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영화세상

2010년 4월 10일 토요일

JOHN 1,2,3 GOOD NEWS

페데리꼬 바르바로

요한1서

이 첫째편지는 묵시록의 저술(90-96년)과 요한의 죽음사이의 기간으로 잡아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5장16절-이"죽을 죄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죄인은 벌써 은총의 생명을 잃고 있기 때문에 대죄를 짓고 있으나 그러나 어떤 대죄라도 여기서 말하는 "죽을 죄"는 아닌 것 같다."옳지 못한 죄는 모두 죄입니다.그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이르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곧 여기서 말하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죄란 성화 은총을 잃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잃는 것을 말한다.곧 생명의 샘이신 하느님의 아들과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며 벌써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으며 세례를 받아 일단 벗어난 죽음의 상태로 되돌아간(3.14;유다 1.12) 가르침을 버린 그리스도의 적을 말한다. 21절-우상이란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대상이다.사람의 행,불행을 좌우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시다.그러나 그 행,불행이 하느님 아닌 어떤 존재에게 달려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우상숭배자가 된다.현대 사회를 이른바 황금만능주의,물신주의라고도 하지만 그 숭배자가 얼마나 많은가! 사도 요한의 경고는 현대인에게 뜻있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요한2서

1장9절-먼저 사도들이 전통의 가르침을 지켜야 할 것이다.더 완전한 계시라든가 더 뛰어난 그노시스때문이라고 구실로 그 가르침에 앞서 나가려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 자"이다. 곧 하느님과의 일치를 잃었음을 나타낸다.

요한3서

이 가이오가 사도행전이나 바울로의 편지에 나오는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가이오라는 이름은 그 당시 흔한 이름이었다.그 대신 "사도령使徒令"이 사도 요한은 가이오를 베르가모의 주교로 삼고 그리고 데메드리오는 필라델피아의 주교였다고 말할 때 확실히 이 가이오를 암시하고 있다.그러나 이 공문서는 그렇게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9절-그리스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디오드레페는 수석만을 노리는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다"가 된다.여기서 디오드레페가 주교의 자리를 노리다가 그런 자격이 없다고 거절달했거나 혹은 주교였는데 어머니의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실제로 디오드레페의 이 행동에서 보면 그는 이미 주교였던 것 같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전하듯이 에페소 가까운 도시에 요한이 세운 주교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유세비우스 교회사)

유다서

기술연대는 유다의 편지를 앞세우든가 혹은 베드로의 둘째편지를 앞세우든가 함으로서 62-64년 혹은 64-70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이 편지를 어디에서 쎃는지 명백하지 않다.그러나 교회에 대한 방문을 가까운 시일에 예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 편지받은 교회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서 썼다고 생각할 수 있다.8절-이레네오와 에피파네오에 다르면 이런 사람들은 방종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단자이며 천사들에게 그런 타락한 행위가 있었다는 구실 밑에 자기네의 수호자처럼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위에서 말한 방종한 생활은 특히 2세기 전반의 이단자 가르포쿠라데스에게 돌리고 이 사람의 그노시스는 시몬이라든가 니콜라이파의 오류 등과 연결되고 있다.그렇다고 한다면 이 편지가 말하는 음행자는 2세기의 방종한 그노시스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어쨋거나 이러한 사람들의 방종한 태도는 세계의 질서와 도덕의 파수꾼인(고전11.10) 천사들에 대한 신자들의 존경과 대립한다.9절-대천사 미카엘도 타락한 천사인 악마와 "논쟁할 대""모욕적인 언사로 단죄하지 않고"곧 조심스러움을 보여 주었다.그렇다면 앞서 든 천사들에 대한 음행자들의 태도는 더욱 나쁘다. 16절-위의 인용은 에녹서 1장 9절이다.적어도 해석자는 거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국제성서주석

요한의 첫째 편지

5장16절-레위기4.2이하,5.1이하,민수15.22 이하에 의하면 고의적인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그 죄는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거나 혹은 하나님이 죽음으로 그 죄를 형벌하신다.....우리는 우선 올바른 믿음으로부터의 이탈,그리고 거짓 교훈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특히 2.22,4.3,5.12].그리고 그 점은 21절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그러나 죄에 관해 이미 발전된 사상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라면,편집자가 일반적으로는 히브리서 10장26절의 "고의적으로 짓는 죄"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제멋대로 범하는 것을,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간음이나 살인처럼 나중에 가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여겨지게 된 중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주석가들의 다양한 노력이 지시해 주고 있는 바와 같이,어떤 한 가지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21절-"우상들"을 뜻하는 것 같지 않다.왜냐하면 그 경우 권면의 의미는 이교도 제사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요한1서 전체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경고와 또한 20절에 나타난 믿음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오직 거짓 교훈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은 "거짓 신들"의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고린도 전서 8.4,7과 데살로니카 전서 1.9절 등등에서는 "거짓 신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요한의 둘째 편지

1장 9절-여기서는 거짓 교사를 따르는 자를 가리켜"지나치게 나간 자"로,즉 "머물러 있지 않다"는 표현이 보여 주고 있는 바와 같이 합법적인 교훈밖으로 나간 자로 규정하고 있다.물론 이것은 영지주의자나 영지주의라 하는 그리스도인들처럼 보다 높은 지식을 추구하거나 혹은 그런 지식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해 말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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