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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월요일

MINOR PROPETS

[호세아서 성경주해] 1-2장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1장1절-호세아,도움 ,구원....주제에 의하면 호세아는 약 60년 또는 65년 동안 자신의 선지 사역을 수행하였다[여로보암(저자의 연대824-810) 웃시야 치하(저자의 연대810-758.IDB연대783-742,카톨릭연대는 781-740)에서 27-30년,요담(저자의 연대758-727,IDB연대742-735,카톨릭연대는 740-735)과 아하스 치하(저자의 연대742-727,IDB연대735-715,카톨릭연대는 735-716?]에서 31년,히스기야 치하(저자의 연대727-698,IDB연대715-687,카톨릭연대는 716-687)에서 1-3년].이것은 또한 그 책의 내용과도 일치한다.3절-고멜은 수동적안 의미에서 완전함,온전함을 의미하고 파괴나 죽음을 나타내지 아니하며 그 여인이 철저하게 그녀의 음행에서 매우 심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디블라임 역시 민수기 33장 46절[알몬 디블라다임]과 예레미야 48장22절[벧 디블라다임] 에서 모압인의 장소의 이름으로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고유명사로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그 단어가 에브라임이란 형식과 같이 데브헤라에서 만들어졌고 데브레림은 무화과 떡이라는 의미이다."무화과 떡의 딸"은 "무화과 떡같은 모습"과 같은 말이고 3장1절에서 건포도 떡[과자]을 즐기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4절-첫번째 아들은 기손 북쪽에 위치한 비옥한 이스르엘의 평지 이름을 따라 이스르엘이라고 하였다[수 17.16].그러나 그 이름은 명칭상의 의미 즉 "하나님이 씨뿌리신다"와는 상관이 없다.이러한 의미는 무엇보다도 2장 22-23절에서 언급된 구원의 선언에서 암시되었다[분산하거나 흩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슥 10.9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을 의미한다.]...아합과 이세벨이 흘린 바 그 모든 종들 즉 선지자들의 피를 응징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엘리사에게 지시하여 아합의 집 전체를 멸하라는 사명을 주고 예후를 왕으로 기름붓게 하시었다[왕하 9.1 이하]예후는 이 명령에 복종하였다.그는 아합의 아들 즉 요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속한 그 땅에 던졌고 동시에 주의 말씀을 쫓았을 뿐만 아니라[왕하 9.21-26],아합의 70명의 자식과 아합 족속의 나머지 전체와 이세벨에게 신적 심판을 집행하였다[9.30-10.17].그리고 결과적으로"여호와로부터 네가 나보기에 정작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함의 집에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4대[여호아하스-여호아스-여로보암2세-스가랴]를 지나리라"[10.30]라는 약속을 받았었다.이 내용을 통해서 볼 때 예후의 집에 응징한 바 이스르엘의 피흘린 죄는 거기에서 예후가 아합의 족속을 진멸하였다는 사실에서 살필 것이 아니고 힛지그가 생각한대로 그가 요람과 이세벨을 죽인 것으로 만족치 아니하고 유다의 아하시야와 그 형제들을 죽음에 처하였다는[왕하9.27,10.14] 사실에서 찿아봐야 한다.그리고 10장11절에서 설명된 대량 학살에서 그 사실을 찿아야 한다.하나님이 칭찬하신 행동과 그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한 자에게 약속하신 것은 본질적으로 피를 흘리는 죄의 행위는 아니다.분몀하게 명령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예후가 아하시야와 그 형제들을 죽인 것은 실제적으로 역사적 내용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다.왜냐하면 유다의 왕족이 아합 족속의 경건치 아니함에 빠져들어갔고 그 왕조와의 결혼으로 그러한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아하시야와 그 형제들은 아합의 딸 아달랴의 자식들로서 둘 다 아합 족속의 후손이요 기질에 속하였기 때문이다[왕하 8.18,26,27].따라서 신성한 지시에 따라 그들은 그 족속을 진멸하게 되었다....하나님에 의해서 원하였거나 명령된 일까지도 그것을 집행하는 자의 경우에서는 죄가 될 수 있는 일이다.그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의 뜻을 평범하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고 악함과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하였을때 그러하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남용하고 그것을 그 자신의 악한 마음의 정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때 그러하다.예후가 이것과 같이 그러한 동기에서 자극을 받았다는 것은 왕하 10장29,31절에서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없이 하였으나 느밧의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고 벧엘과 단에서 송아지 숭배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마음을 다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법에서 행하지 아니하였다는 저자의 증거에서 분명하다.5절-이스라엘의 활 즉 그 힘은 [활은 전쟁에서 사용한 주요병기이고 제유법적 수식어이며 지속적인 나라가 유지되는 바 전체 군사력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고 렘 49.35, 일반적으로 힘의 상징이다.참고 창49.24,삼상 2.4]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산산조각이 난다.7절-여호와는 자신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알고 경배하는 사람들에게만 자신의 전능하신 도움을 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유다는 기적적으로 구원을 얻었다[왕하19.4,37].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망각하고 파멸에 이르러서 필요한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맛 볼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10절-갈대아에서 주어진 자라는 뜻을 가진 나중 견해의 정당성은 포로의 땅에서 그들이 올라온 것이 언급된 11절에서 입증된다.이런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변화가 포로지에서 되어 진다는 것이 분명하다.11절-함께 모이는 것 즉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은 유다가 이스라엘과 같은 상황에 있게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다시 말하면 유다가 주에 의해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통합의 목적은 그들 자신이 한 두목을 세우는 일이다.그리고 그 땅에서 올라오게 된다.두절의 단어는 이스라엘 12지파가 이집트에서 떠나는 것을 마음에 회상시킨다.그들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운다는 표현은 민수기 14장4절을 모방한 것이고 그곳에서 패역한 회중이 스스로 이집트로 돌아가기 위래서 한 두목을 세우려고 한다.모세를 지적한다.그리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1장10절에서 나온 곳이다...이 견해의 정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2장 16,17절에 등장한다....성경의 역사서[에스라,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가 단순히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더불어 스룹바벨과 에스라 치하에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일부와 10지파의 일부가-이들은 귀환할 때에 자신들을 유다에게 속한 것으로 하였거나 수년이 지난 후 갈릴리에 되돌아왔었고 끌려갔던 사람중 매우 소수에 불과하였다......메시야때에 이루어진다....이러한 것은 베드로전서 2장10절과 로마서 9장 25절,26절에서 우리의 예언을 이 내용과 조화시킨데서 나타난다.베드로가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 이예언의 말을 인용했을 때와-이석은 현대의 거의 모든 주석학자들이 이방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바울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방인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부르셨다는 증거로서 똑같은 단어를 인용할 때에[2.1 과 1.10을 비교할 것] 2장2절-여인의 입장에서 순결이 없는 것은 신체의 이러한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행한 바 담대함과 수치없음을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함이다.7절-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이 찿았던 것을 얻지 못할 것 즉 사신 하나님의 형벌로서 보내신 바 재난에서 예상된 해방을 얻지 못하였음을 나타낸다.12절-포도밭과 무화과밭은 신중하게 울타리를 치고 가꾸어졌는데 숲으로 변하게 된다.다시 말하면 그 울타리와 좋은 땅이 변하여서 들짐승들이 그러한 것을 먹게된다.15절-금지규정에 으히여 주에게 바쳐짐 바 여리고의 약탈물 중 일부를 취한 아간의 죄때문에 이스라엘은 금지규정을 범한 죄에 해당되었고 따라서 주께서는 자신의 도움을 철회하셨으며 아이를 치러나갔던 군대가 패배하였다....주께서는 고난의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만드신다. 즉 그분은 자신의 교회의 죄를 도말하시고 그 교회에 자신의 은혜를 입히시어 그와의 우호스러운 언약관계가 더이상 그것들에 의해서 손상되지않게 하시거나 죄인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베푸시어 그러한 긍휼이 진노속에서도 스스로 나타나게 하고 심판과 긍휼을 통하여 사함을 받은 죄인들이 더욱 더 확고하게 내적으로 그분과 연합하게 하신다.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입장에서 이 운동에 응답을 하게된다.

카톨릭 새번역

2장 {암브로지오 스쁘레아피꼬,4-25절은 쌍무적 논고의 문학유형에 따라 씌여졌다.쌍무적 논고에서는 뮤죄와 유죄를 판가름하기 위하여 두 사람의 논쟁자가 만난다.쌍무적 논고에서는 판결문을 제시하는 외부의 재판관이 없고 두 사람사이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이 경우 논쟁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이다.이스라엘은 어머니요[4,7] 아내[4]로 소개되고 하느님은 남편이다[4.18].고발로 사건은 기소되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최초의 관계가 재개되거나 그 관계는 결정적으로 투쟁 관계에 머물 수 있다.13절-여자는 '바알의 날들'에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보상으로 땅의 재화를 갖게 되기를 기다린다.그러나 이와같은 주기성은 선물을 부정하는 것이다.주기적으로 재화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재화를 주고 받는 형태의 관계가 설정되기 때문이다.우상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주님의 선물이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선물의 無償性무상성을 잊어 버리게 된다.여자는 하느님의 선물이 거저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상들을 쫓아가 우상을 숭배하며 산다. 14절-'달래고'라고 번역된 동사는 유혹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곧 하느님은 속임수로 당신 백성을 꾀어내어 광야로 데리고 가신다.이런 행위를 통해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서 땅을 빼앗고 애인들에게서 멀어지게 하신다.유혹하는 하느님은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애인들과의 관계를 그만두고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21-23절-주님은 풍요로움의 참 하느님으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으셨음을 주시해야 한다.비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응답하는 것이 하늘이고 소출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소출을 제공하면서 응답하는 것은 땅이다....이러한 방법으로 자연의 풍요로움은 마술적인 명령이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자율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초월성이 자연의 이러한 힘과 혼동되어서는 안됨을 가르친다[참조 예레24.7,32.38;에제36.28].


[호세아서 성경주해]3장-6장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3장2절-호멜은 10밧 또는 에바에 해당하고 레텍은 반 호멜에 해당한다.결과적으로 선지자는 은 15세겔과 보리 15에바를 지불하였다.그리고 특별히 왕하7.1과 16.18을 검토할 때 그 당시의 보리 한 에바가 한 세겔의 가치가 있었다고 매우 자연스럽게 생각된다.출21.32에 의하면 그 경우에 전체값[은30세겔]을 노예 한 사람을 살 수 있는 그러한 양에 해당한다.그리고 전체값을 반절은 돈으로 그리고 반절은 보리로 지불하였다.4절-마짜바는 주상이고 바알에게 바쳐진 것이며[출23.24] 그것을 세우는 것은 그 이유때문에 율법에서도 금지되었다.[레26.1;신16.22;왕상14.23]...에봇과 드라빔은 예배의 조직의 한 부분을 구성하였다.그러나 그러한 것 역시 미래를 살피는 데 사용된 방편으로서 특별히 언급되었다.대제사장은 어깨에 두르는 옷으로서 에봇은-거기에 우림과 둠밈이 붙어 있었다.여호와께서 자신의 계시를 백성에게 전달하였다는 방편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 사용되었었다[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그것을 우상숭배하는 방법에서 모방되었다.삿17.5,18.5].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이었다.그것은 세상의 번영을 주는 자로 숭배되었고 미래사건에 대한 예언신이었다.선지자가 언급한 대상은 여호와 숭배와 우상 숭배에 둘 다 관련되었다.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이 이스라엘에서 함께 혼합되었기 때문이다.5절-[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 와]파아드 엘 예호와 즉 여호와께 흔들거나 떠는 것이고 "떨면서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에 대한"함축적인 표현이다.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그들 자신의 죄와 무가치를 의식하면서 떠는 것이나 그들의 절망을 의식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떠는 것을 의미한다[카톨릭새번역,주님과 그분의 선물을 향해 떨면서 돌아오리라].4장11절-나무로 만들어진 우상으로 부터 신성한 계시를 묻는 일이다[렘10.3;합2.19].다시말하면 드라빔에게 묻는 행위이다[비교 3.4;겔 21.36]....막대기는 백성이 우상으로 만든 막대기이다.다음 절에서"저희에게 고하나니"즉 미래사건을 보이는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에 의해서 미신의 관습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그는 그것을 갈대아인들의 창안이라고 하고 두 막대기를 똑바로 세우고 이어서 주문의 형식이 진행되고 신탁이 그 막대기가 떨어진 방법 즉 앞이든지 뒤든지 죄편이든지 우편이든지 그 방향에서 주어진다고 생각한다.행하는 과정은 소원의 막대기를 사용하는데 관련된 것과 매우 유사하였다.백성들은 음란의 귀신이 그들을 추;히게 한다고 생각하여서 이것을 행한다.루아흐[영,카톨릭새번역은 '얼'] 제누님으로 음행이 귀신의 힘으로 표현되었다.이것은 그 백성에게 행하여졌다.제누님은 육체적이고 영적인 행음을 포함한 것 같다.왜냐하면 우상 숭배 특별히 아세라 숭배는 지극한 방종과 연관되었기 때문이다.13절-참나무[상수리나무],버드나무[70인역과 벌게잇역에 의하면 흰버드나무,창37.30 또는 70인역이 창37.30을 번역한대로 스토락스나무]그리고 상수리나무[테레빈나무]의 열거로 푸른나무아래[신12.2;왕상14.23;렘2.20,3.6]라는 빈번한 표현이 개별적인 의미로 나온다.15절-길갈은 요단 골짜기에 있는 길갈이 아니고 산지에 있는 북쪽길갈이다.그리고 이곳은 실로의 남서쪽 길갈 질지리아에 보존되어 있다[신11.30;수8.35].엘리야와 엘리사 때에 그곳은 선지자 학교였으나[왕하2.1,4.38] 후에는 우상숭배의 한 형식이 행하여 진 곳으로 택하여졌다.그러한 것의 기원과 성격은 알려진 바가 없다[비교 5.15,12.12;암4.4,5.5].벧아웬은 벧엘 남쪽에 위치한 그 곳 즉 수 7.2에서 언급한 바 그 이름의 장소가 아니고 암4.4과 5.5에서 분명히 보여주는 대로 호세아가 암5.5에서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그곳에서 금송아지의 섬김으로 인하여 벧아웬 즉 우상의 집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벧엘[현재의 베이틴]에서 택한 이름이다.5장1절-미스바는 다볼에 대한 동의어이고 길갈의 높은 미스바나[삿10.17,11.29] 라마-미스바[이곳은 현대의 에스샬트의 자리에 위치한 것 같다.신4.83]에 해당되는 것 같다.따라서 다볼이 요단의 이편에서 그 땅을 표현하기 위해서 택해진 것이다.두곳은 새를 잡는 곳으로 특별히 유명한 곳이었던 것 같다.왜냐하면 다볼은 지금도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8절-소팔[쇼파르,뿔나팔]은 목자의 뿔이고 굽은 뿔로 만들었다.투바[하쪼제라]는 구리나 은으로 만들었고 전쟁 때나 명절 때에 불었다.기브아는[사울의 기브아,수18.24] 사무엘의 라마[수18.25]와 더불어서 베냐민 지파의 북쪽 경계선의 중요한 두 것이었다.그곳의 높은 위치때문에 신호가 잘 보였다.이러한 독특한 마을의 등장은 -이곳은 이스라엘 지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유다지파에게 속하였다-적이 이미10지파의 나라를 정복하였고 유다 지파의 변경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적이 베냐민 뒤에서 온다는 것은 선언된 심판이 이미 베냐민의 끝부분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10절-'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는 신19.14에 따라서 만들어졌고 설명될 수 있다.유다의 방백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들이 되었다.이것은 이스라엘나라의 적대적인 침공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과 유다간의 경계선은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진 거이 아니기에 유다의 방백의 입장에서 그 경계표를 범하는 것은 심각한 죄로 간주될 수가 없었다.-하나님이 4.15에 의하면 정한 합당한 경계표를 옮기고 에브라임의 죄에 동참하므로 즉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지계표를 옮기는 자들이 되었다.따라서 그들은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 경계선을 옮기는 것 다시말하면 단 하나의 경계표를 옮긴 일이다.12절-좀과 썩이는 것은 파괴력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상징들이다.좀은 옷을 망치고[사50.9,51.8;시39.12] 썪이는 것은 나무와 살을 해친다.6장6절-인애-헤세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그 뿌리를 둔 의와 사랑에서 나타난다.따라서 4.1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련되었다.9절-세겜은 에발과 그리심사이에 있는 에브라임 산지위에 한 장소이고 현재의 나불루스이며[수17.7] 도피성이요 레위 성읍으로 성별되었었다[수20.7,21.21].이 내용을 통해서 최근의 주석학자들은 세겜 출신의 제사장들이 그들 자신의 허물을 감쌀수 있는 그들 성읍의 특권을 이용하여 그곳으로 성급하게 도피한 자를 그들에 대헤서 악행을 행하였던 주동인물의 명령에 따라 죽게 하였거나 탐욕이나 단순한 잔인성때문에 다른 여행자들에게 살인 행위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그러나...세겜의 길은 살이과 유혈 행동의 처소로 언급되었다.왜냐하면 수도 사마리아에서- 실제로 그 나라의 북쪽에서 이 성읍이 위치한 바 10지파의 나라에 속한 주요 예배처인 벧엘로 가는 길에 해당되기 때문이다.대부분 명절을 가기 위해 가는 순례의 길은 이 길을 택하였다.그리고 백성의 하류계층에서 뽑히여진 제사장들은 강도지을 하거나 저항할 경우 살인까지 하면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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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1절-건포도과자는 의식의 한 요소로서 이교고 축제때 사용되었다[2사무6.9;1역대16.3;아가2.5;이사16.7].또한 이것은 하늘의 여왕[메소포타미아에서의 이쉬타르 여신]에게 봉헌한 과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예레7.18,44.19]. 2절-한 호멜은 450리터,한 레텍은 225리터.4장14절-남자들도,히브리말로는 '그들'이지만 신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남자들'로 옮겼다.TOB는'사제들'을 첨가시켜 그들의 신원을 밝혔다.'신전 창녀'는 매음녀와 동의어인 것 같다[창38.12-30 참조].매음은 풍요다산의 자연신 숭배와 연결되어 있음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신명23.17;1열왕 14.24;2열왕 23.7;아모2.7 참조].여기서 신전창녀로 옮긴 히브리말 '커데샤'는 통상적으로 고대 동방 셈족안에서 종교의식을 위해 따로 격리시켜 놓은 거룩한 것을 암시한다.15절-70인역:"그리고 유다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고..."길갈은 예리코 근처에 있는 성소로서 잘 알려진 순례지였으나[여호 5.2-9에 성소의 설립에 관한 기록이 소개되어 있다].이 성소에서 거행되던 예배와 의식도 다른 성소처럼 타락하였다[참조 9.15,12.12]..'불법의 집,악인들의 집'을 의미하는'베다웬'이라는 이름이 '하느님의 집'을 의미하는 '베델'성소에 적용되었다[10.5,8;아모5.5에서는 베델로 그 이름이 바뀌어 나온다].하느님의 집이 악인의 집이 되었음을 비꼬아 하는 말이다.이름이 어떤 사물의 본질을 표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바뀐 이름은 예배와 의식의 타락이 끝점에 다다랐음을 강조한다.19절-여기서 바람은 처벌의 폭력을 지칭한다[13.15참조].히브리말에서 바람은 영,얼도 뜻한다.분명히 호세아가 처벌을 야기하는 주원인인 '창녀기'[4.12,5.4]라는 개념과 대칭 구조로 삼기 위하여 이 개념을 이곳에 다시 배치하였다.5장1절-'미스바'는 '파수꾼의 탑'이라는 뜻을 지닌 도시의 이름이다.적어도 구약성서는 길르앗과 벤야민 지방에 미스바라는 도시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판관10.17;1사무 7.5 참조] 여기서 어느 곳을 암시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여하튼 예언자는 여기서 미스바라는 이름과 비슷한 단어인 '미스파트'[법,정의,심판,선고]를 가지고 안어유희를 하고 있다.성서에서 서로 비교가 되는 유사한 언어를 통한 유희는 단순히 언어유희를 넘어 한층 심오한 의미를 지향한다.4절-매음의 기운,은 매음의 얼,매음의 영으로도 옮길 수 있다.3-4절은 그들 안에 있는 매음의 기운이 그들을 하느님께 돌아갈 수 없게 할 정도로 강렬함을 표현한다.13절-히브리말로 '멜렉 야렙'이다/고유명사로 이해하여 '야렙 임금'으로 옮길 수 있으나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다.'야렙'을 히브리어 동사 어근 다투다,논쟁하다에서 파생한 명사로 이해하여 '싸우기를 좋아하는 임금으로 옮길 수 있다.사실 '야렙'이라는 히브리말 명사는 '싸우는 사람,복수자.앗시리아 임금의 호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10.6절을 참조하여 '대왕'으로 고쳐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히브리말'말키 랍'[대왕]은 아시리아말에서의 '사루라부'[대왕]를 옮겨 놓은 것 같다.10.6에서 '대왕'은 물론 아시리아 임금을 지칭한다.6장6절-BHS의 제안을 따라"나는[예언자들을 통하여] 너를 산산히 조각나게 하였고"로 옮길 경우"[나는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으며"를 "[나는 내 입의 말로] 너를 죽었으며"로 수정해서 읽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직역하면 "너의 심판은 나오는 빛[이다]"70인역과 시리아말역 및 타르굼을 참조하여"나의 심판은 빛처럼 나왔다"로 옮겼다.이 번역은 본문의 구두점을 조금 다르게 읽을 때 가능하며 이 문장 안에서 이 번역만이 만족스러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8절-유혈 범죄를 질책하고 있는 이 구절은 2열왕 15.25에서 언급하고 있는 '길르앗 사람들'이 저지른 유혈참극과 연결될 수 있다.

[호세아서 성경주해] 7장-9장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7장4절-간음은 하나님에게 배교된 것으로 영적인 음행이다.그리고 문자적인 음행과 관계되는 한 바알 숭배는 방종한 것을 촉진하였다.이러한 정욕적인 상태에서 백성은 저녁에 빵굽는 자가 뜨겁게 만들고 반죽이 발효될 때까지 밤새도록 타게 하였다가 아침에 계속 그 불꽃이 타게하여서 반죽으로 빵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화로를 닮은 모습이다.7절-소페팀이 말레크와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왕과 방백들에게 다같이 적용된다."그 왕들은 엎드려지게 하며"라는 절은 앞에 있는 절에 새로운 특징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재판관들과 더불어서 왕들이 실족하였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언급한 것을 더 잘 나타내주기 위하여 부연되었다.'저희'는 실족한 왕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전반적인 의미에서 그 백성 즉 그들의 방백[통치자]을 삼킨 사람들에 해당된다.그 뜻은 다음과 같다.우상숭배에 여념이 없고 방백들을 왕과 같은 수준으로 여긴 흥분상태에서 그들은 그들의 경건치 아니한 행동의 피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아니하였으며 어느 누구도 왕들의 몰락을 생각하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망각하고 멸망의 심연에 빠진 채 홀로 돕고 구할 수 있는 주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이곳에서 선지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여로보암2세 후의 때를 갖고 있다.그 당시의 스가랴가 살룸에 의해 살룸은 므나헴에 의해 그리고 므나헴은 베가의 아들 베가시아에 의해 무노졌었고 매우 빠른 왕위 계승으로[왕하 15.10,14,25] 스가랴와 살룸사이에 1년간의 무정부 상태가 있었다[왕하 15.8-12].동시에"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라는 표현은 그 말이 이들 사건에 제한된 것이 아니고 그 이전의 모든 혁명에 해당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들 절이 널리 퍼진 역사적 해석에 대한 근거는 무엇이든지 간에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8-9절-뜨거운 재나 뜨거운 돌 위에서 만든 전병이다.그리고 그것을 뒤집지 아니할 때 아래가 타버려서 전부 잘 구워지지 않는다.이러한 상징의 의미는 9절에서 잘 설명되었다.불에 전병이 뒤집지 아니할 때 그 전병을 태우는 것과 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황폐케하는 전쟁으로 부분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에게 침투한 이방인의 기질로써 이스라엘의 힘을 삼키어 버린다.백발이 얼룩 얼룩할지라도 즉 한 사람에 의해서 상징된 것으로 몸에 이미 늙었다는 표시가 나타나 있고 죽을 때가 닥쳐온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16절-'속이는 활'..이러한 활은 그 힘이 없어서 화살로 표적을 맞출 수가 없다....방백들은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의 창설자들로 언급되었고 그들은 백성과 그 나라에서 모든 비극을 자초하였다.자암[거친 말]은 격분을 의미하고 이곳에서는 도전이나 폭력을 의미한다.8장9절-우둔한 들나귀라 할지라도 스스로 그독립을 유지하는데 에브라임은 세상의 나라들과 자연스럽지 못한 동맹관계 즉 다시말하면 그 소명과 전혀 맞지 아니한 동맹을 맺으려고 한다....전쟁부담금이나 유배가 아니라 포로로 끌려감으로써 앗시리아 왕으로부터 당하는 압제하에서 취하게 된다.14절-전각:개역개정,견고한 성읍 9장1절-그것을 바알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더 열심으로 그것들을 섬기려고 한다.타작마당과 관련된 우상 숭배에 대한 어떤 특별한 형식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지만 근거가 없다.4절-고통의 떡 다시말하면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는 사람들의 떡이고[신 26.14] 다른말로 하면 장례식 떡이다.이러한 것은 부정한 떡으로 간주되었다.왜냐하면 시체가 그 집과 그 시체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7일간[민19.14] 부정하게 하기 때문이다.6절-놉[히브리어로 모프=멤피스,제1왕조의 메네스가 창건하였다고 한다]]하류 애굽의 고대 수도인 멤피스의 속된 이름이고 그곳의 멸망의 폐허는 고대 카이로 남쪽[27킬로미터]에 있는 나일강의 서쪽 뚝에서 볼 수가 있다.이 성읍의 신성한 이름은 하-카-푸타 즉 푸타[프타하,흐눔신과 함께 세계를 창조했다고 하여 공예와 기술의 신이라 한다.미라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고왕국시대에 멤피스의 수호신이었다.소의 신이기도 하다.]의 경배의 집이었다.6절-이쉬 루아흐[감동받은 자]라는 표현의 사용에서 관련 내용이 참된 선지자들에게 해당한다는 것을 주장할 수가 없다.미2.11에서 언급된 이쉬 루아흐[영의 사람]은 이쉬 허레크흐 루아흐[영적으로 행하는 사람]와 동의어이다.이는 예언은 거짓 선지자들까지도 놀라운 귀신의 힘의 영향아래 있었고 루아흐 세켈[거짓말하는 영]에 이해서 영감을 받아서 말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8-9절-이스라엘은 여호와에 의해서 영감을 받지 아니한 그 자신의 선지자들을 쫓거나 의지하지도 않는다.이들은 길에서 새잡는 자의 올무와 같다....그 목적과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백성을 올무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여호와와 참된 선지자로서 그 종에 대한 적대심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전안에 있다.즉 송아지 숭배를 하기 위해서 세운 전안에 있는 것이다....그사실을 아모스는[7.10-17] 실제적인 본보기로 제시한다.이스라엘은 그 일로 인해서 심히 가증한 상태에 빠졌고 기브아시대같이 죄를 범하였다.다시 말하면 한 레위인의 축첩행위와 관련하여 기브아사람들이 행한 가증한 행동이 있었을 때와 같은 것이다.이러한 것은 삿19장이하에서 언급되었다.그 결과로 베냐민지파는 거의 진멸을 당하였다.이스라엘의 입장에서와 같은 타락상이 지금 주에 의해서 형벌을 당하게 된다[8.13비교]

카톨릭 새번역

7장7절-히브리말로 '그들의 판관들'이다.여기서는 임금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다음 줄에 나오는 '그들의 임금들'과 병행구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통치자들'이라는 어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저희는 실족한 왕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전반적인 의미에서 그 백성 즉 그들의 통치자를 삼킨 사람들에 해당한다.14절-몇몇 히브리사본과 70인역에 따라'그들은 [자기]몸에 상처를 낸다'로 옮겼다[1열왕 18.28 참조]9장6절-축제를 거행하기 위한 모임은 '멤피스'라는 지명이 암시하는 것처럼 죽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바뀔 것이다[참조 예레 8.2,25.22].호세아와 같은 시대인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멤피스는 피라미트로 이미 유명한 도시였다.9절-'기브아의 날들'은 부명히 판관19-2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한 여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과 관련된다.이 끔직한 사건은 바로 이스라엘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이 변형된 것이었다.10절-바알브올은 성서 다른 곳에서 '벳브올'로 불린다[신명3.29,4.46,34.6;여호13.20].이 장소는 어느 신의 거주지인 어떤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최근 발표된 성서 지리학 연구에 따르면 '바알브올'은 사해 최북단에서 동쪽으로 약 20킬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민수기25.1-18에 의하면 이 장소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성적으로 방탕하게 행동하면서 가나안의 풍요다산 의식에 자기 몸을 맡긴 그곳이다[민수 25.3].13절-예언자는 에브라임을 화려함과 부유함으로 잘 알려진 띠로[에제26-28장]와 비교하면서 현재 에브라임이 누리고 있는 번영과 앞으로 겪게 될 불행을 대조하여 강조하려고 한다.

[호세아서 성경주석]10장-14장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10장7절-케체프는 거품이 아니고 꺽어진 가지 즉 나무단이나 동각난 것을 의미한다.이는 요엘1.7에서 케차파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과 같다....산을 향해서 '우리위에 무너지라'라고 말하는 것은 동굴과 바위틈에서 자신들을 숨기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사2.19,21].그것은 무너지는 산과 작은 언덕밑에 장사되어서 그들이 더 이상 심판의 고통과 공포를 당하지 않게되는 소망을 나타낸다.9절-9.9에서 기브아의 날,레위인의 첩에 대하여 즉 무자비한 죄가 기브아에서 행한 날이 지극히 부패한 때로 언급된 것 같이 본절에서 설명된 이러한 날도 이스라엘의 죄악의 시작으로 설명되었다....기브아의 날이래로 이스라엘은 기브아인들과 같은 죄를 계속하였다.이에비해 이들 죄인들은 전쟁에 의해 응징되고 멸망되었지만 10지파는 어떠한 비슷한 전쟁에 의해 멸망되지 아니한채 같은 죄를 범하고 계속 살고 있다.이제 여호와께서 그 죄로 그들을 벌하시게 된다.11절-곡식을 밟는 것은 다른 백성의 정복이 아니라[미4.13;사41.19] 기쁘고 생산적이고 유익한 수고의 상징적인 표현이다.이스라엘은 스스로 이러한 일에 익숙하였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에서 그러하다[13.6].그러나 지금은 다르다....이러한 것은 상징적으로 예속과 매임을 나타낸다.유다 역시 8.14,6.11에서와 같이 이곳에서 다시 언급되었다.야곱은 유다와 관련해서 좋은 백성[또는 12지파]의 이름이 아니고 에브라임 즉 10지파 이스라엘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12절-닐닐,이곳과 렘4.3에서 다같이 처녀지를 개간하는데 사용되었다.다시 말하면 아직 개간됮지 아니한 땅을 쓸모있게 하는 것이다.이러한 상징에서 진보된 내용을 보게 된다.즉 그들은 그들의 이전 모든 행동을 포기하고 스스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새로운 영역을 만든다.다시말하면 생활의 새로운 과정을 시작한다.14절-살만은 의심할 여지없이 앗수르의 왕인 살마네셀의 단축형이다....마카비1서 9.2에서 안급된 위의 갈릴리아에 있는 아베라인 것 같다.이곳은 요세프스에서 세포리아와 디베리아사이에 있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한 장소로 빈번하게 언급되었다.11장6-7절-'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이것은 7절에서 더 상세하게 정의되었다....'결심하고'는 문자적으로 배교에 매달리는 것 즉 배교의 결과나 지속적인 실족의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이는 이러한 것이 현재 본문에서 매우 약하게 표현되었고 절의 하반절에는 적당하지 아니한 내용이 될 수 있지만 배교가 나무에 맨 것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 것 같이 꼭 붙어 있는 모습이다.8절-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망하였다.[신29.23]10-11절-바다에서 즉 애굽과 앗수르 즉 남쪽과 동쪽 땅은 물론 먼 섬과 서쪽 땅에서[사11.11] 오는 것이다.이러한 세 지역은 단순히'땅의 사방에서'라는 의미의 특별한 형식이고 사11.11에서 여러개의 먼 나라에 대한 더 상세한 열거와 비교를 하게된다.새와 비둘기에 대한 비교는 그들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신속성을 표현한다.이는 비둘기가 비둘기장으로 날아오기 때문이다[사60.8].12장8절-이스라엘이 이곳에서 가나안[상고]이라고 하였다.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밀착하였기 때문이 아니고[비교 겔16.3] 케나안이라는 단어의 동격의 의미때문에 그렇게 불렀다.이 단어는 가나안인들의[베니기아인] 상업적 습관 즉 장사나 물건거래자의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사23.8;욥40.30].이는 가나안이 거짓된 장사꾼과 같이 압제와 속임수로 큰 이익을 얻을려고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다.13장10절-소페팀은 ..사림[방백들]과 같이 단순한 재판장이 아니고 왕의 모사들과 그 신하들이다.이들이 왕과 더불어 왕과 더불어 그 나라의 일을 처리하였고 사법상의 일을 주관하였다.14장4절-말을 타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애굽의 군사력에 해당하고[사31.1] 부분적으로는 그들 자신에 해당한다[1.7;사2.7].6절-'백합화 같이'즉 향기나는 흰 백합화같이, 이 백합화는 팔레스틴에서 매우 흔하고 가꾸지 않더라도 잘 자란다'백합화는 다산종이고 한뿌리에서 5개의 줄기가 가끔 나온다'.'레바논 백향복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다'즉 레바논의 깊이 뿌리를 박은 수풀뿐 아니라 '땅의 견고한 지대'[미6.2]의 하나로서 산 자체를 의미한다.뿌리가 깊으면 깊을수록 가지가 더 멀리 퍼지고 사시사철 결실을 맺는 감람나무와 같이 푸른 잎을 낸다[렘11.16;시52.8] 냄새는 레바논같다.그리고 그것은 그 백향목과 향료로 향기를 발한다[아가4.11]상징에서 나온 바 여러 상징적인 의미는 로젠뮐러에 의해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되었다.'뿌리는 안정을 나타내고 가지가 펼쳐지는 것은 주민들의 번식과 숫자 증가를 나타내며 감람나무의 찬란함은 아름다움과 영광을 그리고 지속적이고 오래가는 것을 의미하고 향기는 환희를 나타낸다'8절-[IBD,백향목과 더불어 자라는 노간주나무 종류의 하나를 가리킨다.아마 JUNIPERUS EXCELSA BIEB를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카톨릭 새번역

10장2절-'마음은 거짓으로 가득하니'의 직역은 '그들의 마음은 미끄러졌다.'직역을 수용할 경우 BHS의 제안대로'주님으로부터'를 덧붙여'그들의 마음은 주님에게서 벗어났다.'로 옮기기도 한다.불가타는'그들의 마음은 갈라졌다'로 옮긴다.10절-'두가지 잘못'은 과거 기브아에서 범한 죄악[판관19장]과 호세아 시대 기브아에서 범한 죄악 이 두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그러나 주님을 버리고 바알예배에 깊숙이 참여함으로써 성립되는 두 가지 불충실함을 생각할 수 있다[참조 예레2.13]11절-BHS의 제안을 따라'에브라임은 멍에를 메고 유다는 밭을 갈고'에서 유다를 삭제한 후'에브라임은 멍에를 메어 밭을 갈고..'로 옮기기도 한다.14절-현재 요르단강 건너 북쪽에 위치한 이르비드 부근으로 추정된다.베다드벨은 2사무20.19에 나오는 아벨 벳 마아가 처럼 자식으로 불리우는 위성도시들로 둘러싸여 어머니 역활을 하는 중요한 도시로 평가된다.15절-'새벽녘[또는 아침]'은 항상 예기치못한 구원과 승리의 동의어로 사용된다[참조 2역대 20.16-20;이사17.14;시편46.6].그러나 여기서 예언자는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희망을 걸어온 것을 뒤엎는다.11장4절-천천히[허리를 굽혀]그들에게 머을 것을 주었다.히브리말 '아트'는 천천히 또는 낮게 라는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는 '허리를 굽혀'라고 옮겼다.13장1절-에브라임이 말할 때 모두 떨었다.직역은 '에브라임이 말할 때 공포가 있었다'70인역은 공포를 '법들'로 읽는다.

[요엘서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1장1절-요엘[그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라]...아모스 이전 즉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의 같은 시대의 치세의 27년전에 예언을 했다.그 이전에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는 그가 자신의 예언에서 언급한 역사적 상황에서 대충 추측을 할 수가 있다.그가 애굽과 에돔외에[3.19] 언급한 유일한 적들은 -주께서는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한 적대심 때문에 이들을 벌하시게 된다.-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의 해변 백성들이다[3.4].그러나 아람인들은 해당되지 아니한다.이들은 갓의 정복 다음 예루살렘을 칠 계획을 하였다.이들이 요아스에게 성전과 궁전의 보물뿐 아니라 그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하게 하였다[왕하12.18이하;대하24.23이하].그것때문에 아모스가 아람나라의 멸망과 그 백성이 앗수르로 유배된다는 것을 예언하였다[암1.3-5].그러나 아람인의 이러한 원정이 행스텐버그가 생각한대로 블레셋에 대해 행하여진 것이 아니고 따라서 하나의 분견대로 돌아갈 때 유다를 그대로 통과하지 아니하였고 유다 나라에 대해 직접 공격을 하였으며 르호보암이 그때까지 유다에 속한 요세화하였던 갓의 성읍이[왕하12.17,18] 유다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갖게 하였다.요엘이 그 사건 후 예언을 하였다면 유다의 다른 적들과 더불어 아람인들을 반드시 언급하였을 것이다.그리고 유다에 대한 아람의 적대심에 관련된 어떠한 언급이 없는것이 그 자체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요엘 예언의 전체 성격이 아모스와 호세아 이전의 때를 지적한다는 사실에서 매우 중요성이 있다.우리는 호세아와 아모스가 유다에 대해서 정죄한 죄에 대해 하등의 암시도 찿을 수 없고-이 죄로 앗수르인의 심판을 갖게 되었다-요람,아하시야,그리고 아달랴 때에 크게 유행하였던 우상숭배에 대해서도 하등의 언급이 없다.오히려 대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후 회복되었던 여호와 경배가[왕하11.17이하;대하23.16 이하] 잘 정리되고 제사장의 의식과 더불어 집행되었다는 것을 잔제하게 한다.이러한 상황은 요아스치세 첫번째 30년이-그 기간동안에 왕은 자신의 모사 여호야다를 대제사장으로 삼았었다.요엘의 사역의 시기로 간주해야한다는 결정에 전적으로 유리하게 된다.1장4절-하실과 가잠이 같다고 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2.25절과 모순되고[거기에는 가잠은 하실 다음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나훔 3.15,16 렘51.27에 대한[거기에서 형용사 사말이 예레크에 부연되었다.살말은 몸서리치다라는 뜻을 가진 사말에서 왔고 어린 메뚜기의 거칠고 깐깐한 겉날개를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된 해석에 근거할 뿐만아니라 언어의 관용용법에서도 지지할 수가 없다.가잠과 하실 사이에서 또는 이러한 두 단어와 알베사이에 관용어법상 어떠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가잠이란 단어는 짜른다는 뜻을 가진 가잠에서 왔고 이곳과 2.25;암4,9에서 등장할 뿐이다.아모스에서 이 메뚜기는 날으는 메뚜기에게 사용되었다.이 메뚜기떼가 포도나무,무화과나무,감람나무를 완전히 망친다.아모스서에서 채소와 들의 열매들이 이미 메뚜기떼에게 완전히 망가진 내용이 잘 등장한다.알베는 많다는 뜻의 랍하에서 왔고 메뚜기에 대한 일반 명칭이며 이주 메뚜기 인 것 같다.왜냐하면 이것은 항상 셀 수 없는 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하실은 먹어치우다라는 뜻을 가진 하살에서 나왔고 신23.38에 의하면 들의 곡식과 나무 열매를 먹어치우는 습관때문에 메뚜기에게[하 알베] 붙인 이름이고 따라서 왕상8.37 대하6.28 시78.46에서 하알베와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사33.4에서 그 단어대신 사용되었다.예레크는 핥는다는 의미를 가진 야라그=라카그에서 왔고 시105.34에서 알베와 유사어로 등장한다.그리고 민수기에도 그 단어와 동의어로 나왔다.거기에서는 이 단어가 애굽의 메뚜기 재앙에만 해당한다.따라서 날개없는 어린 메뚜기를 생각할 수 없다.학가잠은 팥중이[GNAWER,종령,IDB,ICC]이고 하야얄 레그는 느치[LICKER,1령,IDB,ICC]이고 헤아실은 황충[DEVOURER,2령,IDB,ICC]이다.따라서 이러한 명칭들은 알베[이주 메뚜기,IDB]에 적용된 단순한 시적인 형용사들이다[고대 기독교 성경주해서,Isho'dad:가잠은 CUTTING LOCUST로 유충과 비슷하나 검고 더 길다.그것이 땅으로 떨어졌을 때 잎사귀만 먹고 나머지는 먹지 않는다.티글랏필레셀은 비교적 이스라엘에 부드러운 역경을 주었다.아르베은 FLYING LOCUST로 살마네셀을 가리킨다.티글랏 필레셀보다 더 심각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이다.예렉크는 CRAWLING LOCUST로 날지 못하고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그는 산헤립을 의미한다.왜냐하면 선왕들보다 이스라엘 10지파에게 일으키고 가져온 황폐RUIN에 있어서 능가했기 때문이다.하실은 ....전체적으로 파괴를 일으킨 느부갓네살이다.].12절-대추야자.2장2절-메뚜기가 접근할 때에 하늘에서 나타난 붉으스레한 빛이나 빛나는 모습을 언급한다.이러한 것은 메뚜기의 날개에서 태양빛의 반사로 나타난다.20절-서해는 지중해이고 동해는 사해이다.3장3절-피는 애굽의 물이 피로 변한 것을 상기시키고[출7.17] 불은 우박과 더불어 땅위에 떨어지고 불덩어리를[출9.24] 상기시킨다.피와 불은 유혈과 전쟁을 지적한다....여호와께서 시내산에 내려 오셨을 때 그 모습을 가진다.시내산에서 온 산에 연기가 났었고 이 연기는 풀무불같이[출21.18] 그 연기같이 올라갔었다.따라서 우리는 화롯불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길을 알리기 위해 대상이나 군대앞에서 피우는 것이 아니고[아가3.6] 전쟁 때에 타는 마을에서 솟아나는 불기둥으로 생각해야 한다[사9.17].4장2절-여호사밧[여호와께서 판단하신다,저자의 연대814-889]의 골짜기는 여호사밧때 여러 이방인들에게 심판이 행하여졌던[대하 20장]골짜기가 아니다....여호사밧 골짜기는 본장에 의하면 예루살렘이나 예루살렘 근처에서 반드시 찿아야 된다[슥14.4].그리고 구약이나 신약의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은 그 이름은 이곳과 12절을 제외하고 14절의 '예메크 헤하루츠'라는 이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열방을 대하시게 될 심판때문에 생긴 것이다.교회의 전승은 정확하게 그곳을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기드론골짜기나 그 골짜기의 북쪽[삼하18.18] 또는 사웨의[창14.17] 골짜기에 연관시킨다.4-8절-요엘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마음속에 여호람=요람때에[저자의 연대로 889-884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약탈을 간직하고 있었다[대하21.17].이 범죄에서 베니기아인들의 동참은 그들이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그들에 의해서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사서 다시 야웬의 아들들 즉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인들이나 헬라사람에게 팔았다는 사실에 국한된다....먼 스바의 백성 즉 아라비아의 베릭스에 있는 유명한 상거래 백성에게 노예로서 팔게된다[왕상10.1].이러한 위협은 반드시 이루어진다.이는 여호와께서 그것을 언급하셨기 때문이다[사6.20].이것은 한편으로는 웃시야와[대하26.6,7] 히스기야[왕하18.8]에 의해서 블레셋사람에게 패배한데서 되어졌고-그 당시에 블레셋의 전쟁포로들이 노예로 팔려간 것이 확실하다.18절-모든 시냇물이 풍성하게 된다.즉 더이상 연중 더운 계절에 마르지 아니한다[1.20]....열매를 맺지 못하는 아카시아 골짜기까지도 여호와의 집에서 흘러나온 샘물로 공급을 받고 비옥한 땅으로 변화되었다.싯딤의 골짜기가 사위의 메마른 골짜기이다.싯딤 즉 아카시아라는 이름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압의 초원지대에서 이스라엘의 마지막 야영에서 나온 말이다[민25.1 수3.1].그리고 그곳은 지극히 메마른 골짜기를 나타내기 의하여 선지자에 의해 선택되었다.이는 아카시아가 메마른 땅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아모스서 성경주해]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1장1절-아모스 즉 운반자 또는 짐.자신의 책의 주제에 의하면 주께서 그를 선지자로 부렀을 때 그는 드고아 목자[노게딤]중에 있었다.다시 말하면 그는 베들레헴 남쪽으로 두시간 거리[9킬로미터]인 유다 광야의 변경에 위치한 마을 드고아 출신이었다.그곳의 폐허지가 옛 이름으로 남아있다[수15.59 칠십인역].그는 드고아 동쪽 기슭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목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물론 부한 양떼의 소유자가 아니고 목자에 불과하였다.노게드가 왕하3.4에서 좋은 양과 염소의 소유한 부자로서 모압왕에게 적용된다 할지라도 그 단어는 본래에 양을 치는 자 즉 소유자가 아니고 좋은 양의 목자를 의미한다...'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나는 목자요 뽕나무[IDB,이집트 무화과나무=돌무화과나무]를 배양하는 자로다'[7.14]-즉 이 열매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이 열매는 무화과를 닮았고...음식으로서 매우 천대를 받았고...애굽에서만 서민의 양식으로 사용될 뿐이다.결과적으로 아모스는 양떼와 뽕나무 농장을 소유한 부자가 아니고 가난한 환경에서 산 목자로 간주해야 한다.갈대아역과 랍비들의 견해에 따라서 많은 주석학자들이 그를 그와같은 사람으로 생각한다.그는 스스로 선지자의 소명에 응한 일도 없고 선지학교에서 훈련받지 아니한채 주께로부터 목자를 떠나 선지자가 되어 유다왕 웃시야[820-758]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세[824-783]의 치하에서 이스라엘에 관해[7.14,15] 예언하라는 소명을 받았다.이들 두 왕의 같은 통치26년 즉 기원전 810-783년사이에서 소명을 받고 예언활동을 한 셈이다.따라서 아모스는 호세아와 같은 때에 자신의 예언활동을 시작하였거나 몇년 일찌기 시작한 것같고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본거지인 벧엘에서 예언을 하였다[7.10].그 사역의 시작이나 기간의 때에 관하여 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이는 1.1의'지진 전 2년에'라는 내용이 연대학적인 자료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5절-아람의 인구중 나머지는 쿠르강의 양쪽 둑에 위치한 나라인 키르로 끌려가게 된다.9.7에 의하면 아람사람들이 본래에 그곳에서 이주를 하였다.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아하스 때에 다메섹을 정복하였고 아람나라를 무너뜨렸을 때[왕하16.9] 성취되었다.2장2절-그리욧은 사해 동쪽에 있는 모압의 수도이다[예레48.24].6절-가장 좋지 못한 종이라도 이 이상의 가치는 확실히 있었다[출21.32].그렇지만 신 한켤레 값도 지불할 수 없던 가난한 채무자 즉 가장 시시한 것도 지불할 수 없었던 채무자는 율법에 의거 채권자에게 노예로 넘길 수 있었다[왕하4.1].7절-가난한 자와 머리에 있는 티끌을 열심히 탐내는 것 즉 가난한 자의 머리에 흙이나 먼지가 있는 것을 살피거나 그러한 처절한 상태에 처하게 하여 저희가 저들의 머리에 먼지를 뿌리는 것을 의미한다[욥2.12;삼하 1,2].9절-한 나라의 번영이 그 나라의 열매로 간주되었고 그 열매가 열게 된 백성의 요소를 뿌리로 간주하였다.3장12절-사마리아의 웅장함은 -거기에는 극소수만이 자신들의 생명을 건질 수 있다-아모스에 의해서 전혀 걱정없이 비단방석에 앉은 사람들로 설명되었다.침상모퉁이 즉 가장 편안하게 기대는 곳이다.그리고 6.4에 의하면 이러한 침상들은 상아로 장식되었고..비단 방석으로 단장되었다.더메섹은 다메섹에서 왔고 타마스크 즉 기술적으로 짠 물건을 의미한다. 4장1절-바산의 암소들은 살이 쪘고 비대한 암소들이다.이는 바산이 좋은 초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한 이유때문에 소떼와 양떼가 많이 있었던 지파들은 바산을 자기들의 기업이라고 주장을 하였다[민32].다음에 나오는 구체적인 정의는 바산의 암소로서 아모스가 부하고 방탕하고 포악한 사마리아 주민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그러나 그가 대부분의 현대 주석학자들이 데오도렛을 따르면서 부하고 방탕한 귀인들의 아내들을 의미하는지...3정-갈대아어에서는 그 단어를'알메니아의 산 너머'라고 의역을 한다.쉼마쿠스 역시 데오도렛과 제롬의 진술을 따라 알메니아로 번역을 하였다.7절-추수하기 석달전에 내린 비는 소위 늦은 비이다.이러한 비는 2월 하순과 3월 초순에 내리고 밀과 곡식이 영그는데에 매우 중요한 비이다.남부 팔레스틴에서 추수는 4월[니산월]하반기에 시작하고 대부분 5,6월에 끝난다.그러나 북부에서는 2-4주가 더 늦다.따라서 대강 늦은비에서 추수할 때까지 석달을 계산할 수가 있다.5장5절-브엘세바가 등장한다.이곳은 유다의 남쪽 부분에 위치하였고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주를 불렀던 장소로서 언급되었다[창26.24,46.1,21.31] 옛날부터 되어진 이러한 거룩한 회상이 브엘 세바로 하여금 우상 숭배의 장소로 되어지게 하였다고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의 나라의 지경을 넘어서 그곳에 순례를 행하였다.8절-키마는 문자적으로 무리이고 7별의 한 집단 즉 프레이아데스[묘성]의 별집단들이다.케실은 문이고 고대역에 의하면 거인으로 오리온좌이다.6장4절-침상에서 기지개를 켜며.10절-출13.19 수24.32 왕하13.21에서와 같이 이곳에서 시체를 의미하고 태우지 않고 맘은 죽은 자들의 뼈를 의미하지 않는다.장사지내는 자가 그 집에 살아있는 사람에게 요청한다.이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집의 구석진 곳으로 도망하였다.아직도 다른 사람이 있는가 그외에 그 집안에 아직도 살아있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를 물어 본다.아주없다라는 답변을 듣는다.그것 때문에 잠잠하라라고 말한다.이 말은 '쉬'하는 말과 같은 뜻이고 그가 말을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거나 하나님의 긍휼을 위해 기도를 할런지에 대해 두려워 한다.그는'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다'라고 부연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설명한다.이러한 설명을 부연하는 것은 아모스가 아니고 친척이다.8장8절-하수,나일강14절-아스마드 소메론을 사마리아의 허물이고 벧엘의 금송아지이다.이것은 이스라엘나라의 주된 우상숭배이고 수도 사마리아의 이름을 따라서 언급되었다[신9.21]'이스라엘의 죄'여호아하스 치세떼에 사마리아에 계속 서서 있었던 아세라가 아니다[왕하13.6].여로보암때에 그것이 거기에 있었는지는 별문제라 하더라도 이 내용은 하반절과 모순된다.거기에서 그들의 맹세의 방법이 제시되었다. 즉 단에 있는 것의 삶을 두고 맹세한 것이다.다시말하면 그곳에 있는 금송아지를 말한다.따라서 사마리아의 죄는 벧엘의 금송아지에 해당한다.그곳의 10지파의 민족적인 성소였다[4.4'5.5]

카톨릭 새번역

이스라엘 왕국의 여로보암 2세[787-747]와 유다 왕국의 우찌아[781-740]의 유명한 치세가 돋보이는 때다.그리고 그는 호세아 [750-725]예언자보다 약 10년 정도[760-749] 앞선다. 1장1절-지진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지적할 수 없지만 기원 전 750년 경으로 추정된다.2절-푸른 풀밭과 언덕들의 풍요로움 특히 가르멜산의 풍요로움은 그 지방주민들의 자존심이었다. 3절-다마스쿠스는 시리아[아람]의 수도였다.쇠써레는 추수가 끝난 다음 타작마당에서 밀집을 작게 자르기 위해 사용되는 농기구로서 끝이 뾰족하거나 양 칼날이 달려있다[2사무 12.31;이사41.15].4절-하자엘과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적 다마스쿠스의 임금들이다[1열왕20.1;2열왕8.12,10.32,13.3]5절-히브리말 '비끄엣 아웬'은 '불의의 골짜기'또는'불의의 평야'라는 뜻이다.'베데덴'은 편안함[즐거움]의 집이라는 뜻이다.이 지명은 현재 확인되고 있지 않고 있다.'바라다' 또는'아바나'의 서늘한 유역에 위치한 다마스쿠스의 상징적인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2열왕5.12].메소포타미아 남쪽에 위치한 키르는 아마 우르를 지칭하는 것 같다.6-8절-필리스틴[블레셋]은 5개의 도시연합체로 결속되어 있었다.여기서 4개의 도시가 언급되고 있다.이 4도시는 자기 노예들을 에돔에게 팔아 넘겼기 때문에 단죄된다[2역대21.16-17;요엘4.4-8;스바2.4-7].5번째 도시는 6.2에서 인용되는 갓이다.9절-페니키아인들은 이스라엘 사람을 원수들에게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이스라엘과 체결한 계약의 옛 조항을 사문화시켰다[1열왕 5.26,9.13]12절-사해 남동쪽에 위치한 데만과 보스라는 에돔의 우두머리들이 머물던 성음이었다[창세36.15;예레49.7,13;오바1.9] 14절-룻의 후손인 암몬은[창세19.30-37]요르단 강 동쪽 야뽁 강의 남쪽에 정착하였고 그들의 임금은 현재 요르단의 수도'암만'인 라빠를 도읍으로 삼아 체류하였다[14절;2사무12.26].2장1절-최근에도 서양에서는 똑같은 방법이 사용된다.그러나 그 당시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근동지방의 견해로는 매장하지 않은 시신의 혼은 죽은 사람들의 처소에서 안식을 누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물며 뼈를 파괴하는 것은 죽음 저편에 있는 죽은 사람의 휴식을 빼았는 것을 의미하였다.예언자는 죽은 사람을 존경심과 함께 매장하던 셈족의 풍습을 침해한 모압의 죄가 무거움을 강조한다.2절-크리욧은 사해 동쪽에 있는 모압의 수도이다[예레48.24]3절-판관은 임금을 지칭한다.7절-그들은 힘없는 이들의 머리를 흙먼지속에서 짓밟고,70인역은'흙먼지속에서 짓밟는 그들'로 읽었다.머리위에 재나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은 파멸을 상징한다[여호7.6;느헤9.1;묵시18.19]3장9절-아모리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 가기전에 그곳에서 살던 주민이다[에제16.3].바로 하느님께서 선두에 서서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주셨다[신명7.1;여호3.6;2사무5.24].9절-아스돗은 이집트를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필리스틴의 성읍이다[1.8].15절-좀 더 가볍게 건축된 여름 별장이 먼저 헐리고 그 다음으로는 한층 견고하게 건축된 겨울별장이 부서지고 마지막으로 아름답고 방대하게 건축된 저택들이 부서질 것이다.처벌은 전반적인 파멸이 될 것이다.10절-호화주택의 벽은 상아로 입혀 장식되었다.아합이 건축한 궁전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1열왕22.39].또한 6.4의 상아침대도 참조하라.4장2절-수도 사마리아의 저명한 관리들의 부인들의 여종들 또는 그들의 후손 또는 비참한 행렬의 뒷부분을 채울 사람들의 여종을 지칭한다[9.1].3절-히브리말의 뜻이 분명하지 않다.하르몬은 알려지지 않은 낯선 지방이다.70인역은 히브리 낱말과 음절구분을 조금 다르게 하여 '림몬산으로'라고 옮겼다.조금 수정하여 해발 2750미터의 '헤르몬산으로'라고 옮기기도 한다.헤르몬산은 이스라엘 북쪽 국경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산 발치에는 아시리아로 통하는 길이 나 있다.13절-일부사본과 70인역에서는 등위 접속사'카이'[히브리어로'워',그리고]를 첨가하여'아침 노을과 어둠을 만드시는 분'으로 읽고 있다.5장26절-임금 시꿋,히브리말 본문을 따라'시꿋[바벨론(아시리아)의 신(히브리말로 혐오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으로 옮겼다.아카드말에 근거하여 '사꿋'으로 읽기도 한다.사꿋은 토성을 말한다.또는BHS의 제안대로 마쎄코트[주조된 우상들]로 읽기도 한다.'별 신 기윤',본래의 발음은 기윤이 아니라 게완[아시리아의 신]이었으나 '제조하여 만든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주기 위하여 기윤으로 읽은 것으로 보인다.기윤은 토성을 의미한다.BHS는 기욘으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하였다.70인역에서는'너희의 신의 별 레판'으로 옮겼다.6장10절-화장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11절의 지진 및 전염병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 같다...주님께서 두렵고 무서운 징벌을 마치셨는데 이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분께서 또다시 나타나시어 재앙을 재차 내리실 지 모르니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처럼 하느님의 징벌을 보면서 사람들이 품는 종교적 경외심[하마2.20;스바1.7;즈가2.17]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무서운 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을 다시 불러 올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공포를 반영하는 말로 여겨진다.13절-로-드발은 요르단 건너편 지역의 지명이다[2사무9.4,5 ;17.27].최근 얼마 전에 여로보암 2세에 의해 다시 정복된 도시의 하나인 것 같다[2열왕14.25].그러나 로드발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또는 이유없이 기뻐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언어 유희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두 뿔이라는 뜻을 지닌 카르나임도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이다[창세14.5;1마카5.26].로드발의 언어 유희처럼 여기서도 힘의 권세의 상징인 '두 뿔'을 가지고 언어 유희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7장1절-첫째 건초를 일종의 사용료 또는 조세 형식으로 임금에게 바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1열왕18.5].이처럼 첫번째 수확은 세금으로 지불되던 임금의 몫이었다.세금으로 바치던 마초 또는 곡물은 우기가 끝날 무렵에 추수하였다.이렇게 첫째추수가 끝나고 둘째 그루갈이가 막 움터 올라올 때에 메뚜기의 습격으로 피해를 입히면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두번째 그루곡식은 봄에 수확이 끝난 다음에 반년에 걸친 건기가 시작되기 전 4월에 늦은 봄비를 맞고 올라오는 곡식 또는 더 넓게는 동물의 사료용 풀까지 가르키는 것으로 여겨진다.4절-지하의 저수지[커다란 심연 또는 넓고 큰 바다]를 고갈시켜 모든 샘을 바짝 말리고 난 뒤 한발이 들녘을 태우면 갈증과 기아로 죽을 것이다[4.6-8;8.11].8장1절-여름은 가을로 시작하는 1년 주기의 마지막 계절이다.여름과일은 이스라엘의 종말이 임박하였음을 상징한다.14절-아스마는 사마리아의 신의 이름 '아쉬마'를 조롱하여 언급하는 언어유희라고 볼 수 있다....히브리말 본문은 '브엘세바의 길이 살아 있다'이다.70인역은'브엘세바야 너희 신이 살아 있다'로 옮겼다.9장7절-쿠스왕국은 세상끝으로 알여진 에티오피아 또는 누비아이다[이사11.11;사도8.27].전형적으로 계약의 하느님께 관심이 없는 백성을 대표한다. 갑돌은 필리스틴인이 머물렀던 크레타인 것 같다[판관13.1]11절-초막은 다윗 집안[이사1.8] 하느님께서 영원히 지속시키겠다고 약속하신 왕가의 유약함을 회상시킨다.또는 초막절 축제의 기쁨을 연상케한다[신명16.13-15]


[오바댜,요나,미가서 성경주해]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오바다

1절-종,여호와를 경배하는 자.에돔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 자신과 그의 문체의 특성에 맞는 상당수의 표현을 포함하지만 그러한 것중 하나도 오바댜서에는 나오지 않은다.이에 비해 오바댜와 그에게 흔한 내용이 예레미야서의 어느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두선지자에게 공통된 것이 오바댜에서 외관상 연관된 형식을 가질뿐아니라 -이에 비해 예레미야서에 그 단어는 그의 예언의 무관한 페이지에서 등장한다[비교 욥1-8;렘49.7,9,10,14-16].-주석에서 다루겠지만 오바댜서에서 그 내용은 예레미야서보다도 원래의 내용에 훨씬 더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러나 이러한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었기에 오바댜의 예언이 더 원형이고 따라서 예레미야의 예언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오바댜는 갈대아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예언한 것이 아니고 그 전에 예언하였음이 확실하다.왜냐하면 에돔에 대한 예레미아의 예언은 여호야김 4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오바댜의 예언의 중심부분[10-16]은 에돔 사람들이 1-9에서 위협받는 바 심판의 어려움을 당할때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그들이 기뻐하였다고 말한 점으로 보아 이러한 결과와 맞지 않는 것 같다.그때 이방사람들이 유다 성문에 들어와 예루살렘을 제비뽑았었다.그리고 그들은 멸시하는 입장에서 형제나라의 멸망을 기대했을뿐만 아니라 유다를 약탈하고 도망자를 죽이며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에게 넘겨주는 일에서 동참하였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비난은 외국백성에 의한 예루살렘을 전제로 한다.그러나 그것이 갈대아인들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인지는 많은 주석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확실하지 않다....요엘은 오바댜보다 거의 20년 후에 예언을 하였고 호세아와 아모스는 그후 약 75년 후에 그들의 사역을 시작하였다.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한 바 있고 오바댜의 예언의 기화를 갖게한 재난은 요람의 8년 치세 후반기에 일어 났었다.결과적으로 오바댜는 자신의 예언을 말할 수 없었고 여호람이 죽기 오래전에 그것을 글로 썼었다.동시에 그것은 후기시대에 해당될 수 없다.이는 한편으로 에돔 사람이 행한 바 적대심이 아직도 가장 생생하게 기억되어 있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무자비한 아다야가 요람을 계승한 아하시야의 1년 통치 후에 유다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행한 바 그러한 우상숭배에 대하여 하등의 암시가 없다는 의심할 여지없는 인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3절-에돔 사람들은 세일산에 거하였다.이러한 것은 아직까지 상세하게 발굴되지 아니한 내용이다.그곳들은 골짜기 동편에 위치하고[또는 아라바의 동쪽] 아시의 깊은 바위골짜기에서 시작하여-이곳은 사해의 남쪽 끝에 해당한다-홍해위의 아에라까지 펼치고 거대하고 웅장한 큰 바위들로 구성된 지역이며 신선한 채소가 있고 그리고 이곳은 서쪽에서 끝나고고짜기와 아라바의 깊은 교차된 바위;바다에 향하고 사암의 경사되고 가파른 벽에 미친다. 그 산들을 따라서 서쪽으로는 전혀 올라갈 수가 없다....자연적이고 인위적인 동굴과 더불어서 절벽이 많고 여기에서 그곳의 옛 주민들은 호리 즉 동굴에 거하는 주민들 이었다.그리고 에돔사람들까지도 동굴에 거하였고 마지막에는 소규모로 남았었다.수도 세라[페트라]는 와디무사에 위치하고-그곳의 영광은 무덤,신전 그리고 다른 건물들의 셀 수 없는 유물에서 아직도 증거된다-동쪽과 서쪽은 바위성벽으로 차단되었고 그것은 찬란하고 생생한 색채로서 다양한 변화를 보여 주는데 그것은 가장 짙은 진홍색에서 연분홍,붉은색까지 나타난다.때로는 오렌지색과 황색을 나타내고 북쪽과 남쪽에서는 그것이 언덕과 에워싸여 있고 따라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을 올라서 그곳에 도착할 수가 있다.7절-화목한 자들은 이곳과 렘38.22[비교 20.10]에서 시편41.10에서 취한 표현이고 인근 아라비아 부족들인 것 같다.이들은 에돔 사람들과 교역을 하였었다.이들이 에돔을 속이거나 에돔을 정복하였다.11절-'멀리 섰던'[히브리어로 반대편에 서는 것을 말한다.]은 대립하는 것을 의미하고[시38.12] 이곳에서는 삼하 18.13에서와 같이 절대적인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약탈물과 포로들에게 제비를 뽑는 것이고 그들 중에서 그러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욜3.3;나3.10].가스피리,힛지그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욜3.3과 같이 이곳에서도 그 단어를 예루살렘의 포로된 주민들의 배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이곳에서 언급된 설명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해당된다는 주장중의 하나로 내세운다.오바댜가 심령으로 그것을 미리 내다보았거나 이미 일어난 어떤 것을 설명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그러나 이러한 것은 요엘에서 우리가 '예루살렘' 대신에 '내 백성을'를 대한다는 사실에서 절대로 인정될 수 없다. 14절-페레크는 이곳에서 길을 차단하거나 나누는 곳 즉 십자로를 의미한다.나훔 3.1에서 그 단어가 나오는 단 하나의 다른 곳으로 그 단어는 산산조각을 내는 것 폭력을 의미한다.19절-네게브 즉 유다의 남부지역[수15.21]주민들이 에서의 산을 기업으로 갖게되고 그렇게 되므로 그들의 영토를 동쪽으로 확장시킨다.이에 비해 지중해의 낮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세펠라 즉 블레셋 지방을 차지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서쪽으로 영토를 넓히게 한다.두번째의'얻을 것이며'에 대한 주어가 언급되어 있지 않고 따라서 문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즉 유다사람들을 의미하고 이미 언급한 바 네게브와 세펠라 주민은 제외이다.

요나

1장1절-우리는 왕하14.25를 통해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가 가드헤벨에서 스불론 지파중에 태어 났다는 것을 안다.이 지역은 제롬이 제시한바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세보라에서 디베리아로 가는 길에 있고 나사렛의 북쪽에 해당되며 현재의 메사드 마을 자리에 해당한다[수19.13]그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때에 살았고 이 왕에게 그 나라의 옛 변경의 회복을 위해 아랍인과의 전쟁에서 그 군대의 승리를 예언하였다.그리고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3절-스페인에 있는 베니기아의 항구 다시스 즉 탈테수스에로 도망을 나간다. 2장7절-산의 뿌리는 절단하다,절단되다를 의미하는 카차브에서 왔고 따라서 어떤 곳이 절단된 곳을 의미한다.그러한 산들의 밑 바탕과 뿌리들이다.이러한 것들은 땅의 깊은 곳에 있고 바다의 밑까지 이른다[시18.16]....바다의 빗장은 바다 밑에 쌓여 있는 흙이고 그러한 것들이 바다로 바다의 기능을 행하게 한다.결과적으로 땅이 바다위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그러한 방파제들은 세찬파도와 그 파도의 힘을 막고 그렇게 함으로써 땅이 바다에 침식되는 것을 막아준다.3장4절-DIOD II,3에 의하면 그 성읍의 길이는 150스타디아 였고 헤로도투스는 이 숫자를 하룻길로 정확하게 제시한다...그 성읍의 직경이 150스타디아였고 주변이 480스타디아 이기 때문에 사람이 한쪽 거리에서 다른쪽 거리로 나가면서 다른쪽 끝에 도달하지 않고 온 종일 걷는 것은 쉬었을 것이다.그리고 요나는 자신이 전파할 곳을 찿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행할 수도 있었다. 4장6절-[IDB,피마자-아주까리인 RICINUS COMMUNIS L.이것은 급히 자라서 3미터 까지 자라는 다년생 식물이다.그 커다란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몇개의 열판으로 나누어져 있다.옛날에 아열대지방에서 도입된 것 같다.이것은 고대의 이집트에서 KIKI 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미가

1장1절-미가는 미카후에서 되어진 단축형 미카이다.그는 렘26-18에서 소명을 받은 자로 언급되었고 또한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미카예후의 단축형이기도 하다.즉 비길때 없는 하나님으로써 여호와에게 바친자를 의미한다.그는 모라셋 사람이다. 즉 가드 모레셋 출신이고[1.14]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은 물론 그 이전의 선지자 아믈라의 아들과[왕상22.8] 구분된다.6절-사마리아는 무덤같이 되게 ,폐허나 건물 무덤이 아니라 [포도원을 만들기 위해 땅의 돌을 골라서 모은]들판에 수집된 돌무덤같이 된다.'포도 심을 동산'은 포도밭을 만드는 좋은 땅을 말한다.이 상징은 매우 비옥한 지역의 언덕위에 있는 사마리아의 위치에 부합한다.그리고 그곳은 포도나무를 심기 위해 적당한 곳이었다[암3.9].성읍의 위치가 골짜기에 그 돌을 버리는 것을 설명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10절-베들레아브라는 베냐민의 오브라[벧엘-베이틴 북동쪽 6.4킬로미터의 에트 타이베이다.]인 것 같다[수18.23].그리고 그곳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벧엘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위치하였다.11절-사빌[아름다운 도시]은 수15.18에 있는 사밀이 아니다.왜냐하면 유다의 남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에브라임산에 있는 사밀도 아니다[삿10.1].그곳은 유다나라에 속하지 아니한다.따라서 그곳은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어떤 곳이다. 사아난은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벧에셀[벧 에첼]은 슥14.5에서 아셀[아첼]과 매우 유사하고 감람산 동쪽이고 예루살렘 근처의 한 장소인 것 같다.이는 '벧'이 장소의 이름에서 빈번하게 생략되기 때문이다.12절-마롯은 예루살렘 근처임이 분명하다.13절-예루데루포리스의 서쪽에 위치하고 세펠라의 요새화 된 성읍으로 라기스의 거민들은-이곳은 움라기스의 폐허에 보존되어 있다[수10.3]-준마에 병거를 달아야 한다.다시말하면 닥쳐오는 적앞에서 할 수 있는 한 빨리 도망가는 모습이다....시온의 딸에 대한 즉 예루살렘의 주민에 대한 죄의 시작이었다.다시말하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를 처음 인정한 것 즉 10지파의 우상숭배 행위를 나타낸다.14절-[문맥상 상반절의 '그는'은 라기스를 지칭하는 것 같다]더운 계절에 마르는 시냇물이고 물을 발견하리라는 나그네의 기대를 속이는 내용이다[렘15.18;욥6.15이하].악십은 유다의 평지에 있는 한 성읍이고 베이트-지브린의 남서쪽에 위치한 쿠스사베의 폐허에 남아 있는 이름이다[수15.44].15절-마레사는 유다의 낮은 지역에 있기도 하고 그 이름이 관련되는 한 마라사의 폐허에 보존되어 왔다[수15.44].이곳의 북쪽으로 아둘람이 있었다[수12.15].2장3절-목에 무거운 멍에를 지우신다.거기에서 그들의 목을 뺄 수도 없고 목을 가볍게 하여 걸을 수도 없으며 목을 움직일 수가 없다...교만하게 걷는 것 다시말하면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걷는 것이다.1장6-7절-말하는 자는 거짓 예언자들이다. 즉 예언하지 말고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그의 심판을 예언하지 말도록 참된 선지자들에게 방해한다....그들이 말하기를"너[희]는 예언하지 말라.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치욕들이 우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BHS]"하는도다. [너희] 야곱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하겠느냐?"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하겠느냐"? 나의 말이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유익하지 아니하냐? 8절-전쟁을 피하는 것 싸움을 싫어하는 것 즉 평화스러운 성격을 의미한다[시 120.7,물론 좋은 의미의 성격을 지적하는 것이아니다.카톨릭 새번역은 전쟁을 등져(싸울 뜻이 없이)].11절-거짓선지자들의 말로 즉 내가 포도주에 관해서 너희에게 예언하리라는 의미는 ...포도주와 독주가 세상적인 축복과 감각적 즐거움을 나타내는데 사용된 상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그리고 그 단어들은 레26.4,5,10;신28.4,11;요엘2.24,4.18 등에 있는 그러한 약속에 해당한다.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자세와 상관없이 백성들에게 그러한 것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였다."이 백성" 즉 귀인들이 그 백성을 대표한 것이다.13절-깨뜨리는 자는 그들 앞에 나아가는 자이고 여호와가 아니라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자인 모세에 상당한 자이고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대장이며 그들이 호2.2에서 스스로 택했다고 말한다......그에 의해서 인도되어 그들을 뚫고 성문을 통해 행군하고 감옥을 나와 그곳을 지나간다. 4장3-4절-모든 사람이 평화의 비길데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그것을 이스라엘은 평화스러운 솔로몬 통치때에 맛본 바 있었다[미래의 축복을 예언하는 표현과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미래의 상황은 항상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라].14절-자기 자신을 상처내거나 흔적을 내는 것을 의미하지 아니하고[신14.1] 렘5.7에서와 같이 함께 학대하거나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일단 방비하라는 것이다.그러나 결과는]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5장2절-스룹바벨과 관계되었다는 생각은 그리소스돔,데오도렛,그리고 다른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일부 유대인들이 즐겨 하였다.5절-7목자나 방백은 매우 충족함을 보여준다.그리고 이러한 숫자는 그곳의 힘이 필요한 것보다 더 있을 수 있다는 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8이라는 숫자가 그 다음에 등장한다.6장5절-오압 왕 발락이 발람의 저주를 통해 이스라엘을 멸망하기 위하여 구상한 계획을 좌절시킨 것을 회상시킨다[민22-23장]...모세가 신23.5,6에서 말한대로 주께서 계획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일이다.싯딤에서 길갈까지의 여행기간은 발락의 충고와 발람의 답변뿐만 아니고-이것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하였던 음모가 좌절되었다-미디안 사람들의 패배가 포함된다.미디안사람들은 이스라엘로 우상 숭배를 하도록 하여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하였다.그러나 이러한 것은 요단의 기적적인 통과와 약속의 땅의 들어감과 길갈에서의 할례들을 말해준다.16절-오므리에 대해서 언급된 내용을 보자,그가 그 선배들보다 더 악한 것을 말한다[왕상16.25] 그의 윤례는 그 아들과 그의 선배 아합이 주도적인 민족적인 종교로서 등장시킨 바 바알 경배읻[왕상16.31,32].그리고 그곳 속에는 그 왕조의 창설자로서 오므리 때문이었다.같은 의미에서 이세벨의 딸이었던 아달랴가 대하22.2에서 오므리의 딸이라 하였다.바알숭배뿐아니라 주의 선지자를 박해하고[왕상18.4,22.17] 그외의 나머지 죄 즉 나봇에게 행한 강도질과 살인행위등[왕상21장] 아합집의 모든행위가 등장한다.7장16절-"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카톨릭 새번역

오바디야

7절-"너와 동맹계약을 맺은 자들이 모두 너를 국경까지 쫓아내고 너와 사이좋게 지내던 자들이 너를 속이고 압도하였다.너와 너의 빵을 함께 먹던 자들이 "저자는 슬기가 없구나"하면서 네 밑에 올가미를 놓았다."8-9절-에돔은 지혜로 명성을 떨친 나라였다[예레49.7].'데만'은 에돔의 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다.16절-마시다는 처벌을 환기시키는 전통적인 형식이다.'주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다'[예레25.15-29;에제23.32-34;시편60.5;75.9;묵시14.10].20절-할라는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2열왕17.6;18.11;1역대5.26]사르밧-차르밧은 페니키아 남쪽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1열왕17.9,현재의 수라펜트이고 두로와 시돈 사이에 위치한다].스바랏은 흑해 연안 지방 또는 소아시아의 지방으로 추정된다.TOB는 소아시아 리디아에 있는 사르디[아마도 사파르다를 지칭하는 것 같다]지방의 도시 또는 현재의 아프리카 북쪽에 있는 벤가시인 에스페리드 지방의 도시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유다인은 이 단어로부터'세파르팀'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내어 마그렙[모로코,튀니지,알제리를 포함하는 북아프리카 지방]과 스페인에서 자기들과 같은 종교를 믿은 사람들을 '세파르팀'이라고 불렀다.

요나

1장7절-여기서 표현된 동작은 제비가 한 사람에게 떨어질 때까지'에봇'안에 있는 작고 가는 막대기를 흔들어 떨어뜨리는 구체적인 동작으로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2장4절-큰 물이 저를 에워싸고 즉 바다에서 부는 폭풍에 쓰러져 점점 더 빠져 들어가는 사람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3장3절-니느웨가 '니느웨'로 불리우는 지역의 도성뿐만 아니라 칼라도성과 두르 샤르킨도성 더 나아가 마치 지방도시를 관할하는 주의 중앙도시처럼 니느웨를 구성하고 있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위성도시를 통괄하는 도성이었다는 전승에 의존하여 언급하고 있다.고고학의 발굴 결과 니느웨도성의 둘레는 12.4킬로미터[위성도시를 포함한 도시의 둘레는 96킬로미터 정도] 폭은 2.4킬로미터 정도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절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도시의 규모가 아니라 그 메시지의 중요성이다.4장8절-사막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시로코]을 말한다[호세13.15;욥1.19].

미가서

1장1절-미가는 유다 임금 요담과 아하즈와 히스기야 시대 곧 기원 전 750년에서 대략 기원 전 697년 사이에 임무를 수행한다.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의 사람이다.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직선거리로 남서쪽 약 4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곳으로 생각된다.이곳은 팔레스티나 중심부의 남북으로 뻗은 산악지방에서 지중해 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평원지대이다.7절-몸값으로 번역한 히브리말'에트난'은 어떤 노동의 댓가로 받은 보수 또는 거깃 신들에게 봉헌되던 서원 예물 등을 지칭한다.신전 매음으로 얻은 몸값은 성전을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이스라엘을 정복한 아시리아는 이 우상들을 박살낸 후에 이 귀금속들을 다시 매음의 몸값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9절-예루살렘 성문까지 위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기원전 701년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사건을 연상할 수 있다.13절-솔로몬이 기마부대와 전차부대를 여러 도시에 창설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열거되지 아니한다.라기스는 그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1열왕9.19;2역대9.25].여기서 예언자는 전차와 말을 믿고 있는 사람들을 거슬려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임금과 책임자들은 주님보다는 인간적인 수단에 더 큰 신뢰를 걸고 있다.14절-악십에 유다의 전위부대가 배치되어 있었다.15절-이스라엘의 영광을 '이스라엘의 파괴자'로 고쳐 읽기도 한다.2장4절-70인역은'내 백성의 몫이 줄로 측량되었구나'로 옮겼다.일종의 예배의식을 통하여 땅을 다시 분배하였다.11절-거짓 예언자는 강한 술을 요구한다.부유층의 대향연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아모4.1;이사5.11,22이하 참조].쉐카르[독한 술]와 쉐케르[거짓말]사이의 언어유희를 통하여 특별히 강하고 독한 술을 메체로 하여 인위적으로 황홀경과 광란에 빠져들려는 그들의 속임수를 환기시키려는 것 같다.5장 2절-"그의 기원은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창세기 49.10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7장3절-70인역,시리아말역,불가타를 참조하여"그들의 손은 악을 저지르는 데 이력이 나있고[악착같고]"로 옮겼다.직역은 "힘있는 사람은 자기 영혼의 탐욕을 말하고 있구나"이다.



[나훔,하바꾹,스바냐,학개서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나훔

"나훔의 연대는 이사야와 미가이후 곧 바로 해당되고 따라서 10지파의 포로로 끌려간 후 뿐 아니라 산헤립의 멸망 후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없다[1.11,13].그러한 내용에서 예언의 주제가 취하여졌고 니느웨와 앗수르의 완전한 멸망을 예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1장1절-나훔 즉 위로,위로자,위로를 받는 자.제롬의 진술은 훨씬 더 오래되고 더 신뢰성이 있다. 즉 엘고스는 갈릴리에 위치하였다.왜냐하면 오늘날에도 헬세사이[HELCESEI,HELCESEI,ELCESI]라고 부르는 작은 마을이 갈릴리에도 있기 때문이다....이 유대인의 전승은 알렉산더의 시릴,에피파네우스,도로데우스에 의해서 지지를 받는다.10절-'저희의 포도주는'저희가 습관적으로 마시는 포도주이다.이러한 내용은 앗수르인들이 자신들을 난공불락으로 간주한 교만과 거만을 표현하고 앗수르 궁중에서 진행된 향락에 매우 적절하게 적용된다.11절-여호와께 대한 악한 생각은 이스라엘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앗수르 정복자들의 생각이다.물론 앗수르 그 자신이 이사야가 랍사게의 입을 통해서 원수의 악한 교만을 나타낸 것과 같은 훼방된 말로 선언되었기 때문이다[사36.14-20].2장3절-방패에 칠해진 붉은색이거나 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방패의 겉을 둘러 싼 구리의 색깔일 것이다...고대의 전투복은 빈번하게 피색깔의 붉은 색이었다...페라돗은 앗수르의 싸움의 병거가 금속 장식으로 에워쌓여 있는 것 같이 병거를 감싼 철을 의미한다.6절-디오도루스 시쿨루스의 역사서DIODOR SIC II.27의 진술을 인용하여 그 성벽이 티그리스의 범람으로 20스타디아의 간격이 파괴되었다고 주장한다....그 문이 강물에 의하여 보호를 받았으나 원수에 의하여 무너졌을 때 궁전 즉 권력을 잡은 니느웨가 공포속에서 사라진다.3장4절-사랑하는 일은 그와 유사한 병행절'마술'[케샤핌]이 나타낸대로 '적은 나라를 간교하게 정복함으로써 배신적인 우호와 간교한 정책을 나타낸다'이러한 정책은 마술이나 사랑을 행하는 일이라 하였다...나라를 파는 일 즉 그 나라에서 자유를 빼앗고 그들을 노예로 삼고 신32.30 삿2.14,3.8에서와 같이 저희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는 것이다.15-17절-에레크[IDB,1령 메뚜기]는먹는 것을 말하고...들판의 식물과 푸른 것들을 삼키려고 따라서 메뚜기들은 황폐와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다.크레드너,마우어,에발트 그리고 힛지그는 그것을 스스로 옷을 벗고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그것을 어린 메뚜기의 껍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한다.미네잘은.. 왕관을 의미하는 네젤 또는 왕관을 쓴 사람을 의미하는 나절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분리한다는 나잘에서 기원 된 것 같다..왕이나 대장이라는 의미는 많은 메뚜기를 의미하는 아르베[IDB,이주하는 메뚜기들]와 비교할 때 모순된다.왜냐하면 군대에서 지휘관이나 참모의 숫자가 비교적 소수이기 때문이다.티프샬은 ..특별한 병사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인 것 같다.

하바꾹

1장1절-하바꾹이라는 이름은 '손을 모은다'라는 하박에서 형성된 것이고...에워싸는 것 즉 껴안거나 껴안긴 사람을 뜻한다....제롬은 그의 번역에서 HABACUC라는 이름을 쓴다.그의 책의 주제에서[1.1,3.1] 하바꾹은 수식어 나비 즉 선지자의 직책을 가진 자 3장에서 시편에 대한 결론 부분을 통해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19] 우리는 그가 공식적으로 성전에서 의식적인 찬송에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는 것과 레위 족속 중의 한 사람으로 속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레위 족속은 성전 음악의 행사에 종사했었다.하바꾹은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마찬가지로-이들은 제사장 가문에 속하였다-레위지파에 속하였다.이러한 것은 바벨에 있는 벨 과 드라곤의 아포크리폰의 비문에서 지지된다.그 자신의 글에서 확실하게 수집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은 그가 팔레스틴에서 갈대아인들이 도달하기 전 즉 여호야김 4년에 갈그미스에서 느부갓네살이 바로느고를 쳐서 승리하기 전에 예언을 하였다는 점이다.14절-'주권자 업는'는 그의 보호하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 따라서 원수에 대해서 지킬만한 도피소나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기어다니는 것' 즉 큰 숫자로 다니는 더 작은 동물들이고 매우 빠르게 달린다.이곳에서는 더 작은 물짐승이다....학카는 낚시이고 헤렘은 일반적으로 그물이며 미크메레는 큰 어망이다.그 어망의 밑부분은 잠길 때 밑바닥이 내려가고 윗 부분은 물수면위에 떠있다....갈대아인들이 열방을 정복시키려고 사용한 모든 방법에 해당한다.2장2절-루호드는 나무서판을 말하고 이미 히브리인 가운데서 책으로 쓰인 바 있다.9절-그의[갈대아인의] 깃들이는 곳은 그의 수도도 그의 궁궐도 왕성도 아니다.그러나 높은 곳에 그가 거할 곳을 세우는 것은 그 정부의 설립을 나타내고 공격에 대해 그것을 안전하게 하는 것의 상징이다.독수리가 그 둥지를 높은 곳에 세워서 그 둥지를 보호하는 것 같이[욥39.27] 갈대아인들도 약탈과 강도질로 그들의 통치를 공고히 하고 굳세게 하려고 한다.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가족에게 계속 피해가 없게 된다.이러한 것을 우리는 이곳에서 바빌론의 요세화를 위하여 느부갓네살에 의해 세워진 건물과 왕궁의 건물을 생각할 수가 있다.11절-방의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나무기둥과 구분된 것으로서 바깥 벽이다....벽을 똑바로 서 있도록 하기 위하여 건물가운데 놓는 들보이며...돌에 대한 답변 즉 함께 부르짖는다.15절-[문자적으로 한 가죽부대,히브리어로'헤멧'HEMET으로 3갤론의 용량과 30파운드의 무게를 가진 것으로 하갈이 메었던 것과 단어가 동일하다:WBC] 술취한 사람이 엎드려지는 것을 정복된 백성의 멸망의 상징적 표현[나3.11]이고 수치가 드러나는 것은 거기에 임한 수치를 나타내는 상징이다[나3.5,사47.3].3장5절-그 앞에 텝헬 즉 온역이 등장한다.그의 발밑 즉 그 뒤에서 레세프 즉 문자적으로 타는 열 신32.24에서와 같이 열병.6절-[영원한,히브리어로 antcient time.무궁한,영원함은 age-old time.].하리카는 하나님이 가시는 것 나아가는 것 또는 길이고 데레크[길] 올람에 해당한다.즉 옛 세상의 과정[욥22.15] 선지자는 시68.25를 그 마음 속에 간직한다.거기에서 하리콧 올람은 그 백성과 함께 하나님이 나아가는 것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데 있어서 옛날부터 취하신 방법이시다.7절-그 단어는 구스에 대한 긴 형식이다.그리고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인들의 이름이다.미디안들은 저희들과 함께 언급되었다.이들은 홍해 아라비아 해변의 주민들이고 저희들과 맞은 편에 있었다[출2,15].13절-머리는 그 집의 한 부분으로 박공이다.예솟은 기초석차이고 짜바르, 목은 박고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중심지이다.파괴는 위에서 그리고 아래로 동시에 일어났고 따라서 박공과 기초가 산산조각이 나버려서 목까지 즉 지붕과 목이 연결된 지점까지 미친다.19절-[12줄 하프를 보통 가르킨다]

스바냐

1장9절-많은 주석학자들은 ..문지방을 넘나 드는 것은 다곤제사장들을 모방한 것으로 내세운다.그러나 그러한 관습모방은 다곤 신전에서만 있을 수 있다.그리고 이러한 것은 왕이 다곤으로 간주되지 아니하면 왕궁의 문설주를 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이러한 것은 이스라엘 우상숭배자들의 마음속에 전혀 없는 생각이다.이는 블레셋 왕들이 그들의 우상의 화신으로 생각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만일 우리가 하반절에 나아갈 때 비난받는 일은 그들의 주인의 집을 강포로 넘치게 한 행위를 보게 된다.확실히 이러한 것은 다곤 제사장들의 그러한 관습과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가 없다....우리는 문턱을 뛰어 넘는 것 나그네의 재산을 훔치기 위하여 지배,강포와 그리고 갑자기 침입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11절-막데스[마크테쉬]는 예루살렘에 있는 한 장소이며 서쫏으로 아크라와 동쪽으로 벳사바와 모리아사이에 있는 움푹한 땅을 말하는 것 같다.그리고 이곳은 실로의 우물에 까지 미치고 요세푸스에 의하여 치즈를 만드는 계곡이라고 하였다.현재의 주민들은 엘-와드 즉 맷돌 골짜기라고 한다.12절-이 상징은 묵은 포도주에서 나온 것이다...좋은 포도주는 오랫동안 그 찌꺼기위에 남아 있고 점점 더 맛이 좋아간다.그러나 묵은 포도주는 점점 더 맛을 잃고 질이 좋지 않다.세마림은 찌꺼기[재강,카톨릭 새번역]이고...'죄의 더러움이다' 이러한 것은 이 사람들의 경우에서 외적인 선과 연관이 맺어져 있다.그들의 세상번영의 육체적인 경향속에서 그들은 그들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세상을 주관하고 심판하는 하나님도 없고 매사에 우연이나 무익한 자연법에 따라서 되어 진다고 스스로 생각한다.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지만 그들의 인격과 행위에서 세상에서 사신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여호와를 죽은 우상의 수준위에 올려 놓는다.그는 선이나 해를 행하지 아니 하신다는 입장이다[사41.23,렘10.5].이에 비해서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였다.17절-피는 발로 밟히는 티끌같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레훔은 욥20.23에서 다시 등장하고 피가 아니라[아랍어에서와 같이] 살을 의미한다....창자에 관한 것으로 간주할 필요성이 없다.2장14절-특별한 의미에서 올빼미나 학의 소리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일반적으로 새의 울음소리로 생각해야 한다.이러한 것은 폐허지의 창문에서 새들이 노래를 부를 때 듣는 소리이다....까치아 까마귀로 변경할 필요성이 없다...문턱은 호레브 즉 폐허가 되었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15절-사랔은 쉬소리를 내는 것이고 일반적인 멸시의 표현이다[미6.16,렘19.8].손을 내젖는 것이고 그 의미는 '그를 떠나라.그가 그의 운명을 많이 간직하고 있도다'이다.

카톨릭 새번역

나훔

이사야 예언자와 야훼 신앙에 충실하던 히즈키야 임금이 세상을 떠난 후 유다는 므나쎄 임금의 통치아래 고통의 시기를 보낸다.므나쎄는 오랜 세월 동안 주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여 이 기간동안 어떤 예언자의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다.그가 죽고 신명기의 법전이 발견되어 신명기의 개혁을 단행한 요시아 임금 시대에 와서야 다시 예언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때 활동한 예언자가 나훔,스바니야.하바꾹,예레미야이다...히브리 알파벳의 순서에 따라[알렙에서 카프까지] 구성된 아크로스틱[ACROSTIC] 찬양시가 발견되는데[1.2-8] 열정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발현하시는 장면을 묘사한다...이 소책자의 저술시기까지도 기원전612년의 니느웨 멸망 이전 더나아가서 3장에서 시사되는 기원전663년의 이집트 테에베의 약탈 이전으로 잡는데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더 상세한 시점을 찿아가는 과정에서 1.13에 의하면 유다가 아직도 앗시리아의 폭정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이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이때는 아수르바니팔이 죽기 전이다[1.13].1장9절-70인역은 이 부분을 "뒤틀린 주목朱木처럼"으로 옮겼다.11절-'사악한 일을 꾸미는자'를 '사악한 일'로 옮긴 것을 고유명사 '블리얄'로 읽어'블라얄의 음모를 꾸미는 자'로 옮길 수 있다....예언자는'사악한 일을 꾸미는 자'로 니느웨의 현재 임금[아수르바니팔]에 앞서[1.4,2.1] 살아계 하느님신[2열왕19.4,16]을 모독하던 산헤립을 지목하는 것으로 보인다.12절-그들이 빈틈없고[히브리어로 '온전하고',한글개역 개정판은 '강하고'] 그렇게 많아도 14절-'너희 이름을 이을 자손이 더 이상 나지 않으리라' 아시라아 왕조는 아수르바니팔의 두 아들인 아수레틸리나니와 쉰샤르이쉬쿤과 함께 소멸된다.그들보다 앞서 디글랏빌레셀 3세[2열왕15.19,29] 이후 아시라아 왕조에는 명성이 드높은 6명의 걸출한 군주가 있었다.2장1절-'불한당'으로 옮긴 말은 '블리얄'이다...여기서는 예언자가 사람과 백성의 권리를 짓밟는 가장 큰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사악한 일을 꾸미는 자'[1.11]인 니느웨 임금 아수르바니팔[3.8]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2장4절-창으로 옮긴 히브리말은 본디'삼杉나무들'이다.3장8절-'너 아몬[아몬 신의 도시,예레46.25,에제30.14]은 테에베를 지칭한다.아수르바니팔 임금은 재임 중 이집트인들과 치룬 최초의 전쟁에서 이이 이 도시를 정복하여[667] 유다 임금 므낫세를 비롯하여 22명의 임금들에게 조공을 부과하였다.663년에 누비아 왕조의 마지막 임금이 이집트 재탈환에 성공하자 아수르바니팔 임금은 다시 이집트를 침공하여 이번에는 테에베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예언자는 이 승리를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집트의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7년 후 이집트는 다시 독립을 쟁취한다.616년부터 이집트는 아시리아가 사양길에 접어든 기회를 틈타 몇년 동안 영향력을 행사하여 팔레스티나를 자기 영토 안에 합병시키려고 시도하면서 아시리아를 정복하려고 하였다.이것이 612년 직전과 663년 이후 수년동안을 테에베와 이집트가 회복 불능의 상태로 파멸한 시기로 잘못 이해하게 된 이유이다.여기서 예언자는 니느웨를 향해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11절] 또는 지금 발생하려고 하는 것을 예고하기 위하여 테에베에 일어 난 사건을 회상시키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비교를 찿을 수가 없었다.8-11절은 이사10.8-11의 응답하고는 좀 거리가 있다[이사10.9].같은 유형의 위협 신탁이 아모스 예언서에서도 발견된다[아모6.2].테에베는 나일 강 삼각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바다가 아니라 강이다.그러므로 여기서 바다는 넓은 나일강을 가리키는 일종의 과장법이다. 3장9절-에티오피아로 옮긴 히브리말은 이집트 남부 지방 곧 나일강 상류 지방을 지칭하는 쿠스이다.그밖에도 쿠스는 테에베 멸망과 함께 끝난 이집트 제 25왕조의 파라오의 출신지인 누비아로도 불린다. 푸트는 소말리아 해안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이사66.19].

하바꾹

아람족인 갈대아인들은 8세기 경부터 바빌론을 침투하여 힘을 모으다가 바빌론이 약해진 틈을 타 신바빌론 왕국[626-539]을 건설하였다.612년에는 신 바빌론 임금 나보폴라사르가 이란 부족 국가인 메데 임금 키약사레스와 함께 니느웨를 공격하여 606년에 아시리아제국을 멸망시켰다.또한 605년 느부갓네살[나부코도노소르]은 유프라데스 강변 가르그미스에서 이집트 임금 느고 의 군대를 쳐부숨으로써 아시리아의 예 영토를 모두 장악하게 된다[예레46.2].이에 따라 아시리아의 식민지에 속해있던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는 이때부터 신 바빌론의 압정에 시달리게 된다.그 결과 예루살렘은 597년에 포위공격을 당하여 1차 유배의 길에 오르게 되고 587-586년에 완전히 함락당하였다.하바꾹서는 이 역사적인 비극의 전환점에서 생겨난 예언서이다.나훔서와 같은 시기에 속하는 하바꾹서는 유다를 압박하는 폭군의 횡포에 대해서 똑같이 언급하고 있지만 전자가 이미 그 폭군으로부터 해방을 예견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그 고통을 언급하고 있다.또한 나훔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시로 예언서를 시작하는 반면 하바꾹은 개인적인 탄원시로 시작한다....갈대아인들에 대한 언급[1.6]을 통해 이 신바빌로니아인들이 아시리아 제국을 와해시키고 근동 지배에 성공하는 7세기 말에 하바꾹의 예언이 나옸다고 볼 수 있다.하바꾹 예언자는 660-610년 까지 이어진 갈대아 군대의 원정,유다의 점령,그리고 예루살렘 포위와 유배[2열왕23-25장] 등 유다왕국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 이 역사적 사건들을 서술하고 해설한다.2장12절-예언자는 하느님의 도구인 갈대아인들[특히 그들의 임금]이 자기에게 위임된 사명을 벗어나 주제넘게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바빌론을 당신 계획을 수행할 정복자로 선택하신 것에 대하여 탄원하고 있다. 15-17절에서도 자신들의 불행에 대해 예언자는 탄원한다.3장1절-'시그요놋'은 탄원조,고백조,만가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이 낱말의 정확한 뜻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역본들은 다양하게 옮기고 있다.일종의 탄원 시편으로 보인다.시편7.1 참조].3절-데만은 시나이 사막과 유다의 관할 지역 사이에 있는 에돔의 주를 말한다[즈가9.14]'바란산'은 시나이산[신명33.2] 및 광야에서 계시가 내려진 특정 장소들과 연관된 이름이다.하느님은 폭풍과 지진 가운데서 자신을 드러내시거 어떤 내용을 계시하신다.13절-자의적으로 당신의 메시아를 유다의 임금으로 지칭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

스바냐

1장1절-'주님께서 피난시켜 주신다[숨겨 주신다]'를 뜻하는 스바니야는 1.1을 참조할 때 요시야 임금시대에[640-609] 예언자로 활동하였다.스바니야의 신탁이 반영하듯이 요시아 임금의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제국으로부터 정치,종교,문화적인 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아 신앙이 뿌리채 흔들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특히 아시리아의 천체 숭배사상,알몬족의 밀곰신 숭배,가나안의 토속신앙[1.4-5] 외국문물의 영향,거짓 예언자들의 만행[3.4] 폭력과 사회 불의[3.1-3,1.11] 등 온갖 죄악이 그 당시에 만연되어 있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성전 주위에 머물면서[1.7,9;3.5] 심판을 예고하고 동시에 열심히 살려고하는 이들을 격려하였다...제3의 물결이 또 들이닥친다.28년동안[639-611] 근동의 상당한 부분을 지배하게 되는 스키타이족의 침략이다.흑해 북부 지방에서 내려온 그들은 메데인을 몰아내고 소아시아를 뺏은 다음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집트를 향하여 남쪽으로 내려간다.이집트 임금 프삼메티쿠스의[664-620] 간청과 선물을 받고서야 그들은 되돌아간다.그러나 아시아에서 이집트 변방까지 이르는 스키타이인들은 자기들이 점령하거나 통과하는 지방을 약탈하고 철저히 파괴시킨 다음 피정복민들을 제멋대로 자기들의 지배아래 묶어 놓는다.스키타이의 통치는 611년경 필리스틴 땅에 있는 아스클론 약탈과 아스돗의 함락으로 종말을 고한다.이집트의 파라오 느고 2세가 필리스틴의 다른 도시인 가자를 빼앗고 므기또에서 시리아인들을 쳐부순 다음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까지 진군한 것도 이때이다[609-608].이 기간내내 특히 므나쎄의 오랜 통치를 특징짓는 아시리아 시대에 예루살렘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근동의 북서와 남서를 잇는 이른바 팔레스티나'회랑'옆에 붙어 있는 예루살렘도 국제정치의 음모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자리잡은 군소국가들의 동맹놀이에 가담하게 된다.그러다가 유다 임금 아몬이 아시리아의 멍에를 벗어 던지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이는 일단의 관리들 손에 살해되기도 한다.이러한 친이집트 동향에 곧바로 나라백성이 반혁명을 일으킨다.그 덕분에 8살밖에 안된 요시아가 왕좌에 오르게 된다[2열왕21.24;22.1]이렇게 요시아 임금이 어릴 때 이루어진 아시리아 지배에 대한 저항의 선상에서 스바니야의 활동 그리고 임금 측근의 고관들과 제후들 또 외국복장이나 종교의식을 따르면서 외국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가하는 그의 정치적 종교적 비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역사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스바니야가 630년쯤 활동을 개시하였다면 그가 612년의 니느웨 몰락소식을 직접 듣고 게다가 예루살렘의 2번의 포위[597과 587-586] 그리고 이 성읍의 함락까지 직접 겪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는 사실때문에 스바니야는 불행의 예언을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또한 유배자들에게 귀향과 복구를 약속하는 신탁들을 선포하였던 것이다.5절-스바니야의 반응은 이중으로 나타난다.그는 이스라엘 신앙을 늘 위협해 온 가나안 종교[바알리즘]를 거슬러 또한 천체 숭배가 주종을 이루는 것으로서 유다 임금 아몬과 므낫쎄가 2대에 걸쳐 예루살렘에서 장려하던 메소포타미아 종교를 거슬러[왕하21.3-5,21-22] 강하게 비난하였다.'밀곰을 두고'로 옮긴 히브리말은 '버말감'으로서'그들의 멜렉 또는 그들의 임금에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히브리명사 멜렉[임금]은 바알[주인]의 경우처럼 신의 이름이 되었다[사57.9].2장14절-돌과 대들보를 엮은 후 회를 발라 성벽을 쌓곤 했다.붕괴되었거나 회반죽이 잘못된 곳을 통하여 그 골조를 볼 수 있다.

하깨

하까이-나의 축제,즐거운 자.귀환한 유다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서 올바른 제사를 봉헌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번제의 제단을 세우고[에즈3.1-6]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지만[에즈3.7-12] 경제적 어려움과 사마리아 주민들의 적대행위로 역사적인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게되어 성전 신축은 18년간 중단되게 된다.그런데 522년 캄비세스 황제가 죽은 뒤 격렬한 내부 혼란이 페르시야 제국을 뒤흔들었다.캄비세스에 이어 왕좌에 오른 다리우스[히스타스페스]의 집권 초기에 일어난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예루살렘에도 긴장을 불러 일으켰다.그러나 유배에서 돌아온 공동체는 이 사실을 하느님이 개입하시는 징표로 보았다[2.21-22].하깨 그리고 이어서 즈가리야 예언자는 그것을 공동체를 일깨우는 기회로 삼아 하느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였다...정확히 520년 8월에서 12월 사이에 선포된 하깨의 메시지는 동 시대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석해 주려고 한다.빈곤과 흉작은 그들의 영성적 혼수상태에 대한 벌로써 이제 신앙의 열성을 되찿고 주님께 합당한 집을 지어 드리는 작업을 재개하면 많은 복을 받고 구원의 시기가 결정적으로 시작되리라는 것이다...하깨와 즈가리야의 설교에 힘입어 제2 성전이 515년에 완공된다.1장1절-다리우스는 521-485까지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렸다.제2년 6째달 초하루는 520년 8월[현재의 달력으로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사이이다]이다. 초하루는 8월 말에 해당한다.그날은 쉬면서 번제나 친교 등 제사를 바치는 축제의 날이었다.스알디엘은 598년 첫 번째 유배의 길에 오를 당시[2열왕24.8-17;25.2,7-30] 유다를 다스리던 마지막 임금 여호야긴[예레28.4에서는 여고니야라고도 부른다]의 조카이다.따라서 쯔루바벨은 다윗 왕조의 왕손이었다.페르시야 중앙 정부는 유다지방의 통치권을 그에게 위임하였다.4절-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왕궁처럼 나무로 아름담게 꾸민 것을 말한다[1열왕6.9;7.3,7 예레22.14].2장1절-7째달 21일은 520년 10월 중순[대략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사이이다]에 해당한다.성전에서 거대한 의식이 거행되던 초막 축제의 마지막 날이다[레23.36 요한7.37].6-7절-[에스라,느헤미야서와 비교하라].10절-12월 중순[대략 11중순-12월 중순사이]을 일컫는다.12절-거룩하게 바쳐진 고기는 제사에서 제물로 바쳐진 짐승의 고기로서 부정하게 남용되는 것을 막기위하여 의식상의 규정에 따라 처리된다.성실한 사람은 집으로 가져가서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레19.5-8].


[스가랴,말라기서 성경주해] 選 성경주해

카일 & 델리취

스가랴

1장1절-스가랴[즈카리야]는 하나님의 기억 또는 하나님이 아심이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억하신 자'란 구약성서에서 흔히 나오는 이름이다.4장7절-아짜는 '...을 가져오는 것' 다시 말하면 그것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짓는 것 즉 성전안에 적당한 장소에 그것을 놓는 일 이러한 단어가 스룹바벨이 시작하였던 성전 건축의 마무리 작업에 해당된다는 것은 9절에 의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10절-납달린 돌이 아니라 납으로 만든 에브헨 즉 추연추이다.9장1절-하드락의 땅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나 나라에 대한 적대적인 땅을 나타내고 메데-바사의 상징적인 수식어에 불과하다.2-4절-다메섹과 하맛은 수리아를 상징한다....그곳을 이사야23.4에서 '바다의 보장[요새,성채]'이라고 하였다.왜냐하면 넓이는 매우 적다 할지라도 그것의 높이가 115피트 되는 성벽에 의해서 에워싸 있었고 강력한 요새여서 살마네셀도 5년동안 그곳을 포위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느부갓네살은 13년간 포위했지만 그곳을 정복할 수 없었다는 것이 자명하다.[알렉산더가 이 성을 점령하기까지 두로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호리쉬는 그 소유를 옮기는 것 즉 주민을 옮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다음 절이 그것은 두로의 주민이 아니고 목적어로 생각되는 성읍자체를 제시하기 때문이다...바다에서 권세를 치는 것이고 '그 성채'를 치는 것이 아니다.왜냐하면 '권세'는 요새에 사용될 때에 성벽이나 흙벽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외곽성을 포함한 해자를 의미하고[사26.1 에2.8].그리고 이러한 것은 섬 두로에 적용되지 않는다.더군다나 '권세'는 이곳에서 겔28.4.5에서 나온 것보다 다른 의미를 생각할 수 없다.스가랴는 그 내용을 따른다.그곳에서 이 단어는 두로가 전쟁이나 군사력에 의할 뿐 아니라 그솟의 좋은 위치와 인위적인 요새 그리고 방어하기 위한 풍성한 자원에서 있는 힘이 아니고 그 지혜로 그것을 얻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러한 것이 바다에서 강타된다.왜냐하면 두로 자체가 바다 속에 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그 성읍은 불로써 멸망하게 된다. 5-7절-시실에서 중요한 전쟁을 치룬 후에 알렉산더는 그 군대중 일부분을 팔매니오에 의해 다메섹에 보내어서 코엘레-수리아의 이 수도를 정복하게 하였다.이 원정에서 하맛 역시 정복되었고 종속되었다.알렉산더 자신은 시실리에서 직접 베니기야로 행군하였다. 거기에서 시돈과 다른 베니기아 성읍들이 자발적으로 그에게 항복을 하였다.그리고 두로만이 그 자신의 안전에서 확신을 갖고 진지하게 저항을 하였고 7개월의 포위 후에 정복당했으며 그가 광풍으로 이러한 요새화된 성읍을 정복하는데 성공한 것은 매우 놀라운 업적이었다...가사의 요새홛니 성읍 역시 장기간 저항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군세에 따라 정복당하였다....이러한 것은 이스라엘 영내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서서히 개별적인 족속으로써 사라지고 그들의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은 자를 인정한는 사회에 들어올 때에 이루어지게 되었다.9절-시온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는 것은 평강의 상징이 아니고 탈무드 학자들이 그것을 해석한대로 겸비의 상징이라는 설명에 만족해야 한다.'왜냐하면 나귀가 말보다 더 평화스러운 짐승이 아니고 더욱 더 심술이 사나운 짐승이기 때문이다'.[유다 마카베오,요나단,시몬은 나귀를 타지 않았다.이 예언을 알고 있었다면 더욱 타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예수님은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기 위하여 나귀를 타셨다]13절-시온의 자식들은 유다와 에브라임 즉 야완에서 노예로 살고 있는 시온사람들이 아니고 갈라지지 아니한 이스라엘이다.야완의 자식들은 세상나라로서 헬라인 즉 헬라-마게도냐 나라다[단8.21]. 10장3절-목자들 그리고 앞서가는 염소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없다.앗투님 역시 사 14.9절에서와 같이 지도자를 의미한다.4절-사 28.16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는 모퉁이 돌이 나오고 그 위에 모든 건물이 단단하게 세워지게 되고 안전하게 집을 지을 수 있다.이것은 유다가 받게 된 단단하고 안전한 기초에 대한 적절한 상징이다.여기에 야데드 즉 말뚝이 부연되었다.이 상징은 동양집의 배열에서 설명된다.그곳 집에는 안벽은 집을 기둥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거대한 못이나 기둥을 사용하였다.그러므로 기둥은 전체 정치적 여건의 지지나 지탱에 대한 적절한 상징도 사22.23에서는 사람에게 사용되었다.전쟁용 화살은 제유법적으로 전쟁의 경지와 군사력을 나타낸다...밈멘누[그에게서]는 유다에 해당돼야 하고....[권세 잡은 자]는 이곳에서 학대자 또는 폭군의 예속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학대의 의미가 언약백성이 아니고 그 원수에게 해당된다.7절-유다와 같이 에브라임은 영웅이 되고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겁게 된다[시78.65,66].싸움가운데서 이러한 즐거움을 자손이 보게 되고 결과적으로 존귀하게 된다.이러한 것은 마지막 기쁨이 된다.11절-고해.선지자 마음속에 떠올랐던 사실 즉 모세 치하에서 이스라엘이 홍해에 갇혀 있어서 저희들은 자신들이 죽은 줄로 생각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출14.10이하].12절-에브라임에 대한 약속은 저희가 여호와 안에서 견고해지고 그분의 이름의 능력안에서 행하게 된다는 일반적인 사상으로 끝을 맺는다.11장2절-[일반적으로는 전나무로 보나 IBD는 잣나무가 아니라 노간주 나무의 일종으로 본다].12장11-14절-선한 왕 요시야의 죽음에서 하다드 림몬에서 이스라엘에게 임한 재난에 대한 애곡이다.그 왕은 대하35.22이하에 의하면 므깃도 골짜기에서 치명상을 입었었다.따라서 그는 곧 생명을 잃었다.유다의 모든 왕중에서 가장 경건한 이 왕의 죽음은 백성들 특히 그 백성의 의인들에 의하여 애곡되었다.너무나 슬퍼하였기에 선지자 예레미야도 그 죽음을 애곡하는 슬픈 시를 썼을 뿐만 아니라 남녀 등 다른 노래하는 자들도 장송가로 그들을 애곡하였다.이러한 것은 슬픈 노래의 편집에 보존되었고 포로 후 오랫동안 이스라엘에서 간주되었다[대하35.25].13장6절-그의 손 사이의 매맞은 흔적이 드러난다....두 팔 사이에 라는 표현은 손바닥과 그 손이 팔에 연관된 것을 의미한다는 내용외의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그가 단순히 그 표시는 그가 사랑하는 부모나 다른 사랑하는 친척 집에서 어렸을 때 그가 받은 징계로 남은 상처같이 가장한다.8절-[11장-14장까지는 일단 다니엘 9장21-27절로 풀어야 한다].14장2절-데오도렛,제롬,그리고 다른 학자들이 생각한대로 로마인에 의해 예루살렘의 멸망에 해당되지 아니하였음이 분명하다.5절-야찰은 시릴이 언급한대로 감람산 동편으로 생각하게 된다.11절-출발점은 베냐민의 문 즉 북쪽 성벽에 있는 문이다.그것을 통해서 베냐민과 에브라임으로 가는 길이 열려있다.따라서 의심할 여지없이 그곳은 왕하14.13 그리고 느8.16에서 언급된 에브라임의 성문과 같다...모퉁이문은 [사알 합판린은 의심할 여지없이 왕하 14.13과 렘31.38에서의 사알 합핀나와 같다] 북쪽 성의 서쪽 모퉁이에 있었다. 첫 문은 느3.6과 12.39에서 옛문과 같다고 생각된다.그리고 이곳은 성의 북동쪽 모퉁이에 있었다.한난엘 망대는 [렘31.38 느3.1,12.39] 성의 동북쪽 모퉁이에 서 있었다[느3.1].왕의 포도주 짜는 곳은 의심할 여지없이 성의 남쪽에 있는 왕의 동산아래 있었다[느3.15].

말라기

1장3절-시랑,쟈칼jackal.2장16절-'자기의 옷을 죄로 덮고' 또는'죄가 자기의 옷을 벗고'라고 번역할 수가 있다.그 의미는 두 경우에서 같다.다시말하면 악함은 그러한 사람에게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상징적 표현은 옷이 사람의 속부분을 나타내고 그러므로 더러운 옷은 마음의 부정을 상징한다는 생각에서 설명될 수가 있다[슥3.4 사64.5 계3.4,7.4].16절-기념책에 기록하는 것은 바샤인들의 습관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저희의 공적의 내용을 책에 적어 왕이 잘 간수하는 모습이다.따라서 그 사람들은 언젠가 그 일에 대해 상급을 받을 수 있다[에6.1].그러나 그러한 것은 훨씬 오래된 생각 즉 의인의 이름과 행위가 하나님 앞에 있는 책에 기록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시56.9 단7.10].4장2절-해의 날개는 해 주변의 광선이다.그리고 신속하게 나가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은 아니다.햇빛이 식물과 생물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땅위에 빛과 따뜻함을 제공하는 것 같이 의의 해도 다친 곳과 상처를 고치게 하신다.따라서 저희가 구덩이와 동굴에서 나오게 된다.

카톨릭 새번역

즈가리야

1장1절-다리우스 제2년 8째달은 520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의 시기을 말한다.에즈라 5,1 및 6.14을 참조할 때 베레기야의 아들은 첨가된 것으로 여겨진다.70인역은 '바라키야의 아들 앗도의 아들 즈가리야에게'로 읽었다.'즈가리야'는 [주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이또 사제의 아들이었으나[에즈5.1,6.14;느헤12.16] 여기서는 베레기야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여베레키야의 아들 즈가리야[이사8.2]를 여호야다의 아들 즈가리야[2역대24.20-22]와 혼동한 서기의 잘못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이 혼동은 마태23.35에서도 지속된다.7절-519년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의 시기를 말한다.8절-도금양나무는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발견되는 상록수로서 예배 때 사용되었고[느헤8.15 이사41.19,55.15] 후에는 메시야의 번성과 연결된다. 70인역은 '그리고 얼룩말들'을 덧붙였다[6.3,7].6.3의 4째말은 '얼룩진 잿빛'으로 표현하여 동의어를 사용하고 있다.12절-70년이라는 숫자는 예레25.11,29.10에서처럼 총괄적으로 긴 기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2역대36.21을 출발점으로 해서 이 숫자는 예배가 중단된 정확한 기간[585-515]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2장2절-유배로 흩어진 것을 말한다.4 뿔은 이 세상의 막강한 나라들 곧 총괄적으로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대표한다[다니7.19-27].3절-대장장이로 옮긴 하라스는 보석공 [탈출28.11] 목수[1열왕12.12] 등을 뜻하며 주님의 파멸의 도구 대행자이다[이사54.16-17].8절-젊은이는 5절에 측량줄을 가지고 있는 남자를 말한다.10절-북쪽 땅은 바빌론을 일컫는다[즈가6.6,8 예레3.18,46.20].성전주변으로 돌아와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하여 바빌론에서 어서 도망쳐 나오라는 것이다.3장2절-유배로 사로잡혀 갔다 돌아온 여호수아를 말한다.바빌론 사람에 의해 여호수아의 아버지는 유배로 사로잡혀 갔고[하바1.1 1역대5.40-41] 그의 할아버지는 처형되었으나[2열왕25.18-21] 여호수아는 돌아왔다.3절-더러운은 이곳과 4절에서만 나타난다.3-4절을 참조할 때 더러운 옷은 사제와 백성 모두의 죄악을 뜻한다.7절-지금까지의 계약의 요구를 성실히 지킴으로써 사제들은 성전과 예배행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독점적인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유배 이전에 가끔 임금은 사제직을 정리하고[1열왕2.27] 예배 행위를 채계화시키거나 이행하기 위하여[1열왕8.62-22] 성전의 구조믈을 고치기 위하여[2열왕16.10-18;22.3-7] 개인적으로 간섭하였다.8절-예레23.5;33.15에서 빌려온 개념으로 메시야를 지칭하며 이사11.1-2과 연결된다.사용된 종이라는 개념은 이 인물이 수행할 메시야적 자질을 분명히 한다[이사49.5-6;52.13 하깨2.23].정화되고 제정비된 이후 사제직은 메시아 사건의 보증이 된다.여기서는 즈루빠벨을 말한다.9절-탈출28.36 및 39.30의 사제가 쓰는 터번처럼 사제의 옷에 고정되어 있으면서 그위에 히브리말 7글자로'주님께 성별된'[14.20]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귀중한 돌을 지칭하는 것 같다.이 경우에 7눈은 하느님께서 사제직과 백성을 허락하여 받아들이신다는 그분의 보호자와 같은 현존을 표현한다. 4장1절-'나와 말하던 그 천사가 다시와서 나를 깨우는데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과 같다'의 직역은 '나와 말하던 그 천사가 돌아와서 자기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사람처럼 나를 깨웠다'환시 처음부터 예언자는 직접 듣는 청중으로 등장한다.정말로 잠을 깨우는 것 이상으로 여기서는 하느님과의 통교를 강조하고 이 5번째 환시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3절-히브리말로 '그녀[기름 그릇]위에 그것의 등잔들 일곱 개 일곱'이지만 70인역을 참조하여 마지막 7을 삭제하고 그것의 등잔들을 등잔들로 옮겼다.여기서 말하는 등잔대는 우리에게 친숙한 형상인 로마에 있는 티투스황제의 개선문에 새겨진 형태인 7개의 가지로 구성된 등잔대가 아니다.이 등잔대의 특징은 기름을 담은 원형의 그릇을 받치고 있는 넓은 받침대이다.그 가장자리에는 7개의 주둥이가 불이 붙어 있는 심지를 받치고 있다.이절은 탈출25.31-40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10절에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7개의 등잔을 갖고 있는 등잔대는 온 세상 안에 거주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상징한다.[묵시5.6과 비교하라].5장2절-'암마'는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를 가르키기 때문에 한 암마는 보통으로 45-49센티미터가 된다[에제40.5].솔로몬이 지은 첫번째 현관 면적과 같다[1열왕6.3].저주의 두루마기는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죄때문에 성소에 들어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시편15장,24.3-5] 모두 제거한다.5절-에바는 곡물과 같은 고체로 된 단단한 물건의 분량이 되는 데 쓰이는 그릇 및 분량을 헤아리는 단위이다.한 에바는 대략 45리터에 해당한다.11절-에바에 갇혀 있는 여인들을 위한 집[신전]을 짓는 것을 말한다...시날땅은 거대한 제국 이교문명과 우상숭배지의 중심지를 지칭하는 상징이다[창세10.10,11.2 이사11.11 신명1.2] 70인역과 시리아말역 맟 타르굼은 이 상징을 바빌론으로 명시하여 옮기기도 한다....악은 거룩한 땅에서 멀리 추방되어 자기 나라인 악의 제국 중심에서 자리잡고 살 것이다.6장6절-붉은 말들이 끄는 병거에 대한 언급이 없다.사고로 이 부분이 소실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검은 말들이 끄는 병거와 관련된 문장을 다시 구성하기가 힘들다.우리는 다른 번역본들을 참고하여'검은 말들이 끄는 병거는...'으로 옮겼다.BHS의 제안대로 이 절의 첯 낱말 곧 '아셀-바흐'[그안에 있는] 다음에 '붉은 말들이 끄는 병거는 동쪽 땅으로 가고 그리고'를 첨가할 수 있겠다.'희말들이 끄는 병거는 서쪽 땅으로 떠나고'히브리말로는 '그들의 뒤를'이지만 BHS의 제안대로'서쪽[또는 바다]땅으로'로 옮겼다.또한 이사9.11에서'~의 뒤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말'아호르'는 서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셈족이 일출지점을 기점으로 하여 앞은 동쪽으로 뒤는 서쪽으로 방향을 정하였기 때문이다.8절-북쪽 땅은 바빌론을 지칭한다.이어지는 단락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은 성전을 재건하도록 유배시킨 사람들을 자극하면서 그들을 재기하여 다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10절-틀림없이 587년에 사로잡혀 갔던 예레미야의 친구인 사제 스바니야를 말한다[2열왕25.18 예레29.25,29;37.3].그의 아들 요시아는 예루살렘애서 귀환하는 포로들을 맞아 들이면서 수를 헤아리던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2절-최초의 본문에서는 여호수아 대신에 쯔루빠벨의 이름이 이곳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매우 신방성이 있다.그는 다윗의 왕손으로서 메사아의 자질을 갖추고 있고[3.8 하깨2.23] 또한 성전 건축과 부흥에서 일정한 역활을 수행하였기 때문에[13절 참조] 여호수아보다는 전후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그러므로 그러한 이유에서 '여호수아의 아들 여호수아 대사제'를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로 옮기기도 한다.14절-예언자의 왕관은 여호수아[그보다는 즈루빠벨]를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 후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관대한 행동과 그들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받은 환대를 기억하기 위하여 성전에 보관돨 것이다.15절-'디아스포라'곧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바빌론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도움을 기다리던 예루살렘 공동체를 도와 성전 건축에 박차를 기할 것이다.7장1절-518년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를 말한다.2절-베델-사레셀은 '하느님을 모신 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름으로 이와 유사한 내용이 바빌론과 엘레판틴의 텍스트들에서 발견된다.베델-사레셀은 세스바살과 즈루빠벨과 같은 공적인 관직을 가진 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또한 예레39.3,13에서 이 용어들은 '고관'의 직무를 지칭하고 있고 시리아말역에서 이 용어가 다시 나타난다.그러나 직역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예루살렘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베델이 이렇게 중요한 사절을 파견할 필요가 있었겠는지 의문이 제기된다.이제 문제의 폭을 좁혀 좀 더 직접적으로 사로잡혀 간 사람들을 생각할 수가 있다.성전 재 건축 공사를 시작한 경우 아직도 추도하는 금식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사? 따라서 사절이 바빌론에서 파견되어 정확하게 문제를 야기시킨 5째달 금식이 끝난 지 3달 반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5절-5째 달은 예루살레 함락을 애도하고 7째 달은 유다 총독 그달리야 살해를 애도하기 위해 금식을 해왔다.18절-예언자는 7.3,5에서 언급한 금식에서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뚫은 것을 기념하고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기 의해 하던 4째달과 10째달의 금식을 첨가한다[2열왕25.1-4 예레39.2,52.4-7].22절-이방인들이 합세하여 선택된 백성의 수효가 많아지리라는 약속이다.9장1절-하드락은 시리아 북쪽에 있는 라아스 주의 중심 도시이다.6절-히브리말 '암젤'은 유다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곧 피가 섞인 혼혈민족을 지칭한다.유다 법에 의하면 간음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자식도 이 개념에 포함되며 신명23.3은 그들을 공동체에서 쫓아내라고 명하고 있다.필리스틴 사람들은 피가 섞여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異 민족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다.7절-의식상으로 피를 빼지 않고 피째 먹은 고기[창9.4 레위19.26 에제18.6;33.25]와 우상과 '역겨운 것들 [곧 우상들]'[이사66.3]에게 바친 고기를 말하고 있다. 필리스틴인들을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을 때 죽이지 않고 살려준 여부스인들[2사무5.6-9]과 유다와 벤야민 자손들이 몰아내지 못하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여부스인들[여호15.63 판관1.21]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14절-남쪽의 회오리바람을 한낮[정오]의 회오리바람 또는 거센 마파람으로 옮기기도 한다.또한 히브리말 테만은 바람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욥9.9;39.26] 폭풍으로도 옮길 수 있을 것이다.오래된 여러 본문은 하느님께서 시나이산과 관련해 남쪽에서 오시는 것으로 묘사한다[신명33.2 판관5.4 하바3.3-4 시편18.8-15] 반면 훨씬 후대의 본문들은 하느님의 종말론적 도래가 북쪽에서 시작될 것임을 단언하는데 이것은 북쪽에 신들의 처소가 있다고 생각하는 페니키아 신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이사14.13 에제1.4;28.14].15절-히브리말로 '무릿매들'이지만 무릿매질하는 자들로 고쳐 읽었다.BHS는'그들을 먹어 치우고를 그들을 파멸시키고로 옮긴 70인역을 참고하여 그들을 정복하고로 읽을 것을 권고한다.10장4절-모퉁이돌은 총회에 모인 전체 백성의 우두머리들을 지칭한다[판관20.2 1사무14.38] '말뚝'은 이사22.23에서처럼 은유적으로 우두머리 곧 왕궁의 주인인 임금을 의미할 수 있다.결정적인 해방의 순간에 선택된 백성은 자기들의 우두머리들로부터 통치를 받을 것이다.11장2절-[IBD는 방백나무가 아니라 노간주 나무의 일종으로 본다.참나무는 상수리나무로 본다].12절-탈출21.32에 따라 종을 속전하는 가격이 30세겔이기 때문에 이것은 조롱하는 품삮이며 우두머리들이 하느님을 비웃는 것이기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8절-독자들에게 잘 알여진 3명의 대사제[3명의 목자]를 암시하는 것 같으며 그들의 급작스러운 해고는 악한 목자들의 은유안에서 이미 마련된 처벌로 해석되었다.이어지는 부분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들에 대한 언급은 부차적으로 첨가된 것일수도 있다.14절-이 형제관계의 파괴는 328년경 게리짐산에 분리해서 성전을 지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공동체와 사마리아 공동체가 완전히 갈라진 것을 의미할 수 있다.이 파괴는 하느님의 옛 백성 구성원 모두의 결합과 통일을 염원하는 꿈에 그 희망을 두고 있다[호세2.1-2 에제37.15-28 예레3.18].12장7절-수도 예루살렘과 유다 평원사이에 어떤 확실한 대조와 대립이 이따금 존재해야 할 것이다.저자는 예루살렘이 겸손해 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것을 활용하고 있다.우선적으로 하느님께서 무방비 상태에 있는 평원을 구원하시고 그 다음에 튼튼하게 요새화된 수도 예루살렘을 구원하실 것이다.14절-각 부족의 가족과 그들의 여자들을 따로 구별하여 소개하는 것은 틀림없이 전래의식의 배열과 관련된다.14장10절-게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유다와 벤야민사이에 위치한다[1열왕 15.22 2열왕23.8].람몬은 유다의 남쪽 변방쪽으로 브엘세바 행정구역안에 위치하고 있다[여호15.32,19.17 느헤11.29].그러므로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에 이르기까지는 유다 왕국의 북쪽 국경에서 남쪽 국경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며 옛 유다 왕국 전체가 평지로 바뀔 것임을 뜻한다.

말라기

1장1절-말라기는 나의 사자를 뜻한다.이 예언서에서 발견되는 여러 표지들을 종합할 때 말라기 예언자의 활동시기를 480/46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말라기서에서 신명기의 문학적 배경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집필연대를 에즈라의 '사제법전'공포 이전 곧 460년경으로 보는 주장이 설득력있어 보인다.2장11절-성소로 번역한 히브리말 코데스는 거룩한 것[거룩한 장소 또는 거룩함]도 뜻하기 때문에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그분의 성소를 그분께서 바라시는 거룩한 것으로 옮기기도 하며 특히 하느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결혼제도를 뜻할 수도 있다.또한 BHS의 제안대로 사랑하시는을 그를 사랑하시는으로 고쳐 읽어 그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성소로도 옮기기도 한다.

성서주석30-차준희 & 유은종

스가랴

9장1절-'하드락'은 다메섹 북쪽에 위치한 수리아와 아람지역의 도시이다.'다메섹'은 앗수르에 멸망 할 때까지 수리아의 수로였으며 페르시아제국시대에는 유다지역을 다스리는 페르시아 총독이 거주하는 도시였다.10장4절-말뚝인 '야테드'는'천막의 말뚝'[삿4.21,5.26 욥4.21]'성막의 말뚝'[출27.19,35.18,38.20,31]'성벽의 말뚝'[사22.23,25]을 의미한다.이사야33.20,54.2에서 시온 성 예루살렘은 말뚝이 뽑히지 않을 장막의 이미지로 나온다.말뚝의 이미지는 이스라엘이라는 장막을 구성하는 튼튼한 지도력 예루살렘 성을 튼튼하게 지켜주는 지도력을 의미한다.11장17절-어떤 신체기관이 '오른쪽'과 결합될 때는 그 신체기관의 능력이 최고로 발휘된다는 의미이다.따라서 '오른쪽 눈'은 보고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기관이다...팔이 마른다는 표현의 의미는 열왕기 상13.4에서 하나님의 사람의 선포로 여로보암 왕이 저주받아 편 손이 말라 다시 들지 못했다는 기사에서 찿을 수 있다....팔이 말라 버리고 눈이 멀게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12장12-14절-'따로'의 히브리어 '레밧'은 '혼자,따로,각자'등을 의미한다.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각자 따로 자발적으로 나와서 애통에 참여한다는 것이다....첫번째와 두번째 가문은 왕의 가문이요 세번째와 네번째는 제사장 가문이다.따라서 포로 후기 유다 사회를 구성하였던 가장 중요한 가문들이 먼저 이 애통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이 네 가문에 이어 나머지 가문들도 따로 참여함으로써 12절의'온땅의 족속'이 참여하게 됨을 최종적으로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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