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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0일 토요일

EPHESIANS PHILIPPIANS,COLOSSIANS,PHILEMON,GOOD NEWS

페데리꼬 바르바로

에페소서

우리들은 에페소서,골로사이서 그리고 필레몬서라는 차례를 지지하고 그러나 거의 같은 때인 62년 가을에 기술되었다고 추정한다.더욱 큰 신뢰를 보여 옥중생활의 끝을 알려 주고 있다고 여겨지는 필립비서는 63년 봄에 쓴 편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1장4절-천지창조이전에,희랍어로는 before the foundation(기초,씨뿌림,임신,창설) of the world. 9절-심오한 뜻:신비,200주년;비밀,개역한글.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개역한글. 2장1절-허공:대기권,200주년;공중,한글개역."허공을 다스리는 세력"이라는 말은 허공에 자신의 세력을 나타내기 때문에(성 예로니모,쁘라,보스떼) 또 허공을 돌아다니는 악한 세력의 머리(베르셀,구나벤바우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3장11절-작정하신:마련하신,200주년;예정하신,개역한글....영원한 계획:희랍어 the purpose of the ages.4장6절-만물을 꿰뚫어 계시며:만유를 통일하시고,개역한글;모든 이를 통하여,200주년.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섭리에 따라 우리를 당신의 계획도구로 쓰신다.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있는 이웃에 대한 크나 큰 존경과 자애심이나 이기심때문에 하느님의 이 섭리를 피하려고 하는 위험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7-9절-바울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높은 곳에서 사람에게 그 선물을 분배하고 계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시편 68편 18절을 인용하고 있다.역사적으로 말하면 이 시편은 승리한 후에 개선행렬을 짓고 성궤를 시온산으로 장엄하게 운반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포로들은 성궤뒤를 따르고 풍부한 전리품은 주님께 봉헌된다.바울로는 70인역에 따라 인용하고 있다.그러나 히브리말과 70인역에서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으시는 이는 하느님이시며 편지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다.얼핏 보아 텍스트에서 벗어난 것같이 느껴지는 이 해석은 오랜 전통에 근거를 두고 하는 것이다.시편에 관한 따르꿈은 이런 말을 모세에게 응용하고 있다."당신은 높은 데에 올라가 율법을 배우고 그리고 이것을 선물로서 사람에게 주었다" 또 타르꿈의 다른 곳에서는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당신은 사람을 위하여 선물을 받았다" 곧 타르꿈에 들어가기 까지에는 이미 유행하고 있던 번역이나 해석이 있었는데 바울로는 이에 따르고 있었다.성궤와 함께 시온산에 운반된 전리품은 승리의 권리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것이었으나 하느님께서는 적어도 그 중의 어느 부분은 백성에게 나누어 주신다..."사로잡힌 자들을 데리거"사로잡은 이란 말은 바울로가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이후 다른 곳에 응용되지 않았다.완전한 승리의 개념을 주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수사와 같아서 그 사로잡은 사람이 누구를 가르키려 했던가 물을 필요도 없다.그렇지만 이것은 여러가지로 시도되었다.금구 성 요한은 "죄,악마,죽음을 가리켰다"고 하며 이것들은 모두 패배한 존재였다.성 예로니모,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가 임보(고성소,개신교는 중간상태라고 한다)에서 구해내신 의인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하였다.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 가셨다는 말은 그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것을 전제하고 자신을 낮추셨기 때문에 그분은 승리의 영광을 받으셨다. 곧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승천이 뚜렷이 표명되고 있다.예수님게서는 "땅 아래 세계에 내려가셨다."어떤 저자들은 땅 아래 세계라 한 곳은 임보 곧 고성소를 가리키고 있다고 하였다.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임보 곧 하늘에 들어가기 전에 의인들이 살던 집으로 내려 가셨다는 교의면의 중요한 텍스트가 있는 셈이 된다.그러나 아래의 세계라는 말은 하늘에 비하면 낮은 데에 있는 이 세상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바울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물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그리고 스스로 낮추신 데에 대한 보상으로 올라 가셨던 것이다.낮은 곳에 내려가셧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낮추심을 가르키기 위한 말이기도 하지만 만일 이것을 고성소라고 해석한다면 이미 자기비하가 아니고 오히려 구세주의 승리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그런 까닭에 옛 해석자 까에따누스,베라르미누스,그리고 현대에는 구나벤 바우엘,휴비 등이 이 텍스트는 고성소에 내려 가셧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지은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5장 3-4절-추행:부정,200주년;더러운 것,개역한글.점잖지 못한농담:상스러운 말,200주년;희롱의 말,개역한글.17절-기회는 엄밀히 말해서 형편이 좋은 기회라는 뜻이다.그리고 잘 살린다는 동사는 그리스말의 본래의 뜻으로는 시장에서 산다.기워 갚는다는 것이다.곧 좋은 기회라고 한 때는 값을 치루고 사야 하는 물건과 같이 보고 있다.하느님의 의향에서 보면 우리의 한 평생 순간 순간마다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덕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하늘을 얻기 위하여 받는 것이다.잘 이용된 순간마다 영원과 관련되어 있다.그리고 시간은 잃는 것이 아니고 벌어 들이는 것이다."그들이 선행을 하기 위하여 시간을 쓰는 것은 그것을 사는 것이다(성 예로니모).6장16절-"믿음의 방패" 길이 120센치,폭 75센치의 길고 넓은 온 몸을 가려 지켜주는 긴 방패를 말한다.어떠한 때는 이것을 항상 지니고 다녀야만 한다."그 방패로는 악마가 쏘는 불화살을 막아 꺼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당시의 싸움터에는 끝에 유황과 역청을 붙여 거기에 불을 당긴 화살을 던지는 싸움이 흔하였다.그리스도인의 강한 믿음은 영원한 진리를 가지고 모든 유혹에 저항하고 그 맹렬한 불길을 꺼버려야 할 것이다.

필립비서

1장15절-이와 달리 다른 어떤 사람들이 바울로를 시기하고 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곧 자기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믿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선교에 성공함으로써 바울로를 깍아 내리고 그렇게 하여 그의 쇠사슬을 다시 무겁게 하려고 까지 생각하였다.2장6절-본질:모습,200주년;본체(또는 형체) 개역한글.그리스말 모르페(형,모습,형상) 이란 말은 철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문학에서 본성,본질이라는 뜻이 되어 있다. 3장2절-유다인은 곧잘 이방인을 개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바울로는 여기서 이 유다인 교사를 개라고 부른다.그들은 끊임없이 짖고 물려고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악한들"이라고 한 것은 복음에 봉사하기 보다는 복음을 변형하기 때문이다.그들의 할례는 아무런 영적인 효과가 없고 육체에 대한 하나의 상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골로사이서

2장8절-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 전해준 것이지: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개역한글.22절-"제멋대로의 예배"곧 천사들에 대한 제멋대로의 과장된 하느님께서 바라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거스르는 예배이며 또 여기서 "겸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순수한 의미로 말하는 겸손이 아니라 하느님밑에 있는 영에 대한 굴종인 것이다. 그들의 이 예배의 또 하나의 방향은 엄한 수행이다.그러나 이 수행은 몸을 괴롭히지만 육의 교만을 정복하기에는 힘이 없다.여기서 말하고 있는 육욕은 육의 사욕이라기보다도 육적인 인간,곧 하느님의 정신으로 인도되지 않은 인간의 교만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또 하나의 해석에서는 이같은 엄격함 자체가 교만의 자극으로 보고 있다.이와달리 참된 신심 수행은 먼저 육의 교만을 굴복케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3장 18절-모질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괴롭게 하지 말라,개역한글. 21절-못 살게 굴지 마십시요,공동번역;들볶지 마십시요,카톨릭 새번역,200주년.;노엽게 하지 말찌니,개역개정./의기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공동번역:낙심할까 함이라,개역한글,개역개정.4장16절-라오디게아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에페소인에게 보낸 편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이 편지는 아시아주의 수도인 에페소에 먼저 보낸 것이고 여기에서 다른 교회로 전해야 할 편지였다.이 편지를 가지고 간 디키고는 에페소에 상륙해서 이것을 수신자인 에페소 교회에 건네 주었다.그러나 골로사이에 가기 전에 자신이 지나가는 길에 있던 라오디게아에 그 편지의 사본을 남긴 것으로 생각된다.그렇지 않으면 바울로가 자신이 권고하는 확실히 골로사이인에게 넘긴 이 편지가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고 어찌하여 없어지고 말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필레몬서

11절-"쓸모있는 사람"과"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두가지 말은 아마도 오네시모[이익이 되는 또는 유용한]라는 이름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사실 그렇다.이 이름은 "편리한 것,쓸모있는 것"이라는 뜻이 있다.지금까지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이제부터는 그 이름과 인물이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에베소서

4장7-9절-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으니"그러므로"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고 말한다[롬 12.5-6,베드로전서 4장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린도전서 12장7-11절에서는 여러가지 사역을 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유익하게 하려고" 여러가지로"성령의 나타남"을 주신 것이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인데 여기서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주어졌다....시편 68편 18절의 정복자에게 잡힌 수많은 포로들에 대해서 이 페쉐르[탈굼의 설명]에는 설명이 없으나 이 말은 적장의 달갑지 않은 지배에서 벗어난 정복자의 정당한 신하를 가르킨다기보다는 좀 더 자연스럽게 적군의 전쟁 포로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만일 그 많은 사로잡힌 자들이 기독론적 해석을 제공하였다면 골로새서 2장 15절의 정복당한 정세와 권세가 그 목적에 보다 잘 어울렸을 것이다]

빌립보서

3장2절-거기에서[1.15-18]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전하는 기독교 교사들,그리스도를 위하지만 바울을 반대하는 그 결과 시기와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을 묘사하였다.여기에서의 문제점은 기독교 복음의 왜곡,곧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완전성의 거부이다.이 문맥에서는[2-3,6-7절] 에서는 유대교인들을 뜻하는데, 이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으려면 육체의 할례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했으며,그들의 구원의 소망을 할레와 율법의 성취에 두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만 두지 않았다."개들"은 치욕과 경멸의 표현으로서,이 동물의 불결함과 파렴치함과 성가심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동방의 시가들을 헤메는 개떼들은 ,집도 주인도 없이,길거리의 쓰레기나 오물로 배를 채우며 서로 으르렁대며,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행동이 이 비유를 사용하게 된 이유이다".이 경멸의 표현 다음에 "행악하는 자들"이란 용어가 쓰였는데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순수한 교훈을 왜곡하며 곡해하려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가리킨다. 그들은 교회의 믿음을 세우기는 커녕 무너뜨리는 처사이다.그와 더불어 유대교인들이"할레"라는 말과 함께"손할례당"이란 표현으로 비웃음을 당한다.그들의 할례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육체를 절단하는 것이다.비록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지만,그들은 동시에 몸의 할례와 하나님 앞에서 의를 위한 그 가치를 자랑하면서도,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할례를 요구한다[행15.1을 참조].바울에게 그러한 행동은 육체의 무가치한 절단이며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부정하는 것이다[갈 5.2-6,고전 7.18-19 참조].



골로새서

2장8절-이방인과의 유사성을 가진 그 거짓된 가르침의 특징은 반드시 그 출처가 이방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그 특징들은 그 특징들은 [그 용어가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쓰일 경우] 밀의密儀 종교의 어떤 면과 흡사하다. 이 밀의 종교에서는 우주적인 위협,곧 적대적이며 달래기 어려운 힘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계에서 존재의 공포로부터 안전을 구했다.그 힘은 이 편지에서 스토이 케이아 곧"자연력"[elements 또는 elemental forces]으로 언급되어 있다[개역성경에서는"초등 학문"].그와 같은 힘에 의해 다스려지는 우주에서"인간은 존재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알아냈는데,그것은 인간이 그 힘에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숭배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다스리는 신에게 자신을 맡겨 스토이 케이아의 위협으로부터 그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마틴 디벨리우스가 말한 양자 택일 중에서,골로새 교인들은 전자를 택하고 싶어했고 반면에 바울은 후자 곧 그 우주적인 힘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승리로 그것을 다스리는 분으로 입증된 하늘의 주를믿는 믿음을 권하고 이있는 것 같다. 이교도들 가운데서 찿아볼 수 있는 비밀 의식의 양상과는 다른 특징들을 가지는 경향이 랍비적 유대교 내에 있었다.이 가운데는"메르카바 신비주의"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하늘의 병거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환상을 경험하기 위한 기술연마이다.이 환상은 에스겔이 그의 사역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본 것이다[겔1.26-28].거룩한 율법을 세심하게 지키는 것이 그런 경험에 필수적이었다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지만,자기 훈련에 대한 특별한 방법 역시 필수적이었다.메르카바 신비주의 문헌에는 천사들에게 중재역이 주어져 있다[이것은 골로새 이단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서 하나님에 대한 경험한 사람들이 영적 엘리트에게 속해 있다고 생각되거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불가피한 일이다[그러므로 바울은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가 하늘의 환상을 본 후에,"너무 자고하지"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곧 겸손하게 하는 고통을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다(고후12.7)].골로새 이단에서 초기 영지주의의 특징들이 흔히[그리고 아주 분명하게] 발견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메르카바 신비주의에 대한 그 주된 전거典據 文獻이 그것을"유대인 영지주의"의 한 형태로 말한 사실을 주시하는 것이 적절하다.브루기아의 제설諸說 혼합주의적 분위기에서도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가지 노스틱 사상 배후에 깔려 있는 가설,곧 영과 물질은 서로 정반대이므로 지고의 하나님과 창조된 우주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은 생각할 수 없다는 가설에 노출되어 있었다.만일 이 가설이 골로새 이단의 배후에 깔려 있었다면 그것을 반박하는 데 어느 정도 역점을 두었다는 것은 보다 쉽게 이해가 된다.그와 같은 가설에 근거한 사상 체계는 복음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었다.만일 하나님과 세상 물질이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다면 이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물일 수가 없다.하나님의 지혜가 한 "육체"[골1.22]에 화육化肉되었다는 것,즉 하나님의 아들이"여자에게서 태어났다"는 것[갈4.4]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지상에서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통도 직접적일 수도 없고 일련의 중재자들을 통해서 행해져야 한다.골로새 이단이 노스틱 가정의 이 모든 논리적 결론을 끌어내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과 인간 사상사이에 일련의 중재들을 생각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그 중재자들을 통해서 상호 교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성서의 창조론에 관한 암시적 부정에 대하여 바울은 이미 우주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겨 났다고 주장하였다.보다 고차원적인 지혜라는 매혹적인 제의에 대하여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하나님과 우리 세계 사이에 일정하지 않은 일련의 중재자들이 있다고 믿는 신앙에 대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신성의 모든 충만에 대한 인격적 체현體現으로 제시한다.이 중재자들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접근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이라는 약간의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대하여,바울은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께 정복당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사람들의 충성을 이제 요구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골로새 교안들이 받아들이라고 촉구를 받았던 가르침 전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쓸모없게 만드신 낡은 생각과 생활을 다시 닦는 격이었다.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그와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에게서 전해 내려온[6절] 유전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세상의 초등학문[스토이 케이아]"과 일치하는 가르침이었다.[KJV와 ARV에 "초보"로 번역되었고 RSV와 NEB에"기초정신"으로 번역되었으며 NIV에"기본원리"로 번역되어 있는] 이 스토이 케이아란 말은 바울의 두 서신서에서 쓰이고 있는데,본서외에 다른 하나는 갈라디아서이다.갈라디아서 4.3,9에는 스토이 케이아가 "본래 신이 아닌 존재들"을 섬기는 데 있어서 율법 아래의 유대인의 생활과 이방인 생활을 다스린 힘으로 되어 있다[개역 성경에서는 여기서도 "초등학문"으로 번역되었음].갈라디아 개종자들이 옛날로 되돌아가 스토이 케이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유대인의 성력을 지킨 데서 나타나 있다:"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갈4.10].그들의 월력 구분은 천체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스토이 케이아가 유성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암시도 될 수 있다.[이와 비슷한 월력을 지키는 일을 골로새 이단이 요구한 사실은 골로새서 2.16에서 추론될 수 있다.]다시금 갈라디아서의 논술은 많은 주석가들에게,이 편지에 쓰인 스토이 케이아가 율법이 주어질 때 중보 역활을 한 천사들[갈3.19]과[동일한 것이 아니라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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