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성서주해] 1장1-38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데오필로"는 하느님의 벗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존경하는"이란 호칭은 대개 나라의 장관에게 쓴 말인데 때로는 친구나 친교를 맺은 사람에게도 쓰는 말이었다.데오필로라고 한 이름은 그저 하느님을 사랑한 그리스도의 신자의 상징적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주장이 있었다.그러나 이 인물은 명백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이다.또한 "존경하는"이라고 한 호칭을 상징적 인물에 붙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은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또는 실현된 것 혹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에서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던 사실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조작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고 암시하고 있는 듯 싶다."그 일들".예수 그리스도의 생활 수난,죽음,부활,승천으로 이루어진 인류의 구속사업을 가리킨다."여럿".이 말은 루가보다 앞서서 예수님의 사적을 기록한 많은 저자를 가리키고 있다.그들 중에는 마태오나 마르코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여기서는 정확하거나 정확하지 않거나는 불문하고 착한 의향을 지니고 최초의 신자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기록한 모든 자료를 가리키고 있다.이러한 기록은 초대교회가 처음부터 인정한 정정正典복음서가 넓게 퍼지면서 읽혀지게 되자 차차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그러나 확실한 것은 "여럿"이라는 말에 베드로와 야고보의 거짓 복음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러한 거짓 복음서는 루가 복음서보다 훨씬 후세에 기술된 것들이었다."처음부터".세례자 요한의 선포에서 시작되고 예수님의 공생활을 본 그 때부터인 것이다(마르코1:1;루가3:23;행10:36-37)."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한 사람들",그 사도를 중심으로 하여 광범위하게 보면 72인의 직제자들일 것이다.그들은 이를테면 살아있는 증인들이었다.여기 복음서 기술의 역사적 사실성,사료史料로서의 사실성이 강조되고 이 있는 셈이다."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처음부터 예수님께 관한 일들을 쓴 사람들은 모두 사도들과 구세주께 직접 배운 제자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충실했었다.사도와 제자들은 처음에는 눈으로 본 사람들이었고 후에는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곧 복음의전도자가 된 이들이었다.그래서 복음서의 첫 원천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전도였다..... 구약성서에서 이 말은("전해 준") 항상 입으로 전한 명령,혹은 교훈을 가리킬 경우에 사용되었다...."순서대로"...란 부사를 해석자는 두 가지 뜻으로 보고 있다.하나는 시간적인 순서,또 하나는 논리적인 순서인데 후자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헤로데"는 헤로데 대왕이다.이두메아에서 태어났고 제2 이루까노(기원 전 47년)가 대사제였을 때 율리오 카이사르로부터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안티파도로의 아들이었다.교활한 간교에 뛰어났고 그곳으로 마침내 로마의회에서 왕이란 칭호를 받고 로마 714년(기원 전 37년)에서 750년(기원 전 4년)까지 나라를 다스리다 그 해에 죽었다.그는 여러가지 거창한 공익사업을 하였기 때문에 그를 대왕이라고 불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대대적인 개수공사였다."아비아 조".다윗이 성전에서 종교 봉사 체제를 세울 때 사제들은 24조로 나누고 각 조에서 반장의 이름을 따 부르게 했다.그들 각 조는 토요일(안식일)부터 교대하여 (1주일간)성전에서 봉사하였는데 향로를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아비야조는 엘르아잘을 시조로 한 8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사제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20,000여 명이었다)...즈가리야(하느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아비야 조에 속해 있었다."아론의 후예".즈가리야의 아내 엘리사벳(하느님은 맹세하셨다)도 사제 집안의 딸이었다.사제는 보통의 히브리인들과는 달리 다른 종족의 여인들을 얻을 수 있었으나 즈가리야는 이런 특권을 이용하지 않았다...."사제들의 관례".사제들사이에서 일어날 여러 분규를 사전에 막으려고 매일 아침 제비를 뽑아 맡을 일을 정하였다."성소에 들어가".향대라고 부르는 성전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향은 공식 기도 때 곧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바치고 있었다."만은 사람들".믿음이 깊은 유다인들은 토요일에 사제들이 향을 바치고 있을 때 성전에 모이는 습관이 있었다.사제가 지성소안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곧 이스라엘 사람과 부인들의 광장이라는 곳에 모여 기도하였다...."분향 제단".또는 향의 제단이라고 하며 백향 나무로 만들었는데 작은 황금 판으로 덮은 제단이다.그 위에서 향을 바치고 있었다(출애굽기 40:5)..."요한(이오안네스)".히브리말로는"요하난"이라 하고,'야훼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또는 '야훼의 은총'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이 이름이야말로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잘 표현하고 있다.정녕 그의 사명은 하느님의 은총 그리스도께 나갈 준비를 시키는 데 있었던 것이다....밀,보리,기장,종려 열매 등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말한다...엘리야가 아케브와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긴 사제와 하느님의 가르침을 버린 이스라엘 사람을 향해 용감히 싸운 것처럼 요한도 타락한 헤로데나 바리사이파 사람 도는 악을 고집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리한 칼로 내리칠 것이다.또 예언자들이 오실 메시아를 맞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신 것처럼 요한은 오실 예수님을 맞도록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마음의 준비를 외칠 것이다."아버지와 자식을 화해시키고".요한은 히브리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데려옴으로써 아버지와 자식을 화목케하고 일치시킬 것이다.믿지 않는 자손과 그 도덕적 타락에 노한 조상에게 다시 자손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할 것이다......"가브리엘"은 말한다.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자이다,그렇기 때문에 내 말을 믿어야 한다."하느님을 모시는 시종".왕 앞에 나아가 존경을 다하여 그 명령을 따르는 충신과 같다....가브리엘은 강생의 천사라고도 부른다.마리아께 예수님의 탄생을 즈가리야에게 선구자의 탄생을 다니엘에게 이스라엘의 구원을 알렸기 때문이다......"마리아".히브리말의 미리암.아마도 마담이라 뜻이겠지만 아름답다란 뜻이 있다....또 라그랑쥬와 휴비는 왕비라는 뜻이 있었다고 하였다....유다법에 따르면 결혼연령은 여자 12세 남자 18살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공동번역에서는 빼고 말았으나"당신은 여인 중에 축복을 받으셨습니다."란 말이 있다.여기 나오는"축복을 받으셨다"란 말은 히브리말에서는 최상급의 표현법으로 마리아가 누구보다 하느님의 은혜를 입은 분이란 뜻이다.확실히 그렇다.마리아는 그렇기에 대를 이어 많은 사람의 더할 나위 없는 찬양을 받으셨던 것이다.이 말은 바티칸과 시나이 사본에는 없는데 알렉산드리아의 사본,라틴말,시리아말,이디오피아말,그밖의 많은 교부들의 책에 실려 있다.어느 비판학자는 이 말을 베껴 쓴 사람이 42절을 인용하여 써 넣었다고 하였다.이러한 이 증명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아기는 예수(예수스),곧 히브리말의 예호슈아(야훼는 구원이시다)이다.이사야는 아기를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고 불렀는데 이 관념은 이미 천사의 인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그는 행정 장관이었거나 아니면 어느 도나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 총독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스트리터는 그가 도미티언 황제의 추정 상속인 티터스 플라비어스 클레멘스였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하나님께 사랑스러운 자"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의 데오빌로는 가명이라는 것이다.데오빌로가"저명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이것은 누가복음이 그에게 헌정된 것을 보아 추론될 수 있는 것이다.게다가 데오빌로는 누가복음의 출판과 이것을 보급하는 일을 담당하여 그 비용을 부담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Greydanus).한 권의 책을 높은 사람이나 그 밖의 중요 인사에게 헌정한다는 것은 그 당시의 하나의 인정된 관습이었는데 그 책을 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한다는 뜻도 있었다(윌리허-파셔의 신약 개론).....이 마을은 오늘날 까지도 그대로 있는데 지금은 엔-나시라(En-Nasirah)로 알려져 있다.현재 이 곳에는 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2/3는 기독교인이고 나머지 1/3은 모하멧교도들이다.그러나 유대인들은 (고의적으로 이 마을을 피하고 있어) 한 사람도 이 곳에 거주하는 자가 없다....그 당시에는 약혼이 상호간의 충절에 대한 명확한 약속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파혼은 간음으로 간주되었다(신 22:13,23 이하 참조)
200주년 신약성서주해
이사액의 어머니 사래(창세 11,30;17,17;18,11-14) 야곱과 에사오의 어머니 리브가(창세 25,21)삼손의 어머니(판관 13,2-3)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1,5)도 본시 석녀石女였다....어린 양을 잡아 번제를 바칠 제관,기름으로 반죽한 밀가루와 포도주를 바칠 제관,분향할 제관,촛대를 보살필 제관을 추첨으로 선발했던 것이다.여러 제례 가운데 분향을 가장 영광스럽게 여겼다....가브리엘을 풀이하면 "하느님은 나의 영웅","하느님은 나의 전사"라는 뜻이다. 아침과 저녁 제사가 끝나면 제관은 번제 제단 밖으로 나아가서 거기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해 주었다(민수6,24-26;미슈나 타미트 7,2)..이스라엘에서는 처녀가 결혼한 다음에도 성관계를 맺지 않은 채 1년 남짓 친정에 눌러 살았다.27절의 정혼은 이런 상태를 가리킨다.한 해쯤 지나고 나면 신랑이 신부를 시집으로 데려가서(마태 25,1-13 참조) 비로소 성관계를 맺었다.
[루가복음 성서주해] 1장 39-80,2장 1-2절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유다".6세기까지 되올라 간 것으로 보이는 어느 오래된 전승에 따르면 이 유다는 예루살렘 남쪽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아인 가린>이다.혹은 사제의 동네라고도 부른 헤브론을 생각한 이도 있다....할례는 태어난 지 8일만에 가령 그 날이 토요일 곧 안식일일지라도 베풀었다.또한 이 날의 예절은 사제의 권리가 아니었고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또 여자라도 집행할 수 있었다(마카베오 상 1:60:마카베오 하 6:10).할례는 즈가리야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엘리사벳도 그 자리에 있었다.율법에 따르면(레위기12:4) 여인은 산 후 40일 동안 집밖으로 나다닐 수 없었다.할례는 하느님과 맺는 계약의 표시였기 때문에 아기가 뽑힌 백성의 한 사람이 되는 이 날 새로 이름을 지어 준다는 것은 유다 관습을 어기는 일이었다.....어떤 교부는 그녀가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어 준 일은 성령의 이끄심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마도 즈가리야에게 어떤 암시를 받지 않았을까! 몸짓 발짓으로라도 즈가리야는 엘리사벳에게 지성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대충 알렸을 것이라고 생각된다....밀납을 바른 판에다 쇠붙이나 상아로 만든 줄칼을 가지고....."지극한 자비의 덕분".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자비의 장腸"이다.히브리인은 장을 가장 깊은 애정,예를들면 자비나 사랑의 자리라고 보았다.그래서 이 말은 위대한 자비를 나타내었고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속죄와 그 은혜는 우리의 공로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의 속죄를 통한 하느님의 자비로 말미암은 것임을 말한다."하늘 높은 곳에".이것은 메시아의 기원을 말한다.메시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태양"...떠오르는 태양을 말하는데"세상의 빛이신 메시아를 가리킨다.이 태양이 이 세상 하늘에 나타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에서 온 것이다.옛 예언자들도 메시아의 오심을 별이 뜰 때,새벽,솟아오르는 태양 등 이런 말로 비유했다(민수기24:17;이사야9:1-2,42:6;즈가리야6:12;말라기3:2)."죽음의 그늘".끝없는 검은 암흑을 말한다.히브리인은 죽은 사람이 검은 암흑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아마도 사해 서쪽 유다의 사막이었을 것이다.유다의 사막에서 그는 엣센파 사람들과 사귀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의 활동,그 역사적 사명과 군중과의 사귐을 본다면 그런 주장의 근거는 무너지고 만다....로마의 초대 황제 가이사르 아우구스토(옥타비아누스)는 이오 옥타비오와 율리오 가이사르의 친척이었던 앗지아의 아들로 기원 전 62년에 태어 났다.율리오 가이사르의 양자가 된 그는 아버지가 죽자 원수를 갚으려고 마르코 안토니오,레피도와 함께 삼두정치를 하고 아찌오 해전 후 원로원으로부터 황제의 칭호를 받았다.....이 사건을 루가만 기록했는데 정확한 기록일 할 수 있다.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첫째로 아우구스토는 이러한 호구 조사를 여러번 했다.갈라디아의 안치라市시의 어느 신전 벽에 새겨 넣은 아우구스토의 유언서에도 로마 기원 726년,746년,767년에 행한 3번의 호구 조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로마 시민의 호구조사 뿐만 아니라 전 로마의 지형도와 지도를 만들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이 큰 일을 해내기 위한 측량은 로마 기원 747년(기원 전 7년) 경 곧 그리스도 탄생 무렵에 완성되어 있었다.이것을 아울러 생각해 본다면 이 당시 로마 제국의 속국에서 이루어진 측량 외에 부속되는 다른 일들도 완성하고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746년에 이루어진 로마 시민의 호구 조사는 로마에서 747년에 완성 된 그 광범위한 호구 조사의 일부였던 것 같고 이것은 로마에서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어느 기간 오래 끌며 진행되었던 것 같다....또 어느 주해자에 의하면 퀴리노가 앞서 시리아에 파견된 것은 호구 조사를 완성하기 위한 특권을 가지고 봐로의 보좌로 일하려는 것이며 봐로 후에 총독 결원 대리 기간을 보충했다고 한다.이 주해자는 루가가 퀴리노를 키프로스(행13:7)나 아카이아(행18:12)의 통치자에 대하여 한 말 곧 지방 총독이라고 부르지 않고 단지 통치자,관리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낱말은 그의 직책이 아닌 막연한 성질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불가타역을 보면 이 창야은 그 첫마디부터 성모 마리아의 찬가(Magnificat)로 알려져 있다.초기 때부터 이것은 기독교회의 찬양에서 사용되어 왔다.문형으로 보아 서정시이다.사상과 표현 방식 그리고 찬양과 경배에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순수하게 히브리적인가 하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것은 거의 전체가 구약 성경 인용문으로 구성되어 있다.특별히 이 찬양과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그러면서도 마리아의 찬양은 한나가 부른 승리의 노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마리아는 깊은 겸손과 거룩한 자제로 그녀의 행복을 노래하는 반면 한나는 원수들을 이긴 승리감에 완전히 도취되었다.마리아는 구약성경의 표현을 빌려와 거룩한 말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보다 고차원적으로 적용하고 있다.예언자들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들 선구자들의 말을 가지고 종종 그렇게 하였다....메시아를 "돋는 해"로 묘사한 것은 이사야 9:2과 60:1의 말씀과 그리고 특히 하나님이 선언하신 말라기 4:2의 말씀에 부합된다:"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아마 요한은 20세경에서부터 그의 공생애를 시작할 때까지 사해 서쪽 유대 광야 지역에서 머물며 그의 과업을 위해 준비한 것 같다....그는 빈틈없는 전략과 군사적 힘으로 여러 해 동안 로마 전역에서 일어난 그 무서운 내란과 그에게 도전하는 모든 저항을 진압한 다음에 40냔 동안 절대적 군주로서 로마 제국을 다스렸다.그는 평화스럽고 관대한 통치를 통해 세계적으로 전례없는 외적인 평정을 가져다 주었고 그의 대제국에는 후에 기독교의 확산을 용이하게 한 영구한 조직을 만들었다.이 점에서 그의 명령(1절)을 통해 미가 5:2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그는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의 도구였다.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로마제국의 후계자들(일례로 네로 황제)은 악한 자에게 잡힌 도구로서 아주 광포하게 행하였다.그들이 기독교회를 박해했지만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 아래 있었던 것이다......반드시 구례뇨가 수리아의 총독이나 지방 총독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의 권한을 받았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Plummer,ICC).그래서 그 당시에 다른 어떤 사람이 수리아의 총독이었고 구례뇨는 관청의 어느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거기에 있었다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성경주석] 2장 3-52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로마의 관습법에 의하면 호구 조사를 할 경우 사람들은 현 주소에서 등록하엿으나 팔레스티나에서는 유다의 관습에 따라서 저마다의 본적지에 가서 등록을 하였다.이 방법이 히브리인들에게는 편리했던 것이다.그들은 종족은 물론 가계의 구별까지 엄격히 따졌고 보존해 왔기 때문이다."요셉".그는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나자렛에서 다윗의 도읍인 베들레헴(역대기 상 17:12)으로 가야만 했다.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20 키로의 거리였다."마리아와 함께".로마인은 12-60살 까지 남녀 모두에게 세금을 거두었다.그래서 마리아도 요셉과 함께 갔던 것일까? 또 한편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그 본적지에 가 등록해야만 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또 한편 마리아도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그 본적지에 가 등록해야만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루가는 1장 32,69 두 절에서 그녀가 다윗 집안 출신임을 암시하고 있다...."달이 차서".예수님께서 정확히 언제 태어나셨는가는 확정하기 어렵다.단 여기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로마 기원 747년(기원 전 7년) 전에도 749년(기원 전 5년) 후에도 태어나지 않으셨다는 것 뿐이다.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무렵 로마 제국에서 광범위한 호구 조사를 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이것이 746년 혹은 747년 이전 일은 아니었다. 왜 그런가? 746년에 처음 로마의 야누스 신전이 폐쇄되고 제국에 평화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더우기 팔레스티나에서 한 호구 조사는 748년에 이루어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747년 혹은 748년 이전에는 태어나지 않으셨다고 추정된다.또 마태오는 예수님이 헤로대 대왕이 다스릴 때 태어나셨고 이 왕이 죽기 전에 박사들의 방문이 있었으며 무고한 아기들의 학살이 있었고 거룩한 가정의 에집트 피난 등 여러 가지 사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적어도 몇 달이 걸려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역사가들이 헤로데의 죽음을 750년 3월 혹은 4월이라고 단정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은 749년 후의 일이 아닌가 결론을 내릴 수 있다.여기서 예수님의 탄생은 로마 기원 748년 749년 사이에 있었다고 인정해야 한다....2세기 중엽에 팔레스티나에 살고 있던 유스티노 및 3세기 중엽 무렵의 사람으로 이 땅을 잘 알고 잇던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이 외양간은 그 변두리의 가축을 위하여 추운 밤을 피난하는 데 쓴 동굴이었다고 하였다....여관이라고 번역하였으나 명백하지 못하다.짤라 낸 돌로 만든 정방형의 울타리에 지나지 않고 복판에는 가축을 위한 자리,둘레에는 나그네를 위한 조잡스러운 방이 있었다.그리고 이런 여관은 대부분 가축의 피난처가 있는 동굴 가까이에 있었다....목장에서 야영을 한다는 뜻이다.그들은 그솟에서 맹수나 도둑을 경계하고 있었다.예수님께서 어느 계절에 태어나셨는지는 알 수 가 없으나 교회의 전승처럼 12월이라고 해도 괜찮다.그 곳 12월은 야영할 수 없을 만큼 춥지가 않은 계절이다.....전승에 의하면 목장에서 그 곳까지는 약 반 시간 걸리는 거리였다고 한다....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태어난 그 동굴에서 이루어졌다고 했다.그러나 목자들이 찿아온 후에도 요셉이 여관방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혹은 길을 가다가 할례를 행했다는 학자가 있다.이 예식에는 보통 10사람이 증인으로 참석했다.명예석이 둘 마련되고 하나는 어린이의 대부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이 자리에 참석한다고 믿은 예언자 엘리야를 위한 것이었다.예식의집행자인 아버지나 혹 그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작은 상처를 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 법규로서 우리를 축성하시고 할례를 주시는 주이신 하느님이시여 축복을 내리소서" 어린이의 아버지가 대답한다."우리 아들을 아버지이신 아브라함의 계약에 들어 가게 하신 하느님,찬미를 받으소서" 또 참석자들은 시편의 말을 빌려 화창한다."주여,당신의 아들로 뽑힌 자를 축복하옵소서 " ...첫 아들은 주님에 의하여 축성되고 속세를 떠나서 사제로서 오로지 하느님을 섬겨야 했다(출13:2;민18:15-16).그 후 하느님께서는 사제직을 레위인들에게 한정시키셨으나 하느님께서 첫 아들에게 가지고 계신 권리를 기억하려고 첫아들은 성전에 봉헌하게 하시고 5세겔의 돈으로 속량하게 하셨다....율법의 명에 따르면(레12:6-8) 여인은 정결례의 제물로 일 년 된 양 한마리와 집 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바칠 의무가 있었다.그러나 가난한 여자는 두 마리의 산비둘기나 또는 집비둘기를 바치면 되었다....성가족은 성전에 들어가 이방인과 부인을 위한 두 출입문을 지나 15계단의 층계를 올라 가서 부인의 출입문과 이스라엘을 위한 출입문 사이에 있는 <니까나레>라고 하는 문으로 나온다.그 곳에서 사제는 예식을 따라 마리아에게 형식적인 피를 뿌리고 기도문을 외우고 비둘기 한 쌍을 바쳐 예수님을 속량했다.....어느 학자에 의하면 이 인물은 힛레루의 아들이며 가믈리엘의 아버지였던 저 유명한 랍비.시므온과 같은 인물이었다고 하였으나 의심스럽다.힛레루는 기원 후 31년에 죽었기 때문에 시므온이 예수님의 탄생 때 이미 존경받을 만한 노령에 이르러 있었다고 생각할 수 없고 또 사제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확증도 없다.그는 오히려 그의 도덕적인 단정한 인품때문에 알려진 사람과 같다....고통의 예리한 칼은 예수님께서 유다인에게 버림을 받고 도적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볼 때 그녀의 마음을 꿰뚫을 것이다.마리아는 예수님의 고통과 연결되어져 있다.... 율법은 (출23:14,17,34:23:신16:16) 팔레스티나에 사는 성년 남자에게 해마다 3번 곧 과월절,오순절,장막절에 예루살렘 성전 곧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명하고 있다.여인은 이 규정에서 예외였으나 그러나 믿음이 깊은 여인들은 적어도 과월절에만은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전에 갔다.복음사가의 말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도 해마다 과월절을 위해 요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관습을 지켰던 것 같다.나사렛에서 약 110키로 거리였으며 4,5일 걸리는 여행이었다.히브리인 남자가 율법의 아들이 되는 것은 15살이어서 그 때부터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따라서 이곳에서는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셨으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려 한 것은 아니다.그것은 그 분이 그 어린 나이에 예루살렘 학자의 혀를 차게 할 만큼 지혜를 가지셨다고 주목하게 하려 한 것이었다....신학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3가지 창조적 지식을 분류한다.(1) 지복적 지식.이것에 의해 예수님을 하느님의 본질을 보고 그것 안에서 모든 것을 보신다.(2)직접 하느님께 받은 이성적인 형태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알려 주는 천부적 지식.(3)습득한 지식.이것에 의해 감각적 사물에서 추상된 관념을 가지고 사물을 본다. 이상 3가지이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원래 베들레헴은 에브랏으로 불려졌다(창35:19).현재 이 곳은 벧-람(Beth-Lahm)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주민은 약 8,000명 정도 되는데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다.이곳은 예루살렘 남쪽 약 6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요셉은 그녀를 나사렛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사람들은 그녀가 요셉과 결혼한 지 아홉 달도 못되는 것으로(1:56) 알고 있는데 그녀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마 모욕과 불신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염려도 있었던 것이다.또 요셉과 마리아는 미가서 5:2절에 의하여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고서 그리로 함께 가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A.D.330년 경에 콘스탄틴 대제가 이 동굴 위에 교회를 짓게 했는데 일부 전문가에 의하면 그것은 예수님이 출생한 실제 장소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얼마 후에 유스티아누스가 이곳을 보다 아름다운 건물로 재건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그 동굴 위에 서있는 이 교회는 1,600년 전에 그 때 세운 모습을 대부분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크리스마스는 354년 로마에서 제일 처음 경축되었고 그 다음 379년 콘스탄틴노플에서 다음은 388년 안디옥에서 경축되었다.그 때부터 그것은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인 찬성을 얻게 되었다.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12월 25일이 예수님의 실제 탄일이든 아니든 그것은 전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그 날의 중요성에 대하여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기념해야 할 것은 위대한 사건 그 자체이지 그 날이 아니기 때문이다....아마 이들의 양떼는 성전 예물로 쓰이기 위해 베들레헴 부근에 수직守直된 양 떼처럼 그런 목적에 쓰이도록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그럴 경우 그들은 오래되지 않아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서도 약속된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던 경건한 사람들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이런 식으로 그들은 시므온과 안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아기를 영접할 준비를 시켰을 것이다....요셉과 마리아가 성전 방문 후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어느 집에 살려고 들어간 것(마2:11)을 추정할 수 있다.이것은 특별히 시므온과 안나같은 경건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그들이 그 메시아 아기는 베들레헴에서 자라야 한다고 느꼈다는 사실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동방 박사들은 거기서 그들을 방문한 것이다.그 후에 그들은 이집트로 피신했으며 상술한 이유로 헤롯이 죽은 다음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 나사렛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게 된 것이다(마태 2장)....12살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다.아마 그것은 유대 소년으로서 책임있는 구성원,이를테면"계명의 아들"로 종교집단에 가담하는 것이 허용되는 그 다음 해의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이 중요한 행사는 유대 소년들이 13세가 되면 거행된다.
[누가복음 성경주석] 3장 1-2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디베료는 A.D.14년(8월 19일)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죽은 때부터 A.D.37년까지 통치한 로마 황제였다.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열 다섯 해는 그가 A.D.11년에 그의 의붓 아버지 아구스도에 의해서 그 지역 여러 도를 다스리는 공동 통치자로 임명된 때부터 계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그의 실제 즉위가 아닌 다른 연대에서 계산된 그의 즉위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예증되지 않고 있다.로마의 계산법에 의하면 이 열 다섯 해는 A.D.28-29년이 될 것이다.그러나 수리아에서는 군주의 통치가 셀루시드(Seleucid)시대 때부터 사용되어 온 방법에 따라 계산되었는데 이것은 통치 기원이 9-10월에 시작되었다.이 계산법으로 하면 디베료의 통치 2년은 A.D.14년 9-10월에 시작된 셈이 된다.사실 그가 황제가 된 것은 그보다 불과 한 달 전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의 통치 15년은 A.D.27년 9-10월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분봉왕"이라는 칭호를 한급 높은 왕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실각되었다.....몇년 전에(B.C.36년경) 루사니아라는 사람이 왕으로서 아빌레네를 다스렸고 또 다른 (이 사람의 후손으로 보이는) 루사니아가 후에 이 지역을 분봉왕으로 통치한 것을 입증하는 명각이 발견되었다....요한이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대중 앞에 나타난 것이 A.D.26년과 29년 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아마 정확한 연대는 A.D.27년이었을 것이다.
페데리꼬 바르바로
"황제 티베리오"는 리비아 트리질라와 티베리오 글라우디오 네로의 아들로 그는 기원 전 42년에 로마에서 태어났다.어머니 리비아는 아우구스토 황제비가 되고 그는 그의 양자가 되었다.기원 후 11년 곧 로마 기원 764년 내지 765년에 황제와 함께 국정에 참여하고 식민지 통치를 맡아 보았다.767년 8월 19일 아우구스토 황제가 죽은 후 791년에 죽을 때 까지 로마 제국을 다스렸다."십오년째 되던 해".티베리오 치정 15년을 확정하기란 어렵다.그 까닭은 그가 황제와 함께 국정에 참여한 때부터 계산할 것인지 아니면 황제의 죽음부터 계산할 것인지 이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전자로 가정을 한다면 재위 15년은 로마 기원 779년 혹은 780년 그리스도 기원 26년 혹은 27년에 해당된다.후자로 가정을 한다면 로마 기원 781년 혹은 782년,그리스도 기원 28년 혹은 29년에 해당된다.세속 역사가와 안티오키아의 화폐는 티베리오가 황제가 된 해를 아우구스토가 죽은 해로부터 계산하지만 루가는 히브리인의 풍습을 따라 기록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히브리인은 764년 혹은 765년을 티베리오가 황제가 된 해라고 보았다.예수님은 로마 기원 748년 혹은 749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루가가 본장 23절에서 쓴 것처럼 779년 혹은 780년에는 30살이 되셨다...."갈릴레아 지방의 영주".헤로데 대왕이 죽은 후 그 나라는 4으로 나뉘고 유다,사마리아,이두메아를 아르켈라오가 맡고,갈릴래아,베뢰아를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가 다스렸다.헤로데 안티파스는 기원 전 4년부터 기원 후 39년 내지 40년 사이,이 지방에 군림하였다.그는 헤로데 대왕과 마르타치아의 아들인데 잔인하고 의심이 많은 쾌락주의자로서 루가의 기록에 남아 있다.로마 기원 792년경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리옹으로 추방당했다."필립보".헤로데 대왕과 크레오 파트라의 아들이며 아버지로부터 바나데아,드라고니데데,아우라니띠네,가우로니띠네 및 파네아를 이어받았다.헤르몬 산 기슭 가이사리아시 및 티베리아데 호수 북쪽인 벳사이다,율리아를 세워 37년을 다스린 후 기원 후 34년에 죽었다.헤로데의 아들가운데서 몹쓸 이름을 후세에 남기지 않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이두래아는 팔레스티나 동북,다마스커스의 서쪽에 있는 산악 국가이다.트라코니티스는 다마스커스의 남쪽에서 포스라까지 펼쳐져 있었다. "리사니아".다마스커스 북서에 있는 안티레바논의 아빌레네 분국이었다.리사니아 분국의 존재를 부정한 어느 유리주의자가 있었으나 아빌레네에서 발견된 두 비석의 비문에서 루가의 기록이 확인되었다.
[누가복음 성경주석] 6장20절-8장 3절 성서주해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20.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첫째 조건은 마음을 재물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하느님의 나라의 보상은 반드시 빈궁 그 자체에다 주시는 것은 아니다...24.루가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저주는 에비온파의 영향이라고 비난하는 자가 있으나 여기서 불행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재물 자체가 아니고 그것을 악하게 쓰기 때문이며....30.그렇기는 하나 이 권고를 실행 할 경우에는 역시 현덕賢德을 잊지 말아야 한다.인내란 좋은 것이지만 악인이 더 담대하게 악을 행할 수 있는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한다....39.적당한 지식과 현명없이 남을 지도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이 다스리고 있는 사람의 영적 멸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정신적 지도자가 되어야 할 그리스도교인은 이러한 자기 교육,교양에 유의해야 한다....40.만일 누가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알맞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스승을 찿아야 한다.왜 그런가? 만일 스승이 그릇되다면 제자도 반드시 그릇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7장 2.가파르나움에 살고 있던 이 백인대장은 로마 주둔군의 지휘관이거나 헤로데 안티파스 휘하에 있던 장교인 것 같다.이 사람은 이방인이었다.전후를 보거나 특히 9절을 보면 알 수가 있다.유다교를 믿게 된 이방인도 아닌 것 같은데가파르나움의 유다인 회당을 도운 사실을 보면 유다인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된다....10."자기 집에 예수님을 맞아 들이기에 합당치 못하다고 한 이 백인대장은 참으로 합당하게 자기 안에 예수님을 받아 들이고 있다"이 말은 위대한 성학자 아우구스띠노의 말이다. 11.나인은 나자렛 남동에 있고 가파르나움에서 걸어서 7-8시간 걸리는 곳으로 에스드레론 평야가 열리는 입구에 있었다.지금 아라비아 사람들이 네임이라고 부르는 동네 같다.나인이라는 동네는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성문이 하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 성문을 나오면 평야와 묘지가 맞은 편에 있다....지금도 소아시아의 풍습으로 남아 있듯이 시체를 천으로 싸고 홑이불을 둘러 가지고 상여에 싣고 있었다....예수님의 행동은 옛 예언자들과도 다르다.엘리야(열왕기 상 17:17-24)나 엘리사(열왕기 하 4:18-36)가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렸을 때에는 그 기적에 앞서서 길게 야훼께 기도를 올렸고 많은 상징적인 징표가 된 행동을 하였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마디 말씀만 하셨다. 19.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예수님의 참 자격에 대해서는 명백한 관념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역시 승리하시는 구세주를 꿈꾸며 그 빛나는 나라의 돌발적인 나타남을 감옥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렸는데 지금은 지칠 지경에 있었다.실제로 요한이 예수님께 한 질문은 이 후자의 주장을 긍정하고 있다....28.요한이 위대한 것은 그의 사명 때문이었다.구약의 예언자 중에도 그 요한보다 뛰어난 사명을 다한 사람은 없었다.그러나 루가가 여기서 비교하는 인물은 구약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이 마리아나 사도들보다 뛰어 났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그렇긴 하지만 가령 요한이 아무리 위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자보다 뛰어날 수 없다.이 절에서 하느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종말 후의 천국이 아니라 지금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로운 나라인 것이다.요한은 아직 사랑의 율법에 속하지 않은 구약의 사람이다.혹은 구약을 신약에 연결시켜 맺어 주는 다리이다.선구자로서 지닌 그의 사명은 하느님의 나라의 준비에 지나지 않았다.그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그보다 더 큰 은혜를 받고 있다.예수님의 이 마지막 말씀은 청중에게는 신비에 찬 말씀이었다.그것은 그들에게 벌써 실현된 그 나라에 대해 생각할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33. 첫째 주장에 의하면 앉아 있는 아이들은 예수님을 거부한 유다인들을 뜻하고 고행생활을 하고 있던 요한에게는 더 즐거운 생활을 하라고 청하였다.또 예사로운 사람과 같이 하고 있던 예수님께는 더욱 더 고행,단식하기를 바란다.그러나 예수님도 요한도 그들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쌍방을 다 거부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36.루가가 기록하는 초대연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초에 갈리레아에서 일어 났다.여인은 죄인으로 연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었다.그것과 달리 다른 세 복음사가가 쓴 사건은 베다니아에서 열린 과월절 엿세 전의 일이다.여인은 예수님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위를 칭찬하신다.그리고 당신의 가까운 죽음을 알려 주셨다....38. "뒤에 와서".당시 소아시아의 습관으로는 식탁이 말발굽 형으로 되어 있어서 자리에 앉은 사람이 걸상 위 오른편에 발을 굽히고 앉아서 팔굽을 식탁에 얹고 식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예수님께서도 그와같이 앉으셔서 발을 오른쪽 뒤로 굽히셨다.그래서 이 행실이 나쁜 여자가 예수님 뒤에 섰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연회가 있기에 앞서서 신(샌달)을 벗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맨발이셨다.....소아시아에는 지금도 연회 자리에는자유롭게 들어 가 그 곳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아마 머리에 붓기에는 자신이 너무도 천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44. 어떤 연회에 초대를 받아 갈 경우,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샌달을 벗는다.주인은 손님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하고 앉도록 권하고 나서 발을 씻게 하기 위하여 하인을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그것이 끝나면 주인 자신 혹은 하인이 손님의 머리와 수염에 향유를 부었고 식사 점에 손을 씻도록 물을 내놓았다.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이러한 예전을 갖추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8장 2.그녀의 출생지가 가파르나움과 디베리아데 사이에 있는 겐네사렛 서쪽 기슭에 있는 미그달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요안나는 요한이라는 이름의 여성형...수산나.뜻은 백합...히브리인의 경건한 여인들은 자기네의 스승 율법학자들을 경제적으로 협조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순례에 까지 따라 다닌 일은 거의 없었다.따라서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선교 여행을 따라 다녔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가버나움에서 약간 경사진 곳을 따라 그 능선 꼭대기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거기서 12제자를 채택하셨으며 산상설교는 거기서 약간 내려와 평평한 곳에서 하셨다.마태는 군중들과 함께 걸어 올라가 그분에게 갔는데 그것은 분명히 산이었다.누가는 후에 그가 묘사한 장면을 보기 위해서 가이사랴에서 그리로 올라갔는데 그 산과 인접해 있는 로마 대로에서부터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그 '평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7장 11.이 곳은 가버나움 남쪽 엔돌에서 서쪽으로 약 2마일 떨어진 곳이었다.이곳은 작은 헤르몬(Little Hermon) 비탈을 배경으로 고지에 위치해 있었으며 오늘날까지 네인(Nein)으로 불려지는 작은 마을로 현존하고 있다.가버나움으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이 마을의 서쪽 문 앞에서 바위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루가복음 성서주해] 9장 51-62,10장,11장 성경주석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루가는 여기서부터 예수님의 선교의 새로운 기간을 쓰기 시작했다.그 중심은 예루살렘 여행인데 약 8달 동안의 일이었다(9:51-19:28).복음사가는 벌써 예수님의 수난 예언을 썼다......이 절에 쓰여 있는 예루살렘 여행 출발 외에 복음 사가는 다른 두 가지 출발,곧 13:22,17:11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예리코를 결정적으로 떠나신 (루가 18:31) 때를 기록하고 있다.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가신 여행이 3번 있었다고 하였다.그러나 그것은 언제의 일이었을까? 뷔제렐은 요한(요한 7:1-10:39,11:8-55)이 기록한 것과 같다고 말하고 레베스크는 첫째 여행은 요한(5장)과 같고 두 번째는 장막절과 성전 기념절 사이에 이루어졌고 세 번째는 이 마지막 명절 후에 이루어져 다른 두 공관 복음사가의 기록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다....복음사가가 세번이나 예루살렘의 여행을 되풀이하여 쓴 것은 이 기간을 수난의 상징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52.그분은 사마리아인이 자기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고 계셨기 때문에 먼저 앞잡이로서 음식과 숙소를 찿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셨던 것이라 생각된다.예수님의 의혹에는 이유가 있었다.그들이 예수님 일행을 환영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이 목적만으로도 유다인에 대한 사마리아인의 적대 행위를 하게 하는데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그들 사이에 불목한 것은 향용있는 사실인데,특히 축제 때에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순례는 보통 그곳을 지나 올라 갔다.사마리아인의 예배소는 가리짐에 있었는데 예루살렘으로 가는 자들이 자기네의 예배소를 업신 여기는 것으로 사마리아인은 생각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행을 환영하지 않았다....59.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따르면 이 사람은 초대 교회에 명성이 있던 보조자 필립보였다고 한다.이 제자는 아버지를 묻으러 가게 해 달라고 청했다.말미야 며칠 안 되겠지만 그러나 이 제자에게는 아직도 세속의 물질적 근심에 사로잡힐 위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었을까? 어떤 경우에는 거룩한 의무라고 생각되는 일조차 예수님을 위해 희생으로 바쳐야 할 것이다....10장 13.티베리아데 호수 북쪽에는 지금도"케라제"라고 하는 도읍의 유적이 있다....18.어느 교부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어서 교만 때문에 루치펠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시고 그것으로써 제자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실 의향이었다고 생각하였다.그러나 제자들의 기쁨은 자만심에서 온 것이 아니므로 지금 겸손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고 여겨진다....30."내려 가다가".예루살렘은 800미터 높이에 있고 예리코는 해발 150미터의 땅이니 잘 한 표현이다. 그 사이에 있는 길은 광야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강도"를 만날 위험이 있었다....41. 교부들과 신비 신학자들은 마르타와 마리아에게서 있어서 그리스도적 생활의 두 가지 형이 있다고 생각했다.곧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활동 생활과 기도와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기울이는 관상 생활이다.그러나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 생활도 만일 그것을 잘 해낸다면 결코 관상觀想 생활과 엇갈리는 것이 아니다. ....11장 1. 아마도 베다니아 부근에 있었던 일 같다.어느 전승은 올리브산이었다고 한다....2. 행복(진복 8단)의 수를 4으로 줄인 루가는 또 이곳에서도 그답게 말씀을 생략하였다."아버지의 나라"에는"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아버지의 뜻이..."운운하는 기도를 생략하고 마찬가지로"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청도"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라는 말씀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것도 생략했다.이 청을 한 사람은 사도였던 것 같다.여기에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은 몇 사람 안 된다.이 제자의 청은 기도에 대한 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동시에 세례자 요한에게서 기도 예문을 배운 그 제자들과 대항할 작정이었던 것 같다....."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받들게 하시며"가 더 그 뜻을 뚜렸하게 해준다고 생각된다.여기서는 하느님의 거룩한 덕을 선언하고 우리의 성스러운 도덕생활로 그것을 힘차게 알리겠다고 하는 뜻이 있다.따라서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사람이 하느님을 인정하고 찬미하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16. 엘리야도 자기 사명의 진실성을 증거하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 오게 하고 비에다 명령했다(열왕기 상 17:1,18:38,41;열왕기 하 1:10).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52.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불화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예루살렘을 재건할 당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때 사마리아인들은 그 공사에 유다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결국 그들은 그 공사를 방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스4:3;느2:20).곧 성전과 제사장에 대한 대립이 그리심산에서 나타나게 되었고 그들의 절교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예수님 시대에 그 불화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그 반목의 궁극적인 원인은 실제로 포로 후기 시대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것은 사사들과 초기 군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사마리아인들의 메시야적 희망은 그들이'타헤브'곧"복원자"라고 불렀던 신명기 18:15절 이하의 그 "예언자"에 중심을 두었다.오늘날에는 그들 조상의 신앙을 고수하는 소수의 사마리아인들만이 팔레스타인에 생존하고 있다.....56. 발길을 돌이켜 갈론(Galud)계곡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다른 길을 택했던 것이다.....그렇게 해서 그는 문자 그대로'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통과하여 벧-산을 지나고 요단을 건너 베레아를 경유하여 여리고에 이르셨다."10장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 6개월 남짓되는 기간에는 특별히 이 지역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당시 트랜스 요르단 주민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많은 무관심 속에서 영적으로 아주 방치되어 있었다.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은 방치된 그 지역의 촌과 마을을 짧은 시간에 가능한 집중적으로 복음화 하기 위하여 그처럼 많은 제자들을 보냈을 것이다....4. 동방에서는 길거리에서 하는 인사가 유난히 길다....8. 제자들에게 식사 전에 의식상 부정한 음식이 있는지를 확인하느라고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가버나움 폐허에서 북동쪽으로 약 2마일 떨어진 현재의 케라제와 동일시 되고 있다....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계시록 12:9,12을 참조하라.'떨어지는".이 부정과거는 이미 결말이 난 사실을 가리킨다."여기서의 문제점은 현제 떨어지고 있는 사실이나 그 결과 즉 떨어져서 누워있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떨어졌다는 개념이다.사탄은 이미 그의 높은 권세의 자리에서 쫓겨나 던짐을 당했다.이런 이유때문에 그 70문도들은 귀신을 내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그것은 주님이 사탄을 완전히 이기셨다는 증거였다.그러므로 그들도 그분의 이름으로 미래의 완전한 승리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Greydanus)...."마르다"는 아람어"마르"의 여성형으로 "주부主婦"를 의미한다."마리아"는(히브리어"마리암"또는"미리암"을 나타내는데) 확실한 어원은 알 수 없다.추측상으로는"바다의 별"海星이 어원일 가능성이 있다....11장 2.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말할때 약간 형식적인 "아비"(나의 아버지),또는"아비누"(우리 아버지)란 말을 썼으나 예수님은 아이들이(또 히브리어를 말하는 가정에서)자기들의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한 일반적으로 친근감이 있는 말"아바"를 썼다....6. 동방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종종 밤에 여행을 한다....52. 그들은 성경을 잘 못 해석하고 엄한 규정을 많이 첨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무력해지도록 함으로써 그렇게 했던 것이다.그들은 영적으로 타락하여 구속자가 오실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자신들도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타락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의 결과로서 그들은 태반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서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참된 지식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다.
[루가복음 성서주해] 12장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두푼" 원문은 2 아스(라틴어,1/8 데나리온)...회당.유대인 재판소이다...13.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신21:17),유산을 나눌 때 맏아들은 형제의 두 몫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그것은 법률이 정하는 재판관들이 할 일이다.그분이 오신 것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리치기 위해서였다....16"밭에서".광대한 사유지를 말한다....24. 하느님께서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시지만 그러나 까마귀들은 먹이를 얻으려고 이 곳 저 곳 날아다닌다.사람도 마찬가지이다.섭리로 보호해 주시지만 사람도 양식을 얻기 위해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것이다....35. 그들의 옷은 길었기 때문에 여행 할 때나 활동할 때에는 옷자락을 들어 허리에 띠를 매는 관습이 있었다.그러니까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 혹은 일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뜻한다.36."혼인잔치에서 돌아 오는 주인".이 주인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히브리인은 밤 늦게 혼인 잔치를 벌이는(마태오 25:1)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주인을 영접하기 위해 등불을 준비해야 한다.주인이 집을 비우고 있을지라도 돌아오는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해 한 사람이 아니라 종들은 모두 밤을 세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셨다가 후에 모든 이를 심판하려고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38. "밤중에".원문에는 제 2시경이라고 썼다.밤은 4시경으로 나뉘고 제2시경은 저녁 6시에서 9시까지,제2시경은 9시에서 12시까지,제3 시경은 12시에서 오전 3시까지,제4시경은 오전 3시부터 6시까지였다....42. 여기서 관리인이라고 한 것은 보통 노예들보다 좀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노예임에는 틀림이 없다.그러나 주로 집안 살림을 맡고 있었다.착한 관리인은 두 가지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곧 주인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성실과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현명을 그리고 그 관리인이 제 직분에 충실하면 그것이 그 관리인에게 큰 행복이 된다. ...46. 글자 그대로 말하면 한 칼에 두 동강을 낸다는 말인데 여러 가지로 번역되었다.예로니모는 비유적인 뜻으로"거룩한 사회에서 쫓겨난다",곧 파문된다고 해석하였고 다른 이(도란도)는 채찍질을 당한다고 하였고 혹은 베어버린다고 풀이한 이(후비)도 있다.요컨데 사형에 처한다는 뜻인데 비유의 전체적 뜻으로 보면 영원한 벌을 가리키고 있다....49. 어느 해석자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가지고 어신 이"불"은 51절에서 말하듯 복음때문에 이 세상에 일어날 부조화,투쟁,박해를 의미한다고 하였다.또 예수님께서 이러한 박해를 바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의 용기와 성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간으로 하여금 갈라서서 싸우게 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대하여 지니고 있던 혹은 가지지 않았던 사랑 바로 그것이다.그 불이 성령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으나 하느님의 사랑 혹은 애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가치가 있다.라그랑즈는 말하고 있다."이 불은 상징적인 것이므로 사람의 마음에도 있는 것이다(루가24:32).또 그것은 영혼에 매우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그 불이 더욱 타오르기를 바라고 계시기 때문이다.교부들은 이 불이 틀림없이 성령 혹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다.50. 그것은 수난과 십자가의 치욕이다.물은 성서에서 자주 고통의 뜻으로 사용되므로(시 18:16-17,32:6,69:14-15)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통도 세례라고 부른다....암브로시오와 토레오파그토를 따라서 어느 학자는 예수님께서 괴로와하고 계신 것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피를 다 흘리려고 한 열렬한 소망때문이라고 하였고 또 다른 주장에서는 수난에 대하여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공포때문이라고 하였다....54. 그 구름이 서풍을 타고 오게 되면 지중해의 습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그러한 습기는 비가 되어 내린다.55. 바람은 남풍이지만 남동풍에도 사용된다.팔레스티나에서는 실제로 더위를 몰고 오는 것이 남동풍이다....58. 판사의 선고를 받은 채무자에게 그것을 지불하게 하거나 혹은 돈을 낼 때까지 감옥에 가두는 임무를 맡은 하급 관리이다."한 푼".렙돈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10. 그러나 그분이 승천하신 후(오순절의 기적과 그의 교회의 복음 전파에서) 성령을 통해 진리를 분명하게 계시하실 때에는 성령이 활동하시는 충만한 빛 가운데서 그의 역사를 마귀의 역사로 규정하는 것과 같은 행위로 성령을 고의적으로 모독한다면 결코 사赦하심을 받지 못할 것이다...28. 팔레스틴에서는 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보통 풀을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다....49. 불은 이중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즉 이것은 탈 수 있는 물질을 태워 없애고 비연소성의 물질은 순화하고 정련한다.주님은 여기서 그의 구원의 사역이 완성되어 그가 하시는 유익한 일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인간의 생활속에 완전하게 파고들기를 바라는 깊은 염원을 말씀하신다.다시 말해서 악을 파하여 멸하고 심자들을 정결하게 하고 연단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정말 그분은 활동하시면서부터 바로 땅에다 이 불을 붙이기 시작하셨다.그러나 이 불은 그가 구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귀하신 후 성령이 임하신 다음에 완전히 붙었던 것이다.그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을 가득메우고 있었던 것은 메시야가 오면 유대 민족이 당장 그들의 모든 원수를 물리치고 그 후에는 평온한 이상적인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누가복음 성경주석] 13장 14장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1. "갈릴레아 사람들은".영광적인 기질을 지니고 만사에 앞서 독립을 갈망하며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정부에 대하여 적대행동을 취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투쟁을 좋아한 갈릴레아인이 어느 축일을 이용하여 성전안에서 폭동을 일으켰으나 빌라도에게 진압되고 그 곳에서 살해되었다.역사가들은 거의 이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요세푸스 필라비우스(유다 고사18:9,3,18:3,1)가 잔인무도한 인간으로 묘사한 빌라도의 기질과 성전에서 폭동을 일으키기 위하여 자주 축일을 이용한 유다인의 행동을 알아 보는데 알맞은 사건이다.이런 폭동때문에 성전에 가까운 안토나아성에는 언제나 진압부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때때로 일어나는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일했다....4."실로암"의 성은 예루살렘 남동쪽 같은 이름을 가진 샘의 기슭에서 있었다.5. 끝까지 하느님께 저항하고 편견에 사로잡히고 소경이 된 완고한 유다인 거의가 무너져 내린 도성 밑에 생매장되었던 것이다....14. 율법학자도 급성의 병이나 큰 화가 일어났을 때 의사를 부르지 못하게 금한 것은 아니었으나 만성벼의 치료는 금하고 있었다.안식일에는<세우는 일>도 금하고 있었는데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들은 부러진 뼈의 치료도<세우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21.서 말(그리스어 '사톤'1.5펙X3=4.5펙,39리터 혹은 1펙X3=3펙,25리터정도)=약100키로그램...22.루가10:38에 쓰여 있듯 그분은 초막절(장막절)을 지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다.요한에 따르면 12월에 있는 봉헌절 축일을 위하여 또 예루살렘에 가셨다.루가가 여기서 말한 것은 요한 10:22의 마지막 여행일 것이다....30."꼴찌지만 첫째가 되고".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쁨과 분발로 받아들이고 곧 실천에 옮긴 이방인이나 세리들이다."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해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한 유다인들이다....14장 1.지금 예수님께서는 유다인과 예루살렘을 떠나 페레아에 계시다.이 곳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적대행위도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5.팔레스티나의 우물은 둘레를 높게 둘러 싸지 않고 단지 돌을 덮어두었기 때문에 우물에 빠지는 사람이 많았다....17."종을 보내어".소아시아의 관습이다.이 관습을 따라 주인은 전에 사람들을 초대하였고 당일이 되자 그 약속을 다시 환기시키고 혹은 길 안내를 위해 종을 보냈다.이것은 예의였다.이 종은 예언자 특히 유다인을 회개와 믿음으로 이끌려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셰례자 요한과 사도들을 의미한다.18.그는 밭을 샀으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가령 몰랐다 할지라도 꼭 그 날 보러 갈 필요가 없다.19.소를 샀다고 할지라도 그 날 꼭 부려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위의 두 사람은 정중하게 사양하고 있는 것 같지만 단순한 물질적 이익 때문에 초대한 주인의 자비로운 초청을 거부한 것이다.21.결혼식은 이미 끝나지 않았는가!그렇다면 친절한 집주인에게 한 마디 인사라도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런 시간마저 없다니 당치 않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실로암 연못은 예루살렘의 남쪽 성벽과 동쪽 성벽이 합쳐지는 모퉁이 근처에 있었다.무너진 실로암 망대는 아마 실로암 연못 부근의 성벽위에 있는 고대의 방어 체제의 일부였던 것 같다.T.W.Manson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옳은 말이다."본절에 묘사된 사고는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는데 이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왜냐하면 이것은 하나의 사고였지'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이것은 세상의 사학가들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못 된다" 6.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팔레스타인에서는 포도밭에 무화과나무와 그 밖의 다른 나무들을 심는 것이 통례이다.11.불구형 척추염(spondylitis deformans)이었다."그녀의 척추뼈가 단단한 덩어리와 융합되었다.32.여우,교활하지만 힘 없는 통치자"유대관용어에서'여우'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이것은 올바른 태도에 반대되는 저속한 교활을 상징한다.그리고 이 말은 실질적인 권력과 우대함을 지닌 사람과 반대되는 삼류급의 별볼일없는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서'사자'와 대조적으로 쓰이고 있다.헤롯을' 저 여우라고 부르는 것은 그는 위대한 인물도 정직한 사람도 아니며 그는 위엄도 영광도 갖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제 삼 일"은 어떤 일이 마무리되어 끝나거나 완성되는 순간을 묘사하는 시적 표현이다.14장1.이 당시 유대인들은 평일에는 하루 두 번만 식사를 하였으나 안식일에는 세번 식사를 하였다."정찬(데이프논,그리스어))은 아침 예배를 끝낸 후 즉 정오를 전후하여 먹었다.안식일 식사에 손님들이 참석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평일에...주로 식사하는 시간은 오전과 오후였는데 오전일 경우 그들은 (점심이 아닌)아침 곧 로마인들의 ientaculum에 해당하는 path shacharith(히브리어)를 먹었고 오후(4시경)에는 주된 식사 곧se'udah(히브리어).cena(라틴어),데이프논을 먹었다"20.땅을 먼저 사고 나서 그 후에 그 땅이 어떠한지 보러가는 법이 없다.그리고 소를 이미 사고 난 다음에 그것을 시험하러 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매매가 끝났기 때문이다)22.길과 산울 가에서 집없이 사는 도시 밖의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하게 된다.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을 무기치하게 생각하여 잔치에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강권하여" 데려와야 한다.
[루가복음 성서주해] 15장 16장 17장 18장1-14절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8."등불을 켜고".팔레스티나의 집은 거의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집안이 어둠침침했다.15.돼지는 부정을 탄 짐승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친다는 것은 유다인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수치이다.16."쥐엄나무 열매".건조되었을 때에는 좀 쓰고 약간 꿀맛이 나는 짐승먹이이지만 사람이 먹을 수도 있다.22."제일 좋은 옷"위대한 인물만이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발목까지 내려 오는 길이의 넓은 값진 옷이었다."가락지".그 가락지는 특별한 권위와 명예의 표시였다."신을 신겨주어라".자유인의 표시이다.종들은 맨발이었다....16장 1."청지기"상당히 큰 권한을 가지고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종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이 드러날 때 쫓겨나기는 하지만 팔려가지는 않는다....청지기는 자기 장래를 위하여 주인의 재산을 쉽게 훔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 비난에는 이유가 있었다. 8."세속의 자녀들"이란 이 세상의 근심과 장사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고,"빛의 자녀들"이란 눈을 높이 들어 구원에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다.이 세속의 자녀들은 장사에 몰두하고 수단의 선악을 따지지 않으므로 거의가 성공을 한다.그런데 빛의 자녀들은 구원이란 재산을 얻기 위해 세속의 자녀들만큼 부지런하고 현명한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지 않은가? 빛의 자녀인 우리는 하늘의 보화를 얻기 위해 세속의 자녀들이 이 세상의 재산을 끌어 모으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듯 그런 근면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9.제자들은 부정한 재산으로 이 세상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어 줌으로써 스스로 하늘나라를 열어야 한다.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베푼 일은 당신에게 베푼 것이라고 똑같이 생각하셨다.그리하여 예수님 자신 가난한 사람이 되시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문을 열어 주신다."세속의 재물".여기서는 부정한 수단으로 벌어 들인 재산이라는 뜻이 아니다.사람이 재산에 집착하기 쉽고 또 악한 목적을 위해 쓸 수 있으므로 그것을 세속의 재물이라고 한 것이다. 11. 작은 일이란 세속의 재물이며 큰 일이란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영적 선이다.재산을 충실하게 쓴 사람,곧 사랑을 실천하고 그리고 재산에 집착하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더 큰 선을 맡기기에 합당한 사람이다.정신의 재산을 맡은 사람이야말로 더 높은 범위에서 저마다 충실할 수가 있을 것이다.12."남의 것".이것은 재산이다.남의 것이라고 한 것은 재산이란 가지고 죽을 수도 없는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너희의 몫".곧 정신적인 선이다.이 선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성장에는 사람이 협력하고 내적인 것으로서 죽은 후에도 자신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17장 11.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다고 쓴 것은 이 번이 3번째이다....사마리아인의 냉대를 피하시려고 예리코 쪽,요단강 쪽의 골짜기를 지나 가신다.18."이방인".사마리아에는 앗시리아에서 온 이방인이 많았기 때문이다.21.교부들은 거의가 이것을 내적 은총의 뜻으로 보았다....착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다.22.제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재림의 하루이다.이 하루를 본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박해와 고통을 참아내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희망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18장 5."못 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본문의 그리이스말은 눈 밑을 친다는 뜻이다.그러니까 이 말은 비유적인 뜻으로 늘 같은 청을 되풀이하면서 머리를 숙인다는 뜻이라 하겠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이 세상 물질을 불의의 재물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세상 물질을 축척하고 사용하는데에는 불의가 개입되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그러나 주님이 물질적인 소유 그 자체가 죄가 된다거나 부정하다고 가르치신 곳은 아무데도 없다.이런 물질을 저주스럽게 하는 것은 세상 재물과 관련된 인간의 죄스러운 태도와 행위이다...100"밧"(바토스)으로서 868갤론과 같다.100"고르"(코로스)로서 1,083부셀과 같다...작은 뿔은 어떤 히브리 문자를 다른 것과 구별하는 한 작은 획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러나 Strack-Billerberk,Cadbury와 같은 사람들은 그것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율법의 어떤 문자 위에 그어놓은 장식용 획을 가리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나사로.하나님이 도우셨다....장식된 높은 대문으로 그 부자의 집이 호와스러움을 가리킨다....뽕나무의 뿌리는 특별히 강한 것으로 생각되었다."그 나무는 지상에 600년 동안 서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동쪽으로 돌아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통과하여 벧산을 지나 (여리고에서 다시 요단 강을 건너) 요단 강 동편 지역(트랜스 요르단)을 지나면서 계속 예루살렘을 향하였다.....하스몬가의 유대인 통치자 John Hyrcanus에 의해서 그리심 산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예배 형식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요 4:20이하 참조).최근까지만 해도 자기들의 입장과 관습을 충실하게 고수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옛 세겜인) 팔레스타인의 나불루스에 100 여 명이 있었다...."모든 사람이 하는 대중 금식은 속죄일과 아빕월 9일(성전 파괴일) 그리고(가뭄,흉년,역병,전쟁과 같은 재앙이 있어서)국가적으로 필요한 일반적인 경우에 했다"...세리는 아마 바깥뜰에 서 있었고 그 바리새인은 안뜰에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누가복음 성서주해] 19:1-28,21:7-28,22:24-30,23:39-43 選 성경주해
페데리꼬 바르바로
1."자캐오".히브리말 '자카이'는 바르다 혹은 깨끗하다는 뜻이다.4.그것은 교외에서 있었던 것이 아니다.그 거리에는 많은 가로수가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왜 그 지방 어느 집에나 있는 평평한 지붕에 올라 가지 않았던가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세리였기 때문에 남의 집에 넣어 줄지 알 수가 없었고 그것보다 나무 위로 오르는 편이 손쉬우리라 생각했을 것이다.10.그는 사도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가이사리아의 주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전한 어느 전승은 유다를 대신하여 그 자리를 차지했던 사도 마티아라고도 한다.12.이것은 유다 근세사에서 취한 비유이다.어느 귀족은 왕권 임명을 받으려고 먼저 먼 나라로 여행을 하고 그 후에 귀국하여 왕의 자리에 앉았는데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었다(유다 고사 14:14,4:5).아르켈라오는 왕위를 얻으려고 로마에 갔으나 겨우 분국왕으로 임명되었다.이때에도 어느 유다인이 그와 행동을 함께 했는데 그것은 그 왕권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유다고사17:9,3:4;유다전기2:2,1:3). 14.가까운 신하들이 그의 즉위를 원치 앉았다는 이 사건은 역사적 사실이었다.어느 유다인 당파는 아르켈라오가 왕위를 얻지 못하도록 하려고 아우구스토 황제에게 사신을 보냈다.이 아르켈라오의 경우 반대한 자들은 일부의 당파 뿐이었으나 이 비유에서는 왕에게 반대하는 것이 백성 전부이다.27.그러나 왕좌에 오르기 전에 반대하는 자들은 더 엄한 벌을 받는다.그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소아시아 조정의 관습대로 곧 살해된다. 이 비유는 두 가지 교훈을 가지고 있다.하나는 사람이 받게 될 상에 대하여 다른 하나는 메시아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대한 것이다....21장 8.펠릭스 총독 시대에도 에집트에서 온 한 열광가가 자기의 음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자랑하여 약 3만 명의 백성을 모았다(유다전기II 13:5).이와같은 소동의 원인은 그 당시 한 유다인이 일어나서 세계 패권을 잡을 것이라고 한 아마도 성서속에 있는 어느 애매한 예언때문이었다고 하였다(유다전기IV 5:4).10.기원 30년에서 70년에 걸쳐 로마는 바르뜨인과 싸웠다(타치투스,안나레스 12-13,13:6-8).가르바,뵛데리오,베스파지아누스 황제 때 일어난 혁명의 연속(타치투스I, II,1).유다 국내의 내란(유다전기 II 12:1...유다고사 ,XVIII 9:1)등. 11."지진".아오데체아,그레타,스미르나 등지에 지진이 있었다.사도행전(11:28)과 요세푸스(유다고사 XX 5:2)도 글라우디오 황제 시대에 로마에 일어났던 기근에 대해 말하고 있다...하늘의 징표...아마도 마카베오 하(5:3)와 유다 전기(VI 5:3)에 쓰여있는 그러한 사건들일 것이다. 12.회당이란 유다인의 박해이다.그들은 매질을 하는 형을 처할 수 있었다(1고린토 11:24).마르코는 회당 외에 유다인의 최고재판소를 기록하였으나 이방인을 위해 쓴 루가는 그것을 감옥이라고 바꾸어 놓았다.또 신자들은 이방인 재판소에도 끌려 갈 것이다.사도행전은 스테파노와 바울로의 행적을 말할 때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유다인의 박해와 이방인의 박해가 얼마나 완전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알려 준다.15.제자들이 받는 이 특별한 보호는 초대 교회와 순교자들에게 명백히 나타났고 사심이 없는 침착한 답변 앞에서 재판관은 어쩔바를 몰랐던 것이다.이후 이 보호는 오늘까지 이어져 온다. 18.하느님은 죽기까지 그들을 보호하시고 죽은 후에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혹은 이 곳이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면"너희 들은 생명을 잃을지라도 실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은 것이 아니며 부활의 그 날에 모두 돌려받을 것이다"(라그랑즈)라는 뜻이 된다.20.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쓰는 루가는 마르코(13:14)의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라고 한 상징적인 말 대신"적군에게 포위된 것"이라고 썼다.예루살렘이 포위될 때 이미 멸망이 가까이 온 징조이다.25.예수님의 이 말씀은 중대한 것을 알릴 때 예언자가 쓴 멀투와 비슷한데 라그랑즈도"예수님의 이 말투는 이사야 혹은 예레미야,에제키엘,다니엘보다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선입관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28.여기부터 32절까지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어느 해석자(샨즈,구나벤바우엘,필리옹,프루멜 등)는 예수님의 내림을 보여 주는 징조라고 하였다. 22장 25.화폐나 비석에 새긴 글에서 임금님,은인이라는 명칭을 받으려 한다.트라이아노 황제는 어느 비석에다 구주救主 및 은인이라고 새기게 했다. 30."이스라엘 12 지파".사도들이 다스릴 나라의 시민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심판".참 심판은 외아들만이 하실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사람들을 권위를 가지고 다스린다는 뜻이다. 23장 43."낙원".구약성서에는 2번 나온다.뜻은 나무가 우거진 동산이다(아가4:13;전도서2:5-6).해복한 온갖 즐거움을 누릴수 이는 공원인 것이다.신약성서에는 이 곳외에 고린토 후서(12:4)와 묵시록(2:7) 2곳에 나온다.교부들은 이 말을 하늘 나라(아우구스띠노)의 뜻으로 혹은 에덴 동산(데오필라투스,에우디 미우스,예루살렘의 치릴로,요한 크리서스또모)의 뜻으로 알아 들었다.
뉴인터내셔널 성경주석
므나는 히브리어 마네,아람어 메네,라틴어 미나와 같은 것으로 그 가친느 5파운드 곧 16달러 정도였다.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종들이 상당히 많은 돈을 받는데 여기서는 모두 충성에 대한 하나의 텍스트로서 적은 액수의 돈을 받고 있다....펠라,현대 지명은 커빗-알-파길 11.A.D.61년에 브루기아에 막대한 큰 피해를 입힌 큰 지진이 있었다....63년에는 폼페이 절반을 매몰시킨 베수비오 화산 폭발이 있었으며.....하늘의 무서운 불가사의한 현상(서로 싸우는 군대의 별)과(성전문이 열리고 성전에서 천적 존재들이 떠나는 소리가 들리는) 큰 징조가 있었다...무엇보다도 이상했던 것은 (요세푸스가 해성이라고 부른) 별 하나가 상당한 기간동안 예루살렘 상공에 밤마다 나타났는데 그 모양이 검劍과 같았다고 한다....66년 10월에 케스티우스 갈루스의 군대는 예루살렘에서 격퇴를 당하여 후퇴하다가 벧-호른 부근으로 도주하였다.여기에는 주님이 주신 신호가 있었고..기독교인들은 요단강 저편의 펠라로 도망하였다....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A.D.70년 이전의 예루살렘 인구는 보통 600,000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그리고 만일 우리가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전에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수만 명씩 떼를 지어 예루살렘으로 몰려 들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5개월 동안의 포위 기간에 줄곧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인구가 과잉된 그 도시에서 수십 만명이 죽었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가 될 수 있는 문제이다....노호하는 바다와 파도에 대한 이미지는 민족들의 불온한 생활상태를 나타내기 위해서 종종 성경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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