14장1절-요한의 환상에서 그 산은 지상에 있지 않다.이곳은 하늘의 시온이며[히12.22]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다[갈4.26]키들은 이것을 "한때 거룩했던 예루살렘의 하늘 모형"이라고 부른다....4절은 그들을 선택받은 일단의 특별한 성도들로 따로 구분하는 것 같다.그들은 첫 열매로서 하나님에게 특별하게 성별되었으며 또한 그들은 독신자로서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144,000명 앞에 아무 말도 없다는 것이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그러나 그들을 구속받은 자 전체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3-5절의 주석이 자세하게 보여 줄 것이다.7장에서의 144,000명은 앞으로 있을 환난들에 대비하여 인침을 받는다(7.4-8).이제 같은 수인 144,000명이 마지막 시련을 넘어서 안전하게 서 있다.그 144,000명이라는 수의 사용은 한 사람도 잃어버린 바 되지 않앗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16장10절-어떤 의미에서 5째 대접을 첫째 화의 요약으로 간주하면서 챨스[ICC]는 짐승의 나라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로 어두워 진다고 추측한다[9.2] 12절-유프라데스강은 ...로마제국의 동부를 많은 두려움의 대상이 된 파르티아족-그들의 우수한 기병 궁수들이 유브라데강에서 인더스강까지의 전 지역을 정복한 바 있었다-으로부터 분리시켰다.21절-약100파운드,탈란톤은 사람과 시대에 따라 그 무게가 달랐는데 약 60파운드에서 100파운드 남짓 되는 것 같다.알포드는 디오도루스 시쿨루스가 무게가 각 각 1므나[약 4파운드]나 나가는 우박에 대하여 언급하며 달란트를 60므나였다고 한 것을 주목한다.22장15절-신명기 23장 17-18절에서 그 용어는 남성매춘부를 뜻한다.챨스[ICC]는 LARNAKA라나카 에 있는 ASTARTE아스타르테 사원의 비문에 의하면 개는 남색자 내지 남성 매춘부를 가르키는 전문 용어였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성서주해] 20장 천년왕국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성 아우구스티노는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세상 종말까지의 그리스도교의 전역사라는 뜻으로 취하였다.성 아우구스티노에 따르면 첫째 부활은 세례를 받으므로써 죄로 말미암은 죽음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며 사탄의 포박은 사탄이 악인의 마음에 살아야 할 것이라는 판결을 나타내고 이에 대하여 부활한 사람의 나라는 부활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 지배를 행한다는 뜻이다.
성서주석 50-김철손
논의되고 있는 천년설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1) 전천년설-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있은 다음에 천년 시대가 온다는 것인데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 가운데는 초대교회 교부 유스티누스를 비롯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 일반화되어 있다. (2) 후천년설-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 시대가 지나간 뒤에 온다는 주장이다.그런데 천년 시대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이다.좀 막연하지만 복음이 이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하여 전세계가 복음화하여 이 지상에 천국이 실현되는 그때까지를 말 한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클라이막스 단계에 예수님께서 재림한다는 것이다. (3) 무천년설,반천년설-'1000'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인 표지로 보기 때문에 결코 1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또 이 지상에 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제한된 공간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언제든지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천년설도 후천년설도 다 거부한다....장구한 세월의 시간개념이 전혀 없이 '천년'이라는 상징적인 말만 사용했을 뿐이다.그러므로 여기서는 전천년설도 후천년설도 전혀 고려할 여지가 없다.다만 천년이란 일정한 시간동안 영적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제사장처럼 권위있게 지낼 것이며 비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이나 다름없는 어두운 생활을 할 것이라고 요약해 말할 수 있다.
카톨릭 새번역
다양한 해석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설명으로 구분 할 수가 있다.첫째는 이른바 천년왕국설,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래주의적 해석이다.이에 따르면 묵시록은 하나님의 나라와 구분되는 지상 왕국이 천년 동안 지속된다고 예고한다.이 해석은 그야말로 혼잡스러운 추측과 상상을 일으켜 왔다.그래서 주석가들은 이 문제를 더욱 신중한 자세로 접근하게 되었다.그들은 이를 역사의 완성이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예언적 예고로 알아듣는다.하느님께서는 종말의 첫 단계에서 이 세상 자체가 당신 계시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둘째는 상징적 또는 영성적 해석이다.이에 따르면 여기에서 말하는 기한은 미래에 펼쳐질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때와 종말 사이에 펼쳐지는 시기이다.이와 관련된 동사들이 미래로 쓰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전통적 예언의 표현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사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때부터 사탄은 이미 결박된 상태에 놓여 있다(마태 12,25-29 참조).이러한 의미에서 천년에 대한 언급은 7,000년을 한 주간으로 계산하는 우주관에서 빌려 온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이보다는 첫 인간이 낙원에 머무른 기간과 관련된 유다인들의 여러 추측을 시사하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금지된 열매를 먹으면 그 날로 죽는다고 말씀하신다(창2,17).아담은 930살을 살고 죽는데(창5,5),시편 90,4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천 년이 하루 같다.그래서 천년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믿는 이들에게 지금부터 벌써 낙원의삶으로 들어 가는 길이 실제로 열리게 되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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